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제도
노조법상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제도다. 괄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공식적으로 (…)에는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통해 교섭대표가 된'이 들어간다. 현실에서 (…)는 '사용자가 선호하는"으로 채워진다. 사용자의 선호는 사용자의 지원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선호하는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자신이 싫어하는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사용자의,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제도다. 자신이 선호하는 노동조합을 교섭 상대방으로 하고 싶은 건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보통의 생각이다. 문제는 사용자가 노사관계에서 그런 '생각'을 실제로 '실현'하고자 할 때다. 노동법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의 그러한 욕망을 규제하는 제도여야 한다. 그런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사용자들을 그렇게 하라고 부추기고 유혹하고 심지어 배려한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유성기업, 발레오, 만도, 보쉬, 상신브레이크, 콘티넨탈, 삼성테크윈 등 수많은 기업이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고사시키는 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을 생생히 목격해왔다.
노동3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인 제도
교섭창구단일제도는 특정 시점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조합원 수를 가진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로서 배타적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체결권을 행사하도록 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노동조합을 교섭대표로 만들기 위해 지원하다가(내친 김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기까지 한다) 안 될 것 같으면 개별교섭을 하면 된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사용자를 섬세하게 배려해 사용자에게 개별교섭 동의권까지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이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면 수사기관이 증거를 더 가져오라고 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알고, 설령 기소되어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벌금형 정도 받고 만다는 것도 안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소수노조의 노동3권을 침해한다. 교섭대표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한 단체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교섭 테이블에서 사용자와 맞서지 못하는 노동조합은 무기력해진다. 단체행동은 언감생심이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노동조합들이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를 결정할 수도 있고,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건 한시적이며,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를 통해서 단체교섭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를 통해 소수노조의 권리침해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소수노조의 숨통은 끊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논리다.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자체를 박탈하도록 설계된 제도를 합리화하는 장황한 변명에 불과하다.
노동3권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힘을 무력화한 제도
헌법재판소는 2012년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헌법상 노동3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체계를 구축하고, 소속 노동조합이 어디든 관계없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하는 것을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목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무관한 제도이거나 오히려 정면으로 반하는 제도다.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한국의 법체계에서 근로조건의 통일성 확보를 위해서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자체를 박탈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면서 근로조건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것은 위헌이다. 근로조건 통일이 필요하다면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한국의 법체계에서는 다른 제도적 방식을 통해서 하는 것이 옳다.
잠깐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프랑스와 독일은 근로조건의 통일성을 도모하기 위해 교섭 방식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협약 적용 방식을 통해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제한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주성, 최소 2년의 연혁, 직업선거에서 일정비율 이상의 지지 등 7가지 기준에 따라 해당 단위에서 대표적 노조로 인정받은 노동조합은 모두 교섭당사자로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한 대표적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이 해당 사업장 전체에 적용되면서 근로조건의 통일성이 확보된다. 다만, 과반수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대표적 노조(들)가 일정한 기간 내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단체협약은 효력이 없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노사간 체결된 단체협약을 해당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도록 하거나, 초기업별 단위에서의 단체협약효력확장제도와 단체협약효력확대제도를 통해 단체협약 적용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근로조건의 통일성을 도모한다. 강력한 산별교섭-협약 체계를 가지고 있는 독일은 단일단체협약원칙과 법을 통해 산별교섭구조 하에서의 근로조건 통일을 도모해왔다. 단일단체협약법은 복수의 노조가 체결한 복수의 협약 중에 충돌되는 내용이 있을 경우 다수의 조합원이 속한 노조가 체결된 내용이 적용되도록 하여 근로조건이 통일되도록 한다(근로조건 등 이른바 규범적 부분에 한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관한 부분에는 다른 내용이 적용될 수 있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통해 교섭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확보되고 실질적인 협약자치가 구현되었을까. 사용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초기의 노조파괴와 혼란은 사용자 주도의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전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를 위해 구축된 교섭체계의 효율성과 안정성은 노동조건 후퇴와 사용자의 일방적 우위를 의미할 뿐이다. 실질적인 노동3권 보장과 강력한 노동조합에서 비롯한 힘의 균형 위에서 구축된 교섭체계가 아니면 실질적인 협약자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기업단위 교섭구조를 고착화하고 초기업별 교섭체계 형성을 가로막는 제도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복수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조직형태와 상관없이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서 교섭창구단일화를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교섭수준을 기업단위로 강제하고, 초기업별 노조의 다양한 교섭방식(집단교섭, 통일교섭 등)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한다. 교섭 수준을 기업단위로 강제하는 것은 노사간 자발적 교섭을 위한 매커니즘을 충분히 발전시키도록 한 ILO 핵심협약 제98호 제4조에 위반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교섭 수준의 결정은 본질적으로 당사자의 재량에 맡겨야 할 사안이므로 교섭 수준을 법률, 행정당국의 결정, 판례 등을 통해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고, 법률이 산업 수준의 단체교섭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며, 단체교섭에 참가하는 당사자의 자주성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사자가 상호 합의에 의해 교섭 수준을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반헌법적인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폐기할 때
한마디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최악의 제도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제도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모호하여 끊임없는 갈등과 혼란을 조장해왔다. 노조파괴 컨설팅 전문가들에게는 편안하게 이윤을 창출할 사업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와 논리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바라보지 말고, 최소한 헌법의 눈으로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그 위헌성을 판단하길 바란다. 물론 사용자의,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이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임무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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