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의 역사적 판결 vs. 트럼프와 지지자들

WP "공화당 극우, 동성결혼 주례 섰다고 경선 탈락...시대착오적 트럼프 정부와 지지자들"

▲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집회에 참석한 LGBTQ 집단. 이들은 인종주의적,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사진은 1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집회 장면. ⓒ출처: AP=연합뉴스

미국 대법원이 15일(현지시간) 성소수자들의 권리와 관련해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날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 개인의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으며, 이들도 1964년 제정된 민권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판결했다. 1955년 흑인 여성 로사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거부했다가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민권운동의 성과물인 민권법은 인종과 피부색, 국적, 종교, 성별에 근거해 고용주가 직원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동성애자 남성 2명과 트랜스젠더 여성 1명이 자신의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이유로 고용주로부터 해고된 이후 차별을 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한 결정이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찬성 입장을 밝혔으며, 3명(브랫 캐버노, 새뮤얼 엘리토, 클래런스 토머스)이 반대 의견을 냈다. 닐 고서치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법관들이 '찬성' 입장에 합류하면서 이날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다.

특히 이날 주심으로 판결문을 작성한 고서치 대법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인사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동성애자 또는 트렌스젠더임을 이유로 개인을 해고하는 고용주는 다른 성별의 직원들에게는 묻지 않았을 특성이나 행위를 이유로 그 사람을 해고한다"며 성별이 그러한 결정 과정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정확히 민권법 제7조가 금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민의 82%가 "모든 성별이 민권법에 따라 보호 받아야"

대법관들의 이런 판결은 미국 사회 내에서 성소수자 권리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 8일 발표된 CBS 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2%가 성소수자들이 민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으며, 여기에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71%가 포함된다.

성소수자 권리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 초기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성은 40%에 그쳤지만, 2015년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내릴 당시에는 찬성 입장이 60% 급증했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글렌 볼거는 당시 <픽스>와 인터뷰에서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전례 없는 여론의 변화"라며 "20년 후에는 (동성결혼이) 문제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 변화'가 유난히 더딘 집단이 존재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5일 대법원 판결 기사에서 지적했다. WP는 이날 대법원이 성소수자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법적 보호조치를 결정하기 얼마 전 버지니아주의 공화당 하원의원 덴버 리글만(버지니아 제5선거구)은 동성결혼에서 주례를 섰다는 이유 등으로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의 극우적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리글만을 몰아내고 동성결혼 반대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극우적 성향의 밥 굿을 후보로 옹립했다. 리글만은 불공정 경선이었다며 승복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WP는 "굿 후보는 너무나도 보수적이기 때문에 민주당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이 지역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트럼프 지지자들의 생각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도 동일하다. 트럼프 정부는 민권법을 미국 내 LGBT 노동자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앞서 지난 12일 보건복지부(DHHS)는 "태생부터 결정되는, 남성이나 여성 같은 평범한 성별에 따라서만 의료보험 적용 관련 성차별을 해석하는 것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케어'(ACA)에 포함된 반(反)차별 규정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번 판결과 관련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성명을 내고 "오늘 대법원의 결정은 모든 인간이 존중과 존엄성으로 대우 돼야 한다는 간단하면서도 매우 미국적인 생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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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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