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에는 코로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코로나 19에 가려진 우한의 옛 영화

후베이성(湖北省)에 위치한 우한(武漢)은 코로나바이러스의 발병지이자 확산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라는 정식 명칭을 얻기 이전에 '우한 폐렴'으로 불리기도 했다. 생소했던 도시 우한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녔고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우한이 단지 바이러스로만 기억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동방의 시카고

후베이성의 성도(省都)인 우한은 우창(武昌), 한커우(漢口), 한양(漢陽) 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우한삼진(武漢三鎭)으로 불린다. 중국 중부의 중심도시이며, '구성통구(九省通衢, 9성으로 통한다)'라고 할 정도로 중국 최대의 교통 중추다.

우한은 '중부굴기' 정책의 중심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중국 7대 도시 중 하나이자 후베이성의 정치, 경제, 문화 및 교육의 중심도시이다. 또한 자동차 등 외국기업의 투자진출이 확대되면서, 국제무역도시로서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유구한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명청시대 우한이 속한 후베이성은 후난성(湖南省)과 더불어 '호광숙천하족(湖廣熟天下足)'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중국의 중요한 곡창지대가 되었다. '호광숙천하족'이란 속언에서 언급되는 호광이란 주로 양호평원(兩湖平原), 즉 강한평원(江漢平原)과 동정평원(洞庭平原) 일대를 말하는데, 우한은 강한평원 동부에 위치하여 매우 중요한 미곡생산지가 되었다. 광대한 평원과 더불어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한 후베이성은 식품자원의 보고로 '어미지향(魚米之鄕)'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양호평원에서 생산된 미곡은 편리한 수륙교통을 바탕으로 저장(浙江), 푸젠(福建), 광둥(廣東), 광시(廣西), 구이저우(貴州), 장시(江西), 쓰촨(四川), 허난(河南), 산시(陝西), 산시(山西), 간쑤(甘肅) 등 거의 전국에 유통됐다. 1858년 톈진조약(天津条约) 체결 후에는 한커우 진(漢口镇)의 하류 창강(長江) 연안에 5국의 조계(租界)가 설치되어 한커우의 대외무역이 급속히 발전했다. 한커우의 번창한 모습과 우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은 외국인들에게 당시 미국 제 2의 도시인 시카고를 연상시켰고, 이후 우한은 '동방의 시카고(東方芝加哥)'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혁명과 독립운동의 성지

한편 우한은 중국 근대사에서 신해혁명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1911년 5월 청 정부는 민영이던 철도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담보로 열강에게 차관을 얻어 재정난을 타개하려 했다.

그러자 9월 쓰촨(四川)에서 대규모 철도 국유화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10월 10일 중국혁명동맹회의 영향을 받은 혁명 단체가 우창(武昌)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우창에서 일어난 봉기는 전국에 파급되며 전국적인 혁명 전개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 개혁의 가능성을 열어놓게 되었다.

또한 우한은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가진 도시이다. 1938년 10월 우한에서 조선민족전선연맹의 항일 무장부대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창설됐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관내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설된 조선민족의 항일무장단체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

조선의용대는 후베이성과 후난성(湖南省)의 전선에서 장제스(蔣介石)가 위원장으로 있던 중국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으면서, 김원봉(金元鳳)을 대장으로 항일 선전 공작 업무를 맡았다. 상호지원을 통한 대일전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서 그 필요성이 절실했던 군사상의 한중연합전선 형성의 선도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대일투쟁 활동에서도 조선의용대는 특이한 공작방식들을 개발해 대원들의 우수한 자질과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남겼고, 일본제국주의 통치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또한 그 활약상은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해외동포의 국제적인 관심과 원조를 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1940년대 중국 관내에서 한국인의 양대 군사조직이던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대의 창설 및 발전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우한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도시다.

과거 신종전염병이 발발했을 때 지명을 이용해 병명이나 병원체의 이름을 많이 지었다. 일례로 에볼라(Ebola virus), 한타바이러스(hantavirus), 스페인독감(Spanish influenza)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지명이 포함된 병명은 특정 지역이나 사람에 대한 혐오로 발전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명이나 동물, 특정 직군이 포함된 이름은 사용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따라서 발명 초기 '우한 바이러스' 혹은 '우한 폐렴'으로 불리었던 이 신종 전염병은 지명이 제외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지표상 신종 코로나 확산이 종식 국면에 접어들고 세계 각국에서 유행하면서 중국 일각에서는 얄궂게도 슬그머니 발원지 논쟁을 펼치며 한발 빼려는 움직임을 취하였다. 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 정부 고위 당직자들은 공식 석상에서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 '우한 바이러스(Wuhan virus)'로 부르며 유행 초기 중국 당국의 은폐 시도와 늦장 대처 등의 책임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더불어 한국의 여러 매체 역시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 '우한 폐렴' 혹은 '우한 코로나'를 고집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쓰라린 경험과 발원지로서의 책임, 중국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과 태도로 인해 우리는 우한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한동안 바이러스를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3500년의 역사를 관통하며 '어미지향(魚米之鄕)', '구성통구(九省通衢)', '천하사취(天下四聚)', '사대명전(四大名镇)', '백호지시(百湖之市)', '동방의 시카고(東方芝加哥)' 등으로 불리며 명성을 쌓아오고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지닌 우한이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로만 낙인되는 것이 못내 씁쓸하고 안타깝다. 우한을 들었을 때 편견과 혐오가 아닌 우한의 유구한 역사와 한국과의 깊은 인연 역시 함께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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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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