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이상한 '균형수사론'

[기자의 눈] MBC와 채널A '균형 수사' 운운 전에 '성명불상 검사장'에 성명을

윤석열 검찰총장이 채널A와 MBC에 대한 중앙지검의 압수수색영장 청구 상황에 대해 '균형 있는 수사'를 강조했다고 한다. 채널A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됐고, MBC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됐다는 게 그 이유다. 언뜻 보면 채널A와 MBC 모두 범죄 혐의가 있고, 그 경중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윤석열의 '균형'은 실제로 그럴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MBC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보인 윤석열 검찰총장의 반응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법원이 MBC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하고, 채널A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했는데 엉뚱하게도 거기에 "결과적으로 법원에서 MBC 영장은 기각되고, 검찰이 채널A에 대한 압수수색만 실시하는 결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조선일보)" 의혹이 불거졌다고 추정해 보도한다.

특히 조선일보 "채널A는 압수수색, MBC는 기각… 윤석열, 중앙지검의 부실 영장에 '황당'"라는 제목의 보도를 살펴보자. 마치 채널A와 MBC가 경중이 비슷한 수준의 범죄 혐의를 받는 것같은 뉘앙스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 검사장의 협박 혐의는 물론 MBC에 대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측이 제기한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된 보도의 진실성 여부, 채널A 기자를 '몰래 카메라'로 찍어 보도한 MBC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균형있게 수사 하라고 서울중앙지검에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이 법원에 청구한 MBC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최 전 부총리 관련 건을 비롯해 상당 부분이 부실하게 작성됐거나 누락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윤 총장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내용도 비슷하다. "윤석열 총장은 균형있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는데 한쪽만 영장이 발부돼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지검도 이같은 대검 지휘부 반응을 인지하고 영장 추가 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언론이 '법조계' 세평을 빌려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최 부총리 측의 명예훼손 고소 건도 영장에 포함돼야 했는데, 그 부분이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영장 기각에 영향을 미쳤다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사건'은 뭘까. MBC가 지난 1일 "(신라젠 대주주인 밸류인베스트먼트 대표) 이철 씨는 옥중 편지를 통해서 지난 2014년, 당시 최경환 경제 부총리가 5억 원, 또 그의 주변 인물이 60억 원을 신라 젠에 투자했다는 말을 당시 신라 젠 대표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고 보도한 내용이다. MBC는 "터무니 없는 의혹"이라는 최경환 전 부총리와 신라젠 관계자의 반론을 싣고 "이철 전 대표가 최경환 전 부총리 측의 65억 자금 유입 의혹을 제기한 만큼 돈의 성격과 실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최경환 전 부총리가 MBC 보도본부 기자, 제작자와 제보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과 윤석열 총장이 표면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은 최경환 전 부총리가 MBC의 의혹 제기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왜 MBC를 압수수색할 수 없느냐'인 것 같다. 그런데 전직 고위 관료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그에 따른 반론까지 받은 후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한 보도에 대해 해당 전직 관료가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고 검찰이 대낮에 언론사를 강제로 압수수색한다는 이야기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식이면 형법상 명예훼손 수사는 압수수색을 동반한 강제 수사를 관행화 해야하고, 언론사는 압수수색을 각오하고 비리 의혹을 보도해야 한다는 건가. 이 지면에선 '명예훼손' 형사 처벌이라는 후진국적 악습과 관행에 대한 법률적 논의는 일단 삼가겠다.

아마도 윤 총장과 보수 언론이 '명예훼손 압수수색' 표면 아래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MBC가 확보한 녹취록 전체에 대한 압수 여부일 것이다. 확보하고자 하는 그걸 위해 '최 전 부총리 명예훼손 수사'를 들먹였다고 추론하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 채널A와 윤 총장 측근이라는 '현직 검사장'이 연루된 사건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보자. 최초 보도 후 한달이 다 돼 가도록 채널A는 진상 조사 결과를 못 내놓고 있다. "윤리 강령을 거스르는 행동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사실 관계 부분에 대해서도 "보도본부 간부가 취재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지는 않았다", "녹취록에 있는 검찰 관계자가 언론에 나온 검사장인지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 '검사장'인지 아닌지 채널A 자체 조사로 확인도 못하고, 검찰도, 당사자도 누구도 '그 검사장 이다 아니다'를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당사자가 '나는 그 검사장이 아니고 채널A 기자가 나를 팔았다'고 선언하고, 윤 총장은 내부 감찰을 통해 진상을 파악해 오해를 불식,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왜'인지 모른다. 그런 상황인데 MBC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대해 윤 총장과 보수 언론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인가?

조선일보는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MBC의 '검·언 유착' 보도 기조가 '윤석열 최측근' 검사장과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누고 있었던 만큼, MBC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과정에 친문(親文) 성향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추정을 덧붙였다.

이성윤 지검장에 엉뚱하게 '친문 딱지'를 붙이자 채널A 검언유착 의혹의 배후에 문재인 정권이 슬쩍 끼어들어가는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이런 식의 보도 의도는 더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압수수색 영장에 '최 전 부총리 명예훼손'이 들어가지 않아서 기각됐다는 추론이 맞다면, 명예훼손 강제수사를 남발하지 않은 서울중앙지검이 훨씬 '균형적'으로 보인다.

또한 이런 방식의 의혹 제기는 똑같은 논리로 윤 총장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테면 만약 'MBC가 윤석열 총장 장모 의혹을 보도한 만큼 윤석열 총장이 MBC 압수수색 불발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어떤 언론이 추정 보도한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윤 총장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으며,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이 말하는 '균형'은 어긋나 보인다. 무엇보다 검찰이 당사자가 된 '검언유착' 사건에서 검찰의 수장이 '균형'을 말하면, 그것은 더이상 균형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심지어 비슷한 경중의 사안도 아니다. 수사의 균형을 말하려면 먼저 한달 째 질질 끌고 있는 진상 조사를 추상처럼 하고 나서 말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번 채널A 압수수색에도 강한 유감을 표한다. 검찰이 '해당 검사장'에 대한 의혹을 빠르게 진상조사해 밝혔다면 언론사 압수수색같은 강제 수사도 필요 없었을 터다. 마치 검찰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채널A를 희생양 삼는 것 같아 씁쓸한 감을 감출 수 없다. 군사독재의 트라우마에 시달려 온 역사가 존재하는 탓에 언론 자유의 보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는 강고하다. 검언유착 의혹의 한쪽 당사자인 검찰은 하루라도 빨리 '성명 불상자'에게 '성명'을 찾아주고 조사를 마무리해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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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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