세계 경제의 승자와 패자, 지리적으로 재구성된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탈글로벌화 담론이 던지는 고민

지난 6월 29일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경제구조 변화와 우리 경제에의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서는 '탈' 글로벌화(deglobalization)를 경제주체의 행태 변화, 디지털경제의 가속화,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과 함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4대 경제 환경 변화 방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지역주의의 확산, 인적교류의 약화를 탈 글로벌화의 주요 원인으로 파악했다.

"금번 위기로 인한 생산 차질과 핵심 물자 부족을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이 부각됨에 따라 (중략)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 입장에서 보호무역주의, 역내 교역, 인적교류 제한을 강화[하며] 탈세계화 현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1914~45년 중 1·2차 세계대전 및 대공황으로 1차 탈세계화가 나타났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가 퇴조되던 가운데 코로나19로 세계화 약화가 가속화되면서 2차 탈세계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탈 글로벌화는 전혀 새로운 현실이자 미래인 것으로 당연시되지만, 여기에서는 신조어의 참신성을 뛰어넘어 탈 글로벌화의 경제지리사(地理史)적 전개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 탈 글로벌화를 글로벌화와 변증법적 쌍을 이루는 현상으로 파악하며, 탈 글로벌화의 지리적 승자와 패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필요성도 제기할 것이다.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의 경제 지리사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두 가지 용어가 우리의 공간경제를 규정하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첫째는 사회적 관계의 공간적 확장으로 정의되는 글로벌화(globalization)이다. 교통, 통신 등 이른바 '공간축소' 기술의 발달로 상품, 자본, 노동의 이동성이 증대하고 이를 보장하는 제도적 환경이 조성되어 경제주체의 생산, 소비, 유통 활동이 특정 장소, 지역, 국가의 경계에 제약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초국적기업, 해외직접투자, 오프쇼링(offshoring), 글로벌 상품 사슬/가치사슬 등의 일반화와도 관련되며, 경제지리학계에서는 '글로벌 쉬프트(global shift)'로 불려온 현상이다.

두 번째 상식은 신자유주의로, 이것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케인스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해 자유화, 개방화, 규제철폐, 민영화, 긴축 재정, 경쟁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경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주도로 성립된 이후 신자유주의는 지난 반세기 동안 글로벌 쉬프트의 학문적,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근간으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실험은 1970년대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에서 처음 시도되었고, 이후 서구 사회에서 영국의 대처리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로 현실화되었다. 1989년 워싱턴합의를 거치며 신자유주의는 비서구 사회에 대한 지배 수단으로 쓰였다. 채무 위기, 금융위기에 처한 남미와 동아시아 국가에 대하여 IMF가 제시해 온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2010년대 초반 유럽재정위기 상황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을 포함한 이른바 'PIIGS' 국가를 대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세계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기업가형(entrepreneurial)' 정책 확산의 원동력이었다. 전통적으로 국가와 지방 정부는 '관리형(managerial)' 역할에 전념했다. 예를 들어, 세수를 바탕으로 교통, 통신, 교육, 주택, 복지 등 이른바 '집합적 소비'의 기반을 조성하고 관리하며 분배와 노동의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달리 기업가형 정부에서는 다른 국가나 지역과의 경쟁 관계에서 경제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이를 위해 기업 친화적 산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 정부의 핵심적 임무로 당연시된 것이다.

승자 vs. 패자의 경제 지리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전성기를 이루었고,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승자와 패자의 지리를 만들었다.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패턴은 아래의 '코끼리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1988년부터 2008년 사이에 가장 높은 소득 증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글로벌 소득 분포에서 50~60분위에 해당하며(그래프의 'A'), 이들은 대체로 개발도상국의 신흥 중산층으로 구성됐다. 글로벌 경제의 무게 중심이 서구에서 동쪽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신흥 중산층의 약 90% 정도가 아시아에 분포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다음으로 높은 소득 증대를 누린 계층은 그래프의 'C'에 나타난 세계적 부유층이며 이들의 대다수가 선진국에 위치한다.

▲ 코끼리 그래프: 글로벌 소득 분위별 소득의 상대적 변화 (1988-2008), 출처: MacKinnon and Cumbers(2018, 386); 박경환·권상철·이재열(역), 2020 참조

반면, 75~90 분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실질 소득의 개선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프의 'B'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의 전성기 동안 80분위 계층의 실질 소득 증대는 0에 가까웠다. 그리고 0~10 분위 사이의 빈곤층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소득 개선 효과를 누렸다. 이들 패자의 86% 가량이 선진국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중산층과 빈곤층은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의 이익에서 배제되었던 계층이라 할 수 있다.

탈 글로벌화와 리쇼어링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에서 패자들의 불만은 탈 글로벌화, 즉 글로벌화의 역전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의 다자간 무역 협약에 대한 불만, 유럽연합과 같은 경제블록의 와해, 선진국에서 자국 경제 이익의 우선시 등으로 표면화되었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브렉시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탈글로벌화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전 세계적 경기침체의 분위기 속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의 안정성과 회복력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우리나라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글로벌 공급망 타격으로 기업활동 차질을 경험한 기업은 응답 기업 중 56.7%에 달했다. 산업별로는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제조기업의 3분의 2가 글로벌 공급망 타격으로 기업활동 차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어서 기계 및 장비 제조업(57.1%),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 제조업(50.0%) 등 국내 주요 업종에서 글로벌 공급망 타격으로 인해 기업 2곳 중 1곳 이상이 기업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 글로벌화의 경제 지리적 결과로서 리쇼어링(reshorin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리쇼어링은 해외로 생산 설비를 옮기는 오프쇼어링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본국으로 제조업을 재이전하는 방침을 뜻한다.

정부의 강력한 세제 혜택과 적극적 규제 완화 정책을 바탕으로 리쇼어링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정책의 효과로 오랫동안 반도체 제조업의 공동화를 경험했던 미국은 TSMC,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 등 주요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의 투자 계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유턴기업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리쇼어링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한국판 뉴딜 정책에 따라 보다 강화된 유턴기업 지원책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한경 BUSINESS>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중에는 현대모비스가 처음으로 울산에 리쇼어링을 결정했으며, 이곳에서는 2021년부터 친환경차의 핵심 부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탈글로벌화, 새로운 경제 지리?

리쇼어링은, 보다 일반적으로 탈글로벌화는 전혀 새로운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새로워 보인다. 투자의 방향이 바뀌며 새로운 사회-공간적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었던 제조업은 서구 선진국으로 다시 몰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진국에서는 중산층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선진국에서는 '기업가형' 산업 입지 지원 정책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도 보인다.

이런 시나리오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지정학에서 우위를 누리며 광활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탈글로벌화는 이루기 어려운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앞서 언급한 전경련의 포스트코로나 보고서에서는 국내 기업의 3% 정도만이 리쇼어링을 고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공간조정의 시소

탈글로벌화가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글로벌화와 온전하게 배타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집중과 확산의 변증법적 관계의 한 국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지리적 집중의 부작용으로 공간적 확산이 이루어지고, 공간적 확산의 이익이 한계에 봉착할 때 지리적 집중은 다시 발생한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경제지리 변화의 원리이며, 이런 견지에서 글로벌화-탈 글로벌화도 연속적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엇갈리는 산업적, 정치적, 정책적, 계급적 이익 때문에 글로벌화와 탈 글로벌화 사이의 상대적 중요도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이것이 바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위기에 대한 '공간조정', (지금은 고인이 된) 닐 스미스(Neil Smith)가 불균등발전의 '시소' 현상으로 언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탈 글로벌화를 현재 위기에 대한 운명적인 해결책으로 인식하기보다, 이러한 일시적인 공간조정이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문제들을 경제지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보다 중요해 보인다. 탈 글로벌화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승/패자의 국가와 지역에서 이익과 손해는 어떻게 분배될까? 어떤 사회 집단이 이러한 변화에 취약한가? 그들은 어떤 공간과 장소에 위치하는가? 탈 글로벌화로 인한 사회-공간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대응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탈 글로벌화로 인해 기존 코끼리 그래프의 승자와 패자가 뒤바뀔 가능성이 농후하고 또 다른 형태의 불균등발전의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80분위의 선진국 중산층이 리쇼어링의 혜택을 받으면, 이것은 50~60분위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의 신흥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신흥 중산층의 지역에서는 고도화되지 못한 발전의 단계에서 탈산업화의 병폐를 조기에 경험하는 상황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중산층 간의 대립 구도에서 빈민층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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