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로폴리스 습격한 코로나19, 전세계 '도시 문명' 흥망 가른다

[좋은 도시를 위하여] 뉴욕

내가 살고 있는 프로비던스에서 뉴욕을 다녀오려면 기차로 약 세 시간 남짓 걸린다. 하루 일정을 잡고 다녀오기에 조금 빡빡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난겨울만 해도 추위가 좀 가시면 1박 2일 정도 시간을 내서 뉴욕에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다. 모두 다 아는 그 이유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나는 뉴욕 방문 대신 그저 집에서 조용히 글을 쓰면서 매일매일 슬프고 안타까운 뉴스만 읽고 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은 뾰족한 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 이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했다는 점,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밀집한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초기 발병지로 지목 받는 중국 우한(武漢)의 인구는 거의 1000만 명에 육박한다. 9호선까지 개통한 지하철 전 노선의 길이는 세계에서 10번째로 길다. 사진과 영상으로 보는 우한의 도심 풍경은 한국의 주요 대도시처럼 아파트가 매우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퍼져나가 사람들의 일상을 점령해버렸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에는 세계적인 대도시 중 하나인 뉴욕으로 공습을 감행했고, 이후의 풍경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맨해튼 교. ⓒ로버트 파우저

도시에는 사람이 모여 산다. 하지만 현재 도시의 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도시는 곧장 활기를 잃는다. 이 변화는 코로나19로 인한 것이다. 변한 것이 도시의 거리만은 아니다. 이 변화는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치, 외교, 경제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체제가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나게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 앞에 쏟아지는, 변화를 전망하는 관련 기사 대부분은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보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지만,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기사도 있다. 예측이란 모름지기 개인들의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하게 마련이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한편 일각에서는 코로나19를 겪은 이후에도 여전히 도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는 오히려 이쪽이 더 타당하고 객관적으로 여겨진다. 왜 그럴까?

코로나19 이전까지 뉴욕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다. 뉴욕은 문화 예술 활동이 매우 활발한 도시이며, 특히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었다. 특히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맨해튼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비교적 작은 이 섬의 공식 거주 인구는 160만 명이지만, 대낮에는 직장인들도 회사에서 일을 하고, 관광객들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약 350만 명이 머무는 곳이 된다. 지하철이나 미술관, 식당이나 쇼핑센터 등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공연장이 많은 타임스퀘어는 대낮만이 아니라 늦은 밤까지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코로나19가 상륙하자마자 급속도로 퍼져나갈 최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으려면 사람 사이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예방책이다.

▲ 뉴욕 맨해튼 이탈리아 마을. ⓒ로버트 파우저

세계 각국은 뉴욕을 비롯한 많은 대도시를 셧다운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그로 인해 오늘 현재 세계 주요 도시는 대부분 셧다운 상태다. 거리마다 사람으로 가득했던 도시에 사람이 모이지 않거나 외부에서 여행 오는 이들이 없다면, 그로 인해 도시가 받을 타격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뉴욕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을 포함한 수많은 세계 대도시들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도 심각하지만 더 심각한 건 이런 상황이 한동안 계속될 거라는 전망이다. 중국을 비롯해 초기에 코로나19의 격랑을 겪은 나라의 대도시들은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강제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에 힘입어 점차 확진자 수가 감소 추세로 접어들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확산의 속도도 늦춰지고, 감염자 수도 줄어들 것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심각성에 대해 전 세계가 경계 태세를 갖춘 것이 약 4개월 정도 남짓이어서 아직은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조만간 치료제가 개발되리라는 기대 역시 가질 만하다. 잘하면 올해 여름이나 가을부터는 치료제가 나오기 시작할 거라고, 내년 봄이나 여름쯤에는 백신도 개발될 거라고, 그래서 결국 2022년이 되면 우리 모두 코로나19의 공포에서 해방이 될 거라는 전망 역시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 상태로 앞으로 몇 달, 길게는 내후년까지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긴장감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또한 이 사태가 종식된 뒤 도시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완료되어 코로나19를 극복한 이후 세계의 주요 도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약 3년 남짓의 기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한 순간에 가깝다. 코로나19가 과거로 돌아간 그때, 지금 쏟아져 나오는 전망처럼 도시의 미래는 암울하게 달라져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기억조차 점점 희미해져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뉴욕을 예로 들어보자.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뉴욕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민자들의 도시다. 전 세계에서 뉴욕을 찾아온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한 덕택에 뉴욕은 발전했고, 그로 인해 미국 역시 발전했다. 이들에게 뉴욕은 어떤 도시였을까. 바로 희망의 도시였다. 높은 인구 밀도와 자유로운 개방성이야말로 뉴욕의 자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희망의 근거였다. 비록 미국의 현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냉담한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의 근본이 이민자들로부터 비롯했으니 오늘날의 그 냉담함을 오래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뉴욕은 이민자들에게만 희망의 도시일까.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문화 예술은 물론 출판, 광고, 패션, 금융, 무역, 법조 등 어떤 분야를 망라해도 모든 면에서 뉴욕은 오래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미국의 정점이다. 출세를 하고 싶은 사람은 뉴욕을 찾는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이도 찾는 도시다. 코로나19가 뉴욕의 시가지를 점령할지언정, 뉴욕을 본진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사업체가 이 도시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급속도로 일어난 디지털 혁명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고, 영화는 로스앤젤레스가, 정치는 워싱턴D.C.가, 대학은 보스턴이 대표 도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뉴욕이 이들 도시에 뒤처진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뉴욕 센트럴 파크. ⓒ로버트 파우저

이렇듯 모든 면에서 뉴욕은 압도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코로나19 전이나 후에도 여전히 희망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역할의 힘 때문이다. 이 힘이 크고 강한 도시라면 코로나19 같은 강풍이 아무리 불어 닥쳐도 그 도시는 망하지 않는다. 뉴욕은 바로 이 힘의 결정체다. 이러한 사실은 도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더 분명해진다. 시대의 변곡점 앞에서 어떤 도시는 더 강해지고, 어떤 도시는 급속도로 쇠락한다. 뉴욕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긴 역사를 지닌 런던이나 파리 역시 수많은 역사적 파고 앞에서 굳건히 자신들의 위치와 영향력을 지켜냄으로써 그 사실을 분명히 증명해냈다. 이에 비해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의 경우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즉시 도시의 영향력 역시 쇠락했다.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역할의 유무다.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코로나19가 전혀 없던 시절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 치료제와 백신이 생길지언정, 인류가 이 병의 공포에서 해방될지언정 이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한 번 경험한 슬픔과 공포로 인해 군중이 밀집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위생 문제에 매우 예민해질 것이다. 이런 행동 변화와 요구에 따라 청소와 위생 시설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부정적이기만 할까? 비록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 같은 조처는 감기나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시 전체로 보면, 장기적으로 내다볼 때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모습이 달라질 거라는 전망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의 운명은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의 요인, 갑작스러운 재난에 좌우된다기보다 그 도시가 어떤 상황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관광 산업에 의존해온 도시라면 코로나19로 깊은 불황에 빠질 수 있지만 이 상황만 해결된다면 점차 회복해나갈 것이 분명하다. 문화 예술의 기반이 확고한 도시라면 역시 당분간은 침체기를 겪어야 하겠지만, 이 역시 곧 지나갈 것이다.

▲ 휘트니 미술관에서 바라본 맨해튼 남부. ⓒ로버트 파우저

다시 뉴욕 이야기로 돌아가자. 뉴욕은 한때 재정 문제와 범죄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001년 일어난 9·11테러로 역경을 견뎌야 했지만 잘 이겨냈고, 성공적으로 회복했다. 그 바탕은 이 도시가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기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역할이 여전히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뉴욕을 떠나는 사람이 생길 수는 있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떠나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어디 뉴욕만일까. 그동안 유지해온 사회적 역할을 변함없이 가동하는 모든 도시가 결국에는 모두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해내고 이를 바탕 삼아 새로운 발전을 이룰 것이다. 오히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렇지 못한 도시들의 쇠락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공포를 경험한 인류가 사회적 역할이 큰 대도시에 사는 걸 선호한다면, 그런 도시로 이주를 실행한다면, 경쟁력 부족한 소도시와 지역 고장의 쇠퇴는 당연히 따라오게 될 결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 속으로 흘러가겠지만, 그 이후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곳들 사이의 균형 발전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좌우하는 요인이야말로 도시의 운명을 가르는 힘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그 힘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야말로 우리에게 닥칠 조만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즉,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코로나19가 가지고 올 변화라기보다 이 강풍을 이길 힘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가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여야 한다. 바로 사회적 역할의 힘 말이다.

필자 소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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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외국어 학습담>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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