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90년대 이후 '정보화', '세계화', '고령화'를 비롯한 '지식기반경제', '기후변화'라는 메가트렌드가 지속적이고 역동적으로 추동하는 역사적 변환기에 살고 있다. 이러한 메가트렌드에 대한 이해는 지리학의 본원적 연구 과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리학은 생활공간을 공간적·생태적 관점에서 다양한 지표 현상과 그 변화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통하여 생활공간에 존재하는 질서의 이해와 지속 가능한 미래의 생활공간을 구상하고 계획하는 데 공헌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지리학은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 특히 경제지리학의 연구대상인 '경제과정(economic process)'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경제지리학의 연구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학술적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지리학 연구영역의 확대 가능성과 새로운 연구 과제의 모색을 통해서 담론화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담론은 일반적으로 '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출하는 논리성을 갖는 언술 체계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식체계'로 이해되며, 그 의의는 현실에서 전개되는 각종 사건과 행위들을 이해하는 해석적 틀 혹은 인지적 틀을 제공하는 데 있다.
기후변화는 자연적 내부 과정이나 외부 강제력에 의하여 초래된다. 이러한 기후변화의 동인 중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외부 강제력으로 태양 주기의 변조, 화산 폭발, 인위적 요인에 의한 지속적인 대기 성분 및 토지이용 변화 등이 포함된다.
그 특성으로는 먼저 20세기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경제사회구조는 천연자원의 대량사용과 에너지의 과잉소비로 지구환경오염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기후시스템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기후시스템은 다시 자연생태계와 인간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순환계적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영향은 더욱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그 영향은 내용 면에서는 전 기후요소 및 지구환경과 인간생태계에 걸쳐, 그리고 공간스케일 면에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국지적 혹은 가계차원에 이르는 다면적이고 다중스케일적인 동시에 지역적으로 매우 차별적이다. 즉 기후변화와 그 영향은 경제적 과정의 투입재인 동시에 그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신환경기술 및 에너지체계의 개발 등)은 경제적 경쟁력을 담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과 공간 차별적이라는 점에서 경제지리학의 중요한 연구영역이기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경제지리학의 학술적 성과는 매우 미흡하다. 그 원인은 경제지리학의 연구대상인 '경제'에 대한 경제학의 인식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경제학과 경제지리학은 경제현상 혹은 경제과정이라는 연구대상을 공유한다. 그런데 '자연'과 '경제'는 근본적으로 분리해서 존재한다는 경제학의 인식체계는 직·간접적으로 경제지리학, 특히 논리실증주의 경제지리학의 지식체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기존의 경제지리학 분야에서는 기후변화를 포괄하는 자연환경 및 그 변화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학문적 대응에 대한 학계 수요는 크지 않았고, 이와 관련된 연구업적도 크게 축적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리학은 경제학과는 달리 경제적 과정은 환경적, 사회·경제적 과정과의 상호작용 속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는 전통적 인식체계를 기반으로 존립하여 왔다. 따라서 기존의 기후변화에 대한 경제지리학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지리학 고유의 인식체계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경제지리학적 패러다임 개발과 그 연구영역의 확대가 요구된다.
학문연구란 변화하는 실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지리학적 연구는 다중스케일적 지역 차원에서 실제로 지리적 사상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서 각 지역은 무엇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를 전체 시스템의 차원에서 읽어내어야 한다.
지리학은 자연과 경제/사회를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는 유기체로 인식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론에 의거 하여 '경제체계에 있어서의 재화의 흐름'에 기초하여 경제활동과 자연환경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첫째, 자연환경은 천연자원의 형태에서 생산과정에 필요한 투입물의 제공자로서 기능한다.
둘째, 자연환경은 쓰레기 폐기물(예를 들어, 토양 및 해양 폐기물)과 오염 물질(예를 들어, 토양, 대기, 물 등에 흘러드는 오염 물질)의 형태에서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부산물의 수령자로서 기능한다. 즉 경제가 자연을 변형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은 사회적으로 변화되어 재창조되지만, 사회는 본질적으로 자연의 변형에 토대를 두는 이러한 순환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를 기초로 경제지리학의 실질적 연구대상인 '경제 공간'을 매개로 하는 경제과정과 기후변화와의 순환시스템(그림 1)을 통하여 기후변화와 그 영향에 대한 경제지리학 연구영역의 확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20세기에 구축된 산업자본주의의 경제체제는 대량생산에 따른 천연자원과 화석에너지의 과다사용과 과잉소비는 자연의 파괴를 야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량생산과정에서 방출되는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 잔여물과 폐기물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여 환경부하를 가중시켰다.
이러한 환경부하는 당연히 기후변화의 외부 강제력으로 작용하였고, 전 지구적 차원의 심각한 자연환경파괴의 핵심적 요인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영향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위기의식을 야기하였고, 이는 다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이와 관련된 정책이 상당한 수준에서 개발되어왔고,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양식은 환경비용부담과 환경기술개발의 형태로 경제적 과정에 영향을 다시 미치게 되는 순환적 관계 형성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그 영향에 대한 경제지리학적 연구는 기존의 자연에 대한 경제학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경제공간을 매개로 한 경제과정과 기후변화와의 순환시스템 상에서 자연이 경제적 과정에서 통합되는 방식과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자연생태계의 회복을 둘러싸고 출현하는 경제과정의 재생산방식에 대한 설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기존의 '경제체계에 있어서의 재화의 흐름'과 '경제 공간을 매개로 하는 경제과정과 기후변화와의 순환시스템'을 전제로 기후변화와 그 영향에 관한 경제지리학적 연구들은 ① 천연자원을 중심으로 한 자연이 경제과정으로의 투입에 관한 영역, ② 경제 과정에서의 발생한 환경에 대한 부하에 관한 영역, ③ 기후변화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환경비용 부담에 관한 영역, ④ 기후변화 극복을 위한 환경기술 개발영역 그리고 ⑤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정책 개발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 및 그 영향에 대한 경제지리학적 연구영역과 영역별 주제의 확대를 위해서는 먼저 최근 지속 가능한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환경경제지리학자들의 3대 연구주제인 산업의 지속가능성, 도시와 농촌 생활에 있어서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및 경제의 세계화와 사회-경제적 취약성과의 연관성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①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국가 또는 지역의 고유한 요인과 제도가 어떻게 지속가능성의 궤도를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② 도시와 농촌 생활에 있어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로는 새로운 주택개발이 어떻게 지속 불가능한 '소비 경관'을 창출할 수 있는지와 가계의 소비 및 폐기물 관리 관행의 변화가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미친 영향과 공동체 지원 농업과 '대안적' 식품 네트워크에 대한 전망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③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및 경제의 세계화와 사회-경제적 취약성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공동체와 국가가 지구 온난화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과, 온실 가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의 개발 등이다.
본인은 이상의 환경경제지리학의 연구주제 이외의 기후변화와 그 영향에 대한 새로운 경제지리학적 연구주제로 ① 공간스케일에 따른 경제과정에 기후변화와 그 영향이 미치는 부작용과 여파에 대한 연구, ② 기후변화와 그 영향 자체의 상품화에 대한 연구, ③ 지속 가능한 개발에 기초한 기후변화와 그 영향에 관한 대안적 정책모델 개발 등을 제안하고자 한다.
※ 이글은 기후변화(2015), 제10권 제2호에 게재된 저자 논문의 일부를 수정 가필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이철우 교수는 일본 나고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북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소장, 대구광역시 도로명주소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지리학회, 한국지역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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