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추모의 시가 아니다

[추모시] 쌍용차 정리해고 서른 번째 희생자 영전에

쌍용차에서 서른번째 정리해고 희생자가 나왔다. 자택 뒤 야산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고인은 노사간 합의한 해고자 복직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지키지 않자 생활고에 시달려온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복직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 고인에게는 그간의 과정이 희망고문이었던 셈이다.

29일 아침 9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고인의 노제가 열린다. 이날 노제에서 송경동 시인이 추모시를 읽는다. 시인의 추모시를 싣는다.

2009년 4월 2646명이 부당해고 되었다
해고되지 않은 자는 ‘산자’로
해고된 자들은 ‘죽은자’로 공식 명명되었다
우울증과 조울증이 가정불화와 생활고가 죽인 게 아니다
2009년 ‘노동사건 관련 역대 최대’로 출범한 특별수사본부가 죽였다
쌍용차 사이버댓글부대의 ‘폭도’라는 모함이 죽였다
댓글을 충실히 따라 쓴 언론들이 죽였다
조현오가 죽였다
진압을 명령하고 허가한 이명박이 죽였다
수도와 전기와 밥이 끊긴 시커먼 밤이 죽였다
진압을 명령받고 콘테이너에서 뛰어내린 테러진압부대가 죽였다
심야에 ‘유례없이 긴 시간 공중에 떠‘
고난도 저공비행으로 공포를 낙하하던 헬기가 죽였다
온 신경을 마비시키던 최류가스가 테이저건이 죽였다
퍽 소리가 나던 소화기가 죽였다
수직으로 머리를 내리찍던 날카로운 방패날이
허리를 휘감던 3단봉이, 갈비뼈를 골절시키던 군홧발이
두 손을 뒤로 묶던 케이블타이가 죽였다
다 죽여! 라던 경찰특공대의 목소리가 꿈속까지 쫒아와 죽였다
경찰과 ‘돈독한 신뢰관계를 형성’한 회사가 합동으로 죽였다
진압 후 격려전화를 해 온 정부 고위관리들이 한통속이 되어 죽였다
‘단일사건 최다구속’ 65명을 구속하며 자축하던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죽였다
460억의 손배가압류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쫒아다니며 죽였다
김주중 당신에게는 24억이 따라 다녔었다
그날 온몸을 감싼 멍이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누명이 억울이 공포가 10년 넘게 쫒아다니며
즉은자들을 다시 확인사살했다
고법 판결을 뒤집고 사법거래에 나선 양승태 대법원이 두 번 죽였다
부당한 재판거래 원천무효 책임자처벌 재심에 나서지 않는
김명수 대법원이 세 번 죽이고 있다
선거 때마다 약속한 국정감사를
나 몰라하는 대한민국 국회가 연거푸 죽이고 있다
2015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마힌드라가
쌍차 사장이 희망고문으로 끝없이 죽이고 있다
노사문제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만과 불통과 허세의 청와대가 반듯하게 죽이고 있다
여전히 생명을 구하는데 무능하고
진실을 건져 올리는데 무능한
이 국가가 체계적으로 죽이고 있다

한 두 명도 서른 명이나 죽였다
지금도 병동을 오가고
약을 먹어야 버틸 수 있는 이들이 많다
지금도 누군가 죽음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현대판 홀로코스트
해고는 살인이다를 전수조사하는
신 731부대의 생체실험장
절규와 호소를 파묻고 파묻는 집단학살 현장
언제까지 이 학살을 두고 봐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 눈물과 통곡을 들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 불의를 용서해야 하는가
언제야 진실은 회복되는가

모두가 나서서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
죽음을 생산하는 저 공장을 멈춰야 한다
눈먼 자본가들의 탐욕과 특권을 드러내는
촛불은 다시 타올라야 한다
생산자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불의한 구조 자체를 종신형에 처해야 한다
김주중에게 또 다시 잘 가라라고 말할 게 아니라
31번째 32번째 대기자에게 또 미안하다고 말할 게 아니라
이 부당한 세계여 ‘잘 가라’라고 말해야 한다
서른번 째 눈물의 무덤을 다시 세울 게 아니라
우리의 착함과 우리의 적당과
우리의 분열과 우리의 체념을 먹고사는
저 모든 기득권과 권력 앞에
우리의 분노를 꼭지가 돌게 세워야 한다
이 더러운 자들아, 이 나쁜 새끼들아, 이 잔인한 놈들아 ‘잘 가라’라고
우리 모두의 투쟁을 뿌리깊게 세워야 한다
꽃은 나중에 줄테니 기다려 달라고 그에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추모의 시가 아니라
분노의 시, 결의의 시라고 그에게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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