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김진태가 '국가보안법' 반대한다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홍콩 보안법 문제와 우익 정치세력의 이중성

'홍콩 왓치'(www.hongkongwatch.org)라는 사이트가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앵글로 색슨 국가들의 입장에서 홍콩 상황을 감시하려고 베네딕트 로저스가 만든 사이트다. 우익 인권 활동가인 로저스는 영국 보수당의 인권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미얀마, 북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중국 등 아시아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제3세계 국가들에서 기독교 포교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목적을 가진 '기독교 연대 월드 와이드'의 동아시아 담당자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들고 미국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한국의 기독교 태극기 부대의 국제적 버전이라 보면 될 듯하다.

며칠 전 국내 언론이 널리 소개한 '홍콩 보안법'에 대한 세계 정치인의 반대 성명을 주도한 곳도 다름 아닌 홍콩 왓치다. 홍콩 주재 마지막 영국 총독인 크리스 패튼이 앞장선 성명이 처음 공개된 지난 23일에는 세계 정치인 186명이 동참했는데, 지난 28일 홍콩 왓치를 확인하니 동참한 정치인 수가 33개국 659명으로 늘었다.

홍콩 보안법에 반대하는 성명에 참여한 세계 정치인들은 대체로 우익 성향을 보인다. 미국 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공화당 소속으로 미국 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려 한 '오바마 케어'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사람이다. 블랙번은 창조론 지지자로 진화론을 부정하며, 지구 온난화 등의 기후 위기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김진태 의원, 나경원 의원, 신원식 당선자, 이정훈 연세대 교수, 이양희 유엔 인권 특별 보고관이 성명에 동참했다.(☞ 바로 가기 : '[Updated] Patten-led group of 659 Parliamentarians from 33 countries decry 'flagrant breach of the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 지난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나경원 의원과 김진태 의원은 국회 임기 동안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반대하기는커녕, 반대로 철저히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 '홍콩 보안법' 반대 서명자 명단에 김진태 의원, 나경원 의원 이름이 올라 있다. '홍콩 와치' 갈무리.

2019년 4월 패스트트랙 합의안 통과 총력 저지 투쟁을 이끌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는" 시도로 낙인 찍고, 민주당과 정의당이 국회를 장악해 국가보안법이 철폐되면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는 없습니다"라고 선동한 바 있다.

김진태 의원은 2017년 3월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향해 "과거 북한을 반국가 체제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홍 후보의 안보 의식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홍 후보는 "북한은 국제법상으로는 국가지만, 국내법상으로는 국가가 아니다"고 응수했다.

또한 김진태 의원은 2017년 10월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 자리에서 "좌익 세력이 창궐해서 지금 나라의 기강이 땅에 떨어져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실형 건수가 없다"고 사법부를 질타한 바 있다.

육군 장성 경력의 신원식 국회의원 당선자는 9·19남북 군사 합의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유리한 합의라며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이적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출신이다.

2016년 9월 '북한 인권 전문가' 타이틀로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인권대사로 임명된 이정훈 연세대 교수는 2005년 2월 노무현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정 시도를 비난한 '자유 지식인 선언'에 동참한 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매파 '뉴라이트' 지식인 중 한 명이다.

유엔에서 인권 일을 하고 있는 이양희 씨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성균관대 교수 시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인권이사회의 특별 보고관이 됐다. 한국의 우익 정치가인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의 장녀인 이 씨는 2011년 '아동 인권 전문가' 타이틀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반대하거나 폐지한다고 이 씨가 발언했다는 기록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홍콩 보안법에 반대하는 성명에 동참한 659명의 세계 정치인 전부가 우익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참가한 5명 정치인들의 사상적 성향은 모두 우익이다. 좋게 말해 우익이지, 실제로는 극우에 가깝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절대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사상의 소유자인 이들이 홍콩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배 엘리트의 수준에서 보자면, 한국의 보안법을 찬성하는 세력은 홍콩의 보안법을 반대하는 세력과 일치한다. 표현(text)은 동일한 '보안법'이지만, 맥락(context)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권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 예일대 교수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은 <불평등한 세계에서 인권(Human Rights in an Unequal World)>이란 책에서 "인권운동의 발전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동전의 양면이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인권운동이 신자유주의와 공모하면서 최악의 물질적 불평등을 방치했다는 비판이다.

개개인이 기본권을 가진다는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해 인권운동이 계약의 자유와 재산권의 불가침성에 동조하면서 물질적 불평등(material inequality), 즉 사회경제적 권리를 퇴행시키는 데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익 세력과 인권운동이 함께 할 수 있는 교집합이 생긴다.

모인 교수는 "인권운동이 신자유주의를 교사한 것은 아니지만, 물질적 불평등을 제어하려는 노력을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적 기획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인종과 성 등의 소수자 문제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게 됐지만 물질적 평등은 최악의 상태로 추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모인 교수의 분석은 나경원 의원이 장애인 인권운동에, 이정훈 교수가 북한 인권운동에, 이양희 유엔 보고관이 아동 인권운동에 앞장선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인권운동이 물질적 불평등의 급속한 확산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여성과 소수자 혹은 세대를 둘러싼 '지위의 불평등(status inequality)' 문제에 매몰됐고, 그 결과 '지위의 차별(status discrimination)'은 오히려 심화했다는 게 모인 교수의 생각이다.

지위를 둘러싼 불평등은 감소하는데 지위들 사이의 차별은 강화되는 현상은 "시장 자체에 사회적 제약을 가하는 결과의 평등(equality of outcomes)을 시도하기보다 시장 안에서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을 추구한 인권운동의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세계 각국의 우익 인권운동가들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이들은 자국민의 보편적 인권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둘째, 반공 이데올로기에 찌든 이들은 남의 나라, 특히 공산당 일당 지배가 이뤄지는 나라들에서의 보편적 인권 문제에 집착한다. 셋째, 이들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의 제국주의 역사에는 눈감고 이들 국가들이 지금도 자행하는 인권 유린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넷째, 이들은 부자와 자본가의 편에 서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는 데 앞장선다.

다섯째, 이들은 시장 근본주의자(market fundamentalist)로 사회복지 등 민중의 사회경제적 권리에서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여섯째, 이들은 '인권'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들이 '독재'로 낙인찍은 주권국에 대한 군사적 침략을 지지한다. 일곱째, 이들은 국제적 갈등과 분쟁의 해결책으로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호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 온 경험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자국의 지배층이 저지르는 인권 유린에 대한 외국 정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내정 불간섭'을 주장하며 배척하는데 반해, 자신들이 타깃으로 잡은 외국 정부의 인권 유린을 지적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 아니라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인다.

홍콩의 국가보안법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린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인 5명이 자신들의 정치적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동일한 정치적 일관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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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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