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국에게 배울 것이 없는가?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중국의 성장과 지역발전정책

싸움은 싸움이고 실리는 실리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 비록 내가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그러하다.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한한령 이후, 한-중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17년에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도는 비호감 61%, 호감 34%, 잘 모름 또는 무응답이 5%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지리적인 인접성에 따른 밀접한 관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비호감' 이미지와는 무관하게 경제 규모에서 세계 2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또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무역액의 26.5%(홍콩, 마카오 포함)를 차지하고 있고 약 591억 달러(약 72조 원)의 무역흑자를 안겨주는 중요한 '경제파트너'다. 이러한 중국을 맹목적으로 배척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중국과 관련된 무수한 주제 중 지역발전정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중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밝히고자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토대로 새것을 만들다.

중국 정계의 암묵적인 규칙은 전임자를 부정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차치하더라도 정책이 연속성을 가진다는 점을 통해 잘 드러난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여러 가지 지역발전정책들이 제시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정책들은 대부분 유지·계승되고 있다.

지역발전정책은 국가 지도자에 따라 덩샤오핑·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이렇게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도입한 5개의 '경제특구'와 연해 개방도시는 현재 중국 경제에 있어서 핵심을 담당하는 도시들로 성장했다.

이후 장쩌민(江澤民)의 집권 초기 덩샤오핑과 같은 발전전략에 따라 도입한 '신구(新區, 신도시)'는 상하이 푸둥 신구(浦東 新區)를 시작으로 현재 19개의 국가급 신구가 지정되어 여전히 개발 중이다. 동부와 서부 간의 극심한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0년부터 시작된 '서부대개발(西部大開發)'은 중국 균형발전과 관련한 지역발전정책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에는 균형발전이 더욱 강조되면서 지역을 단순히 동부/서부로 나누는 것에서 나아가 기존에 동부로 분류되어있으나 발전이 더딘 중부내륙 6개 성(省)을 분리하여 '중부굴기(中部屈起)', 동북 3성을 '동북진흥(東北振興)'이라는 이름으로 서부대개발과 나란히 국가의 중점 지역발전전략으로 격상시켰다.

다만 이 기간에 서부지역은 비교적 빠른 성장을 이루었으나 단순히 행정구역에 기반을 두어 지역을 구분하고 정책을 구상하여 실질적인 지역 간 연계가 적고 비효율이 발생한 까닭에 중부와 동북지역의 경우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의 광역시·도 개념에 해당하는 직할시·성(省) 지역 내에서 혹은 주변 직할시·성에 걸쳐 핵심도시와 주변 도시를 연계시켜 새로운 경제권으로 성장시키는 '도시군(都市群) 전략'이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의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앞서 언급한 전임자들의 지역발전정책의 토대 위에서 국내외 현실에 맞는 새로운 지역발전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임자들의 시대와는 다르게 국가 차원에서 '지역 내', '지역 간', '국제적' 스케일의 지역발전정책이 공존하면서 복합적으로 기능하는 시기이다.

'지역 내' 스케일의 정책으로는 2014년 중국 중앙정부가 발표한 '신형도시화(新型城鎭化)' 계획이 있다. 이는 국지적인 지역 내에서 도·농간의 통합발전, 산업구조 및 체제의 전환, 그간 문제가 되었던 농민공의 삶의 질 개선을 통해 내수 확보 및 사회·정치적 안정을 추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동부 연안 지역으로의 과밀 완화 및 국토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 등을 목표로 한다.

'지역 간' 스케일의 정책으로는 1) 장강경제대(長江經濟帶) 2) 징진지(베이징-톈진-허베이) 협동발전 3) 웨강아오(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大灣區) 개발계획 4) 장강 삼각주(상하이-장쑤-저장) 일체화 5) 국가급 도시군 형성이 있다. 이 정책들은 여러 개의 직할시와 성들을 아우르며 비교적 대규모 지역적 범위 내에서 각종 기능의 효율적인 분배와 시스템 일체화 등을 통해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그림 1. 중국의 주요 지역발전정책 지도 ⓒ이재천

'국제적' 스케일의 정책으로는 2013년부터 언급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이 있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중국의 국제적 패권전략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변경지역의 개발을 통해 정치·사회적 안정은 물론 중국 내 과잉생산 자원이나 잉여설비들을 해외로 진출시켜 국내 경제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지역발전정책 기능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지역발전정책은 덩샤오핑으로부터 시작해서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기의 정책들을 정책적 연속선상에서 유지하면서, 현재 직면한 도시 내 갈등(농민공), 중국의 국제사회 영향력 확대 추구 등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책들이 추가적으로 입안되어 새로운 정책으로 거듭나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정책 위에 새롭게 탄생한 정책들은 기존 정책을 포섭하고 연계함으로써 추진동력을 얻고 새롭게 탄생된 정책들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기존 정책들이 촉진되는 등 상호 유기적인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역발전정책은 중국 체제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

지역발전정책이 중국의 체제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2가지이다. 첫째는 체제의 안정이다. 지난 40여 년간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지만 심각한 지역 간 격차와 인민들의 불만, 도시에 거주하는 농민공들의 열악한 생활과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 변경지역 낙후에 따른 소수민족들의 불만과 정치적 불안, 자국 내 생산과잉과 같은 경제문제 등 여러 국내 문제가 존재한다.

이 문제들은 현재 중국의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들로 손꼽히고 있으며 중국의 지역발전정책은 이러한 문제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반영되어 실시된다. 동부 연안 지역에 집중 투자하여 급격한 성장을 하던 방식이 이제는 효과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지역을 개발하고 이들을 성장시켜 내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지속적 경제성장에 유리하다고 중국 지도부는 판단하고 있다.

이미 발전된 동부 연안 지역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재편하고 내륙지역은 인프라 구축과 함께 제조업의 육성 및 자족 기능의 강화를 통해 경쟁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들의 공간전략이다.

둘째는 지속적 경제성장이다. 중국인들이 현재의 체제를 지지하는 것은 이 체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실리추구의 결과다. 우리가 중국 정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차별적으로 중국의 인민들은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잘 견인하고 있고 그로 인해 인민들에게 부의 축적 기회 제공 및 안정적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정부에서 매년 '바오치(保七, 경제성장률 7% 사수)', '바오리우(保六, 경제성장률 6% 사수)' 등 경제성장률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체제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중국정부의 치밀한 공간전략은 지역발전정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현된다. 즉 지역발전정책은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며, 중국의 체제 안정과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발전정책에 있어서 우리가 중국에게 배울 점은?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반중감정이라는 눈가리개 때문에 우리는 중국을 애써 배척하고 외면하고 있다. 중국의 1인당 경제 수준, 교육 수준 등이 우리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신흥공업국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역발전정책에 있어서 우리가 중국에게 배울 점은 3가지 정도로 생각된다.

첫째는 정책의 연속성이다. 최근 약 20년의 한국 지역발전정책을 돌이켜보면 현재까지 정책적 연속성이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행정 중심복합도시(세종시)와 혁신도시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정책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지되었고 박근혜 정부의 '지역행복생활권' 개념은 탄핵 이후에 자취를 감추었다.

만약 이 정책과 개념들이 지속해서 이어져 왔다면 같은 광역경제권 내 시·도 간의 유기적 연계를 강화하고 시·도 단위를 뛰어넘는 협력 체계도 구축되었을지 모른다. 이전 정부에 과오가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정책의 취지가 올바르고 국익에 부합한다면 정책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지역 간 유기적인 협조체계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중앙집권에 의한 권력에서 비롯된 바가 크지만 소규모 지역 단위 간, 대규모 지역 단위 간, 대규모 지역을 하나로 묶었을 때도 중국은 정책추진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 대구 통합 신공항 이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같은 군(郡) 안에서 어느 면(面)에 공항이 입지하느냐로 분쟁이 일어 대규모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사례를 볼 때 지역 간 유기적 협조체계의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또한 국가 차원의 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될 여지가 있을 때는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셋째, 정치권이 지역발전이 국가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는 중국 사회가 내부적으로 가진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에 기인한 바 크지만 수도권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고 지방의 산업 침체에 따른 경제위기, 지역 경쟁력 하락, 인구감소 등 소위 '지방소멸'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수도권에만 집중해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린다고 하더라도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토와 국가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서라도 지역발전은 중요하며 이를 위한 지역발전정책의 제정과 정비도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선거와 지지자의 표만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역발전이 국가의 지속적 성장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필자 소개>

이재천은 현재 중국 정부 기관인 중국과학원 지리·자원연구소에서 경제지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있다.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으며, 금융지리, 지방은행, 중국의 경제지리를 주요 관심 분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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