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한 풀어달라" 성폭행범 혀 깨문 70대 여성 재심 청구

성폭행 가해자 피하려다 발생한 사건임에도 법원 피해자에 높은 처벌...여성·시민단체 반발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돼 억울하게 처벌을 받았던 최말자(74) 씨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여성·시민 사회 일동(총 384개 단체)'은 6일 오후 1시 부산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씨의 재심 청원에 앞서 "법원은 재심을 게시해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피해자 인권 회복에 최선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 6일 오후 1시 부산지법 앞에서 최말자 씨 재심 청구를 촉구하고 있는 여성·시민 사회 단체 일동. ⓒ프레시안(박호경)

최 씨 사건은 그가 18살이던 지난 1964년 5월 6일 오후 경남 김해에 있는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당시 21살인 노모 씨를 마주치면서 벌어졌다.

당시 노 씨는 갑자기 최 씨를 쓰러뜨린 뒤 성폭행을 시도하며 입을 맞추려고 달려들었다. 넘어진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던 최 씨는 갑자기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을 느끼고 힘껏 깨물며 저항했다.

정신을 차린 최 씨는 힘겹게 자리를 벗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노 씨는 혀가 1.5cm가량 잘렸다고 보름 뒤 흉기를 든 노 씨는 친구들과 함께 최 씨의 집에 찾아와 상해를 입었다며 난동을 부렸다.

이후 성폭행 후유증으로 힘겨워하던 최 씨는 갑작스러운 검찰 소환장을 받고 아버지와 함께 검찰을 찾았다가 이유도 모른 채 구속되기에 이른다. 최 씨는 자신이 상해 피의자가 됐다는 사실도 추가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

오히려 성폭행 가해자였던 노 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데 피해자인 자신만 구속됐다는 사실을 알고 최 씨는 강력하게 정당방위를 외쳤으나 검찰은 오히려 그에게 중상해죄 혐의를 적용했고 노 씨에게는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했다.

이어진 재판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묻는 등 2차 가해를 했고 결국 최 씨는 노 씨(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서야 6개월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최 씨와 가족은 이 사건으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기 일쑤였고 50년 동안 혼자 속으로만 고통을 삭혀오다가 지난 2018년 본격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벌어지자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청하면서 억울한 최 씨의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한국여성의전화 도움으로 변호인단을 꾸리고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 준비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지 딱 56년이 되는 이날 최 씨는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최 씨의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저는 법학도로서 형법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다. 교과에서 보던 사건의 피해자가 제 앞으로 걸어 나왔을 때 온몸에 인 전율을 잊지 못한다"며 당시 법원과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와 판결에 위법성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법원 판결에서 언급되는 성인지 감수성은 변화된 시대 감수성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라며 "그러나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로 사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해자 범죄 유발 책임도 받았다.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평범한 삶이 완전히 뒤바뀌고 힘들게 살아왔다"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안희정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 씨도 응원의 편지를 통해 "구속되는 날 하루종일 비가 쏟아진 것도 기억한다고 들었다. 지금 선생님 곁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홀로 고통속에 있지 않도록 곁에 굳건히 있다"며 "선생의 상처가 치료되고 한이 풀리는 길에, 여자라는 이유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전했다.

최 씨의 사건을 제일 먼저 접하고 재심 청구까지 함께한 조력자 윤모 씨도 "2014년 방송통신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면서 만나게 됐다. 할머니 연세에 공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공부를 도와드리게 됐고 6년 만에 공부를 마치게 됐다. 제 손을 붙잡으시고 제 덕분에 방통대를 졸업하는 첫 번째 소원을 풀었다. 그런데 제 소원이 하나 더 있다. 제 한을 풀어주십시오라며 이 사건 이야기를 털어놓으셨을 때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18세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린 아픈 사연은 제가 두 귀로 듣고도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시대가 가부장적이었지만 법 앞에서 평등하지 못했고 충격이었다. 도와주고 싶었다"며 최 씨를 도와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끝으로 최 씨는 "현재도 미투 사건이 여러 가지 나오는데 제가 겪은 게 56년 전인데 현재도 이런 현실이라는 게 너무 분노한다"며 "우리 사회가 지금 평등시대이지 않는가. 이 사회를 변화 시키고 사법도 변화시켜서 우리 후손들한테는 이런 아픔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이날 최 씨의 재심 청구에 함께한 여성·시민 사회 일동은 앞으로 법원에 재심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각종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 씨를 지지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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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경

부산울산취재본부 박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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