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부터 김대중까지, 50년 남북 대화의 산 증인, 김달술 선생 별세

6.15남북정상회담 김대중 전 대통령 상대 '김정일 역' 대역 모의 회담 진행

박정희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의 남북 관계, 북한 김일성 체제와 김정일 체제 최고 전문가 중 하나. 1971년부터 남북 대화에 100여 차례 관여해 '남북 대화의 산 증인'으로 불렸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오전 6시 16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후 1961년 10월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북한 문제를 다뤄왔다. '남북 회담 전문가'로 시작해 1971년 적십자회담에 관여했고,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남북회담 사무국 초대 국장을 지냈다. 1979년 10.26 사태 당시엔 '김재규 사람'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김 전 상임연구위원이 생전에 밝히기도 했다.

주로 남북간 정치 협상을 다뤘고, 1980년대 남북 이산가족 문제 등을 다룬 다수의 적십자 회담에서 남측 대표단으로 북한과 협상에 나섰다. 이후에는 김일성, 김정일 등 북한 지도자를 집중 연구했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보수 정부에서 남북 대화 실무자로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남북대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서울의 시각" (한국과 국제정치, 1987), "대등한 위치로 북한 끌어올린 민족합의적 통일방안"(월간 통일, 1989) 등 다수의 논문을 남겨 통일, 북한 연구자들의 길잡이가 됐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등에도 관여하는 등 6공화국의 '북방 정책'에도 족적을 남겼다.

고인은 문민정부를 지나 대한민국 역사상 첫 정권 교체 후에 들어선 김대중 정부에서도 남북 대화에 적극 관여했다.

6.15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전 상임위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앞에 두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대역(가게무샤)으로 앉아 '모의 회담'을 진행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고인은 이를 위해 북한 신문과 TV를 연구하며 김정일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하고 똑같이 연기하는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에 일어나 노동신문을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북한 방송과 원전을 보며 철저히 북한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30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김 위원장이 된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몸은 남한에 있지만 철저하게 북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외딴 섬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2007년 10월 1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당시 김정일 역을 맡은 고인과 함께 김용순 북한 대남담당 비서 역할을 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18년 4월 22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달술 전 상임연구위원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모의회담은 2000년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청와대에서 열렸다. 실제 현장에서 대응능력이나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내가 김용순 당시 북한의 대남담당비서 역할을 맡았고 김달술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할을 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김달술씨를 '위원장 동지'이라고 불렀고 '장군님'이라는 단어도 썼다. 김정일 위원장은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괴롭히는 발언들은 주로 내가 했다. 주한미군이나 국가보안법 등의 이슈를 꺼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격했는데 답변이 술술 나오더라. 참 공부가 많이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김달술씨는 1961년도에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박정희 정부에서 국장급까지 지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쪽에 핵심인물인 셈이다. 애초 2시간으로 예상했던 모의회담은 4시간 동안 이어졌다. 회담이 끝나고 나오면서 김달술씨가 '김정일에게 안 당하겠다.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김 전 상임연구위원의 유족은 부인 박영순 씨와 자녀 김훈(강원대 교수)·김엽·김국경 씨, 사위 박용일(플러스허브 대표)씨, 며느리 서영주(강원도 여성특별보좌관)·김성란 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 유족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준비했던 모의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가게무샤(影武者·대역)'로 나섰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오전 6시 16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0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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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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