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 동향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정부가 결국 옳았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준공테이프를 직접 끊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2일 보도했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준공테이프 커팅 사진과 2020년 5월 1일이라는 날짜가 박힌 판넬 앞에 앉아 파안대소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북한이 주체 연호를 사용하는 데 비춰 2020년이라는 '서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례적이긴 하지만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은 전국 규모 체육대회, 김정은 위원장 참석 군 행사 등에 수차례 서기 표기를 사용해 왔다. 국제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간 정부는 일관되게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밝혀 왔다. 더 이상의 정보를 언론 등 공중에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해 왔다.
미래통합당 일부 의원들이 '김정은 사망'을 기정사실화 하고, 외신이 '중국발'로 포장된 정보에 현혹되고 보수 언론이 특별하지 않은 미군의 사소한 움직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사망설'이 '인포데믹' 식으로 일파만파 퍼졌지만, 정부는 진중하게 입장을 고수했다.
'김정일 양치질' 쏟아내던 이명박정부, 정작 '김정일 사망'은 TV보고 알아
이는 지난 2008년 김정은의 부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위중설' 때와 비교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당시, 김정일 위중설이 시중에 돌았을 때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08년 9월 언론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재 와병 중인 것이 분명하나 직접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는 말을 흘렸다. 이어 "우리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통일부 등 정부 공식 기구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고 해명하는 등 당혹스러워 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 등은 김 위원장 뇌졸중, 뇌혈종 설과 함께 "김 위원장이 쓰러진 후 2~3일 이후 (김정은 위중설) 정보를 입수한 것"이라고 구체적인 정부 입수 시기까지 언론에 흘렸다.
2010년 6월에는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국회에서 답변하면서 김정일 와병설과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은 음주와 흡연을 다시 시작했다"며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 때문에 후계 체계를 조기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양치를 할 정도', '음주와 흡연을 다시 시작', '쓰러진 날에서 2~3일 후 정보 입수' 등의 정보는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마치 김 위원장을 지켜보는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역정보라면, 우리 정보원이 노출될 수 있는 문제인 셈이다. 실제로 '김정일 양치' 발언이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오면서, 북한 권부의 정보원들이 줄줄이 숙청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카더라'식 정보 장사의 끝은 좋지 않았다. 정작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12월, 이명박 정부는 아무도 이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은 북한의 공식 발표를 보고 김정일 사망을 알았다고 실토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 회동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몰랐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렇게 망가뜨린 '휴민트'를 보수 정권 9년 내내 복원하지 못했다는 게 정보 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2016년 2월 '리영길 처형'을 공식 브리핑 했다가 '가짜 뉴스'로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지난주에 김정은 사망 확인", "99% 사망"이라고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주장한 미래통합당 지성호 당선인이나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고 CNN 인터뷰에서 주장한 같은 당 태영호 당선인 모두 '잘못된 첩보'를 근거로 한 엉터리 정보를 언론에 마치 '확인된 사실'인양 대대적으로 흘렸다. 두 당선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말고' 식 정보 장사는 국회의원 자질마저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가정이지만, 만약 지성호, 태영호 당선인이 '역정보'에 넘어간 것이라면, 그들에게 정보를 준 '정보원'들의 신원은 곧바로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정보도 확실하지 않은데다, '역공작'에 당할 가능성까지 준 이들의 가벼운 입은, 이들이 등원 전임에도 비판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집권 시절에도 '가짜 북한 정보', '카더라 북한 정보'로 망신을 당했던 미래통합당이, 정권을 내주고 야당이 되어서도 비슷한 형태의 '정보 장사'로 망신을 당한 셈이다.
반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일 사망설에 휩싸였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만에 공개활동을 재개한 것을 두고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한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은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뜻이었다"라고 밝혔다. 만약 청와대나 정보 기관이 미래통합당 등의 압박에 섣불리 정보를 흘렸다면 예기치 못한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북한 관련 '가짜 뉴스'는 이번 '김정은 사망설' 뿐만 아니다. <조선일보>의 현송월 총살 보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영철은 노역형, 김혁철은 총살" 보도 등은 희대의 오보였다. 이번 김정은 사망 소동은 보수 진영과 야권이 여전히 '북맹'임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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