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뉴딜', 지역 산업으로 이어지려면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국가에서 지역까지 공동학습체제 구축하기

패자 부활전에서 진정한 승자의 길 찾기

코로나 19로 인해서 발발한 3차 세계대전은 인간 대 바이러스 간 치열한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쟁에서 특정한 국가가 승자가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확진자의 규모에 따라서 국격이 정해지고 있다. 즉, 이 전쟁은 피해자들(국가들) 간 새로운 경쟁체제를 유발하면서 패권(覇權)이 정해지는 '패자(敗者) 부활전'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세계는 2∼3년 간격으로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의학계는 이를 두고 앞으로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패자 부활전에서 진정한 승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할까? 이를 지역산업 발전에 초점을 두고 경제지리학적으로 진단해 본다.

지역산업 뉴딜 정책은 필요한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뉴딜'이라는 용어가 많은 정책 표제어로 등장하고 있다. 이 용어는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7월에 미국 대통령 후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후보 연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시 뉴딜의 기본 방향은 회복(recovery), 구호(relief), 개혁(reform)이었고, 분배를 중심으로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박경로, 2016, 뉴딜의 체제 전환적 의미와 재평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그 자세한 내용은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할지라도, 뉴딜이라는 용어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활용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뉴딜'을 사용했으며, 이후에도 서울특별시의 서울형 뉴딜 일자리사업 등 다양한 국면에서 사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지역산업 뉴딜 정책은 무엇이고,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필자가 정의하는 지역산업 뉴딜 정책이란 '지역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중앙정부, 지자체, 기업, 지역 주민들 간에 이루어지는 자율적‧분권적 협약(deal)'을 말한다. 이의 운영은 다양한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 주체들 간 이루어지는 '공동 학습'(collective learning)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학습공동체가 형성되고 발전되는 방식에 초점을 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정책은 지역 차원에서 중앙정부의 수혜만을 기다리는 해바라기형 정책과 정치적 요행을 통해서 한 방에 바벨탑을 쌓고 무너뜨리는 공동체 파괴형 정책을 철저히 배제한다. 필자는 지역산업 뉴딜 정책의 목적을 '지역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개방형 자급자족 체제 구축에 기초하여 글로벌-국가적-지역적 차원의 산업 가치사슬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이 왜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일까?

2010년 이후 한국의 산업은 부가가치 사슬의 지속적인 경쟁력 약화를 경험하고 있다. 부가가치 사슬이란 산업 자체가 지니는 공동체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나의 제품이 시장에 나오려면 기획부터 원자재 조달, 생산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협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여기서 각 협업 단계들은 부가가치라는 금액으로 환산되고 있고, 이 가치는 사슬처럼 서로 엮어져 있으며, 각 단계들은 철저히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10년 이후 한국 산업들은 이 가치 사슬 경쟁력이 취약해 지고 있는데, 그 사례로 2012년부터 글로벌 가치 사슬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2015년에 철강, 조선 등 주력 산업의 침체로 인한 산업위기지역의 등장과 가치 사슬 붕괴, 2019년 일본 규제로 인한 반도체 산업의 위기 국면,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한 산업별 가치 사슬 재편 등을 들 수 있다.

문제는 위기를 맞닥뜨리는 주기가 점차로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내적‧외적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이 산업을 안고 있는 지역들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역산업 뉴딜 정책의 기본 방향

앞서 지적했듯이, 산업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발전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지역산업 뉴딜 정책도 당연히 상호 연관된 가치 사슬 단계에 따른 학습공동체를 만드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여기서 학습은 홀로 학습이 아니다. 21세기의 한국형 산업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산업 영역은 교육, 과학기술, 사회복지, 인문, 문화 영역 등 다양한 분야와 융‧복합해야 한다. 즉, 산업발전은 공장 안에서만, 교육발전은 교실 안에서만 가두어두면서 사육해왔던 수출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코로나19에 대하여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는 이유는 철저히 중앙정부 및 지자체 주도형 학습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퇴치를 위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상호작용하면서 공동학습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역산업 뉴딜 정책은 새로운 형태의 융‧복합 산업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융‧복합형 산업 공동체는 농업에서 서비스업에 이르는 산업 간 연계 체계 구축과 산업 내 세밀한 분업체제 구축을 통해서 한국형 자급자족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 간 거래만을 고려하는 폐쇄적 자급자족 체제가 아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지역적 조달체계가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 사슬의 범위가 축소되고 있음을 뜻한다. 개방형 자급자족 체제란 특정 산업의 가치 사슬 영역에 존재하는 '우리나라' 지역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글로벌, 국가, 지역적 차원에서 시장거래를 유지하면서 필요시 국내 다른 산업 영역에서도 언제든지 생산 참여가 가능한 유연한 형태의 생산 전환을 의미한다. 정부의 지원은 이와 같은 실험적 영역에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정보통신 기술을 동반한 생산체제의 유연성에서 제조업 쇠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았다. 그러나 21세기 세계 자본주의는 보다 심화‧확대되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면서 생산 그 자체만이 아니라 산업영역에서 업종 전환의 유연성 확보, 지역 거래의 공고한 뿌리내림을 통한 국가와 세계시장에의 접근성 강화, 지역산업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주체들 간 공동학습 체계 구축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역산업 뉴딜 정책은 지역산업 발전을 위하여 신제품 생산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위기를 평정하고 새로운 시대에 도전할 수 있는 공동학습체제 구축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뉴딜'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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