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 PD도 이재학 PD도 같은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릴레이 기고] ⑤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 시행됐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 지난 4월 29일에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산업재해 참사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의 바탕에는 기업과 기업주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 있다. 2008년에도 이천에도 비슷한 화재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사인 코리아2000이 받은 벌금은 고작 2000만 원이었다.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거치지 못했다. 우리의 안전을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생각에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산재 피해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한다.

<프레시안>은 앞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보내온 5편의 글을 싣는다. 글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산재 피해 유가족과 산재 사망 노동자의 동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방송국이 너무 해요. 계약금으로 받은 임금을 이미 전세금이나 빚을 갚는 등 다 써버렸는데 다시 반환하라고 독촉하는 일은 정말 못할 짓인 거 같아요. 그들은 비정규직이라서 1년에 겨우 6개월 정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일정한 수입이 없어 먹고 살길이 막막한 데…."

방송 비정규직의 절박한 사연을 접한 제 아들 고 이한빛PD의 말입니다. 한빛이는 CJ E&M의 tvN의 정규직 공채 드라마 PD로 입사했습니다. tvN의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로 의상, 소품, 식사 등 촬영준비, 데이터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등의 업무를 했습니다. 드라마 <혼술남녀>는 전체 16회 중 4회분을 사전 촬영으로 진행하였으나, 방영을 앞둔 8월 초에 촬영, 장비, 조명 담당 외주업체 및 소속 스텝이 교체됐습니다. 교체를 이유로 일부 계약직 스탭이 해고됐습니다. 한빛이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비정규직 스탭들의 설움을 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방송제작 현장에서 비정규직 스태프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하지 않냐고 말을 해봤지만 돌아온 건 배제와 따돌림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문제 제기로는 개선될 수 없었던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제 아들 이한빛 PD는 2016년 10월 26일 절규하는 글을 남기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한빛이가 생의 끝에 남긴 글에는 비정규직을 착취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외주업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임무를 부여받으며 방송업계와 자신의 일에 대한 절망감이 커졌고, 결국 그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촉구 피켓을 들고 있는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이한빛PD가 꿈꾸었던 세상을 향한 날개짓

고 이한빛 PD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했던 청년입니다. 학생 시절 기륭전자와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한빛이에게 외주업체 비정규직 해고 등의 업무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강압처럼 느껴지며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빛이는 죽음으로써 방송계 비정규직의 문제를 고발한 것입니다.

한빛이가 죽은 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습니다. 한빛의 유지를 이어받아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입니다. 한빛의 죽음은 방송노동자의 노동환경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였고,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빛센터와 노조들의 노력으로 방송제작 현장의 노동환경에 자그마한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빛이의 생명을 건 날개짓이 방송계 비정규직들에게 힘이 된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방송노동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노동계의 가장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장시간 노동과 계약서도 없는 프리랜서로 구두 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계약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고 아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형 하도급 구조와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도제식 문화 그리고 외주제작 형식의 하도급 구조는 턴키계약이라는 변종 계약 방식으로 노동자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당 120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용구조입니다. 게다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사고가 나도 드러나지 않게 처리하거나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또다시 올해 2월 4일 CJB 청주방송에서 근무한 이재학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재학 PD는 CJB 청주방송에서 14년간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PD로서 일해 왔습니다. 계약서 한 번 작성하지 않은 프리랜서였지만, 정규직 PD보다 더 강도 높은 업무량을 소화해왔습니다. 청주방송은 이런 이재학 PD를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쉽게 해고해 버렸습니다. 이재학 PD가 인건비 증액, 인원보강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자마자 벌어진 일입니다. 같은 해 9월 부당해고라며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냈고, 지난 1월 22일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이재학 PD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마지막으로 기댄 법원조차 진실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그는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재학 PD는 한빛이가 떠난 바로 그 이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불의한 사망 사고와 산재사고가 나도 방송사와 책임자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체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습니다. 이한빛 PD가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방송제작 현장에서 이어지는 사망사고와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송노동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방송사, 제작사, 원청, 하청 등 모든 도급업체는 물론 그 책임자, 정부관련기관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다시 한빛이와 이재학 PD와 같은 죽음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연재는 <미디어오늘>,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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