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무말 대잔치' 브리핑에도 지지율 오르는 이유?

[2020 미 대선 읽기] 코로나 사태를 선거에 활용하고 있는 트럼프 vs. 행방불명된 민주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언론을 싫어한다.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CNN 등 대다수 언론들이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기자회견에서 CNN 짐 아코스터 기자 등과 여러 차례 설전을 벌였으며 "당신은 끔찍한 인간"이라는 말을 아코스터 기자에게 대놓고 했고, 이후 이 기자는 백악관 출입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성향은 백악관 언론 브리핑의 전통을 무너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 100년 전통의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 불참하기도 했다. 기자들이 대통령과 접촉 기회가 줄어드니,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 때문에 이동하는 도중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됐다. 헬리콥터를 대기시켜 놓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헬리콥터 회견'(chopper talk)은 트럼프 백악관의 진풍경 중 하나다.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복도에서 잠깐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대치하던 행태와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탄핵 사태 등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언론 보도들에 대해 '가짜 뉴스'라 비난하면서 '언론 탓'을 했다.

트럼프, '아무말 대잔치' 코로나 브리핑..."나는 한국을 잘 안다. 서울 인구는 3800만 명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최대 위기인 코로나 사태(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를 맞아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일일 브리핑에 참여한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변하기도 한다.

지난 2월 26일 백악관 코로나 TF를 처음으로 꾸리고 펜스 부통령의 TF 책임자로 정했다는 사실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독감과 코로나19를 비교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일' 정도로 의미 부여를 하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바이러스가 전파되면서 국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에 나섰다. 위기에 앞장서 싸우는 리더십을 연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전염병 확산이라는 위기는 금융위기, 테러 등 미국이 근래 겪은 다른 위기보다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할 뿐 아니라 예측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할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자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지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했던 것, 지난 주 갑작스레 부활절(4월12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까지 언급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풀고 경제 활동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등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보여준다.

게다가 매일 한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방송으로 생중계 되는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많은 '거짓 정보'를 쏟아내고 있고 이런 '거짓 정보'가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7일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말한 뒤, 미국의 60대 부부가 이 약을 잘못 복용해 남편이 사망하고 아내가 중태에 빠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뉴욕주에서 마스크 등 의료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마스크가 어디로 가는 거냐, (병원) 뒷문으로 나가는 거냐"라고 의료진이 부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자신이 목숨까지 담보로 내놓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인구당 검사수에서 미국은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누구보다 한국을 잘 안다"며 "서울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 아냐? 3800만 명이다. 우리는 광대한 농지가 있고, 큰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은 넓은 지역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검사를 많이 한 것을 미국과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만, 명백한 오류다.(서울의 인구는 973만여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에도 미국이 코로나19 검사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CNN은 생중계 화면에 '트럼프의 미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이 검사를 했다는 말은 틀렸다 : 100만 명당 한국은 5%, 이탈리아는 4% 더 많이 검사를 했다'고 오류를 수정하는 자막을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은 부풀리고, 실제 위험은 축소해 말하고 있으며, 백악관의 코로나TF 브리핑을 그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WP는 지난 21일 "트럼프의 위험하고 파괴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브리핑을 생중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일 브리핑을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하지 못하게 된 선거 유세 대체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칼럼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과 대공항을 겪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에 견주어 자신을 격변의 시기 나라를 용감하게 이끄는 전시 대통령, 즉 '21세기판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묘사하려고 한다며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정치적 목적'의 브리핑을 생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발언의 진위에 대해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로나19는 전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방송들은 생중계를 포기하지는 못하고, CNN은 팩트체크팀을 배치해 대통령의 거짓 발언을 실시간으로 바로잡는 등 언론들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트럼프, 코로나 국면에 오히려 지지율 올라..."돈 한푼 안 들이고 선거운동 중"

코로나 사태에 국가 리더로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후보로서 그의 지지율은 오히려 오르고 있다.

WP와 ABC방송이 29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등록 유권자들 사이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49%, 트럼프 대통령은 47%의 지지율을 보였다. 지난달 조사에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52%로 트럼프 대통령(45%)을 7%나 앞섰다.

아직 민주당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소폭 앞서고 있지만, 두 후보의 열성 지지층을 비교해보면 11월 승리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록 유권자 중 55%는 '매우 열성적'이라고 답했고 32%는 '다소 열성적'이라고 답했다. 반면 바이든 전 부통령 측은 28%가 '매우 열성적'이라고 했고 46%가 '다소 열성적'이라고 답했다.

WP는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열성 지지층이 적다는 것은 이들이 투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바이든 전 부통령은 행방불명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 정국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전략적으로 처신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백악관 브리핑을 선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돈 한푼 안 들이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에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장이 아무 것도 없다"며 "선거의 관점에서 코로나 사태를 보면 트럼프에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백악관에서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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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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