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하냐'고 생각되는 많은 경우가, 몰라서다.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게 어떤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 사람이 인성이 나빠서, 무책임해서, 파렴치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를 쓴 황선미 작가의 신작 <엑시트>는 우리가 너무 몰랐던, 그래서 '책임도 못질 아이를 낳았다'고 곁눈질 했던, 10대 미혼모의 삶에 대한 얘기다.
장미는 그 아이를 데리고 보호원을 탈출했다. 그리고 모자 보호원에서 만난 친구 진주의 자취방에 얹혀살며 '하티'를 키운다. 아이 이름은 술 취한 진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그렇게 불러줘서다.
"장미는 입양도 보육원도 선택할 수 없었다. 하티를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건 J 때문도 사랑 때문도 하티가 불쌍해서도 아니었다. 하티는 배속에서부터 장미 것이었다. 배 속의 장기나 손가락처럼 몸의 일부였으니 태어났어도 달라질 게 없었다. 세상에 자기 것이라고는 없는 장미에게 하티는 먹어야 하고 돈 벌어야 하고 잘 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였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내 것'이라고는, '내 편'이라고는 없는 장미에게 하티는 "배꼽 통증으로 느껴지는"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하티는 출생신고도 못해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지만, 장미에겐 사회와 연결된 유일한 '끈'이다. 이 끈이 떨어지면, 장미의 부모가 장미에게 그렇듯,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사람이 아니다. 홍수가 나면 구정물이 차오르는 지하 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친구 진주가 분유는 제때 먹이는지 기저귀라도 제대로 갈아주는지 몰라도, 잘 씻기지 못해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하티를 장미는 끝까지 놓지 않는다. 장미는 하티를 키우기 위해 사진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된 성인 해외 입양인들을 보며 자신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이들은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아이를 볼모로 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엄마가 새 출발을 하고, 아이가 더 나은 가정에서 자라기 위해서'라며 미혼모들에게 '입양'을 권한다. 장미도 모자보호원에서 그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해외로까지 입양 보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애초에 한국 사회의 관심은 미혼모와 그 자녀 '문제'를 없애는 것에 있었지, 미혼모와 그 자녀들에게 있지 않았다.
밀리언셀러인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청둥오리를 키우는 암탉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의 의미를 물었던 황선미 작가는 신작 <엑시트>에서 또 다른 의미의 '모성'에 대해 묻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세상의 통념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용기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작가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의 모성에 찬사를 보낸 한국 사회가 <엑시트>의 장미에게도 찬사와 격려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황선미 작가는 미혼모와 입양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작품으로 다루기 어려웠는지 '작가의 말'을 통해 고백했다. "입양. 이 소리를 짊어지고 참 오래 걸어왔다. 떨쳐 내지지 않는 이물감을 안고 오는 내내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지병에 시달렸는데 그 원인이 몸이 허술해서라기보다 이 문제를 원고로 풀려는 욕심 혹은 스트레스가 너무 지독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 얼마 전에 만난 화가의 작품은 좀 더 인간적인 아픔을 각인시켰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 상흔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원초적인 폭력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왜 그렇게 멀고 낯선 곳까지 가야 했는지 의문이었던 입양인 화가의 작품 속 여성의 얼굴은 하나같이 비어 있다. 이목구비가 없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몰랐다. 모른다는 말은 무책임하다는 말의 미화된 표현이기도 하다. 2017년에도 398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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