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실크로드, 이제 대륙길이 뚫렸다

[기고] 한국,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정회원국으로 가입

대륙철도로 가는 길이 하나씩 열리고 있다. 5일부터 키르기즈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정회원 가입이 의결됐다. 신규 회원 가입은 정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승인되는데 그 동안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던 북한의 전향적 찬성으로 한국은 국제철도시대를 열게 되었다. 국제철도협력기구 가입은 남북철도 연결 이후 유럽으로 가는 철의 실크로드에 한국철도가 연결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화해와 평화, 남북 공동번영으로 달려갈 수 있는 제1막 1장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철길은 중국횡단철도, 만주종단철도, 몽골종단철도를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이어진다. 또 이들 철도 노선은 러시아와 중국에 인접한 중앙아시아 여러 노선과 연계되어 있다. 유라시아 철도의 중요한 간선과 지선들에 이어진 나라들은 철의 실크로드를 운영하기 위한 국제철도표준을 준수하고 상호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국제철도협력기구를 구성했다. 이제 한국은 이 기구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섬 아닌 섬에 갇혀 4000킬로미터 남짓한 노선을 달렸던 한국철도가 28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철도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는 것은 거대한 도약의 출발점에 섰음을 의미한다. 국제철도협력기구의 일원으로서 첫 과제는 남북철도 연결 사업이다. 북한 철도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대륙철도 연결을 위해서도 시급한 사업이다. 철도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은 단순히 철도 물동량을 확보하고 경제적 이익만 얻는 것이 아니다.

안정적인 철도 운송을 위해 남북 간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군사적 대치를 완화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과거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철길을 놓는 과정에서 북측의 군부대가 이전하고 지뢰밭이 제거되었다. 전략무기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보다 평화의 철도 노선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남북 간의 상호 신뢰 속에 군사적 긴장이 사라진 세상을 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연합뉴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의 물류 운송 효과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7day 미션이라고 명명된 과제로 9000킬로미터가 넘는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간의 시베리아 횡단 노선을 현대화, 화차 고속화, 국제 철도화물 통관 간소화를 통해 화물열차가 1주일 안에 주파하도록 하는 것이다. 1일 1400킬로미터 운행 목표로 추진된 과제가 성공하면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과 접속된 물류는 기존보다 2-4일의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아시아의 기점이 되는 한국에서 출발한 화물이라도 유럽에 10여일 남짓 만에 도착하게 된다. 38-40일 소요되는 해상운송에 비해 훨씬 효율적인 물류 루트를 확보하게 된다.

중국 또한 지난 수년간 정책적으로 철도망 확충과 개선사업에 나서 철도를 통한 중국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른바 일대일로 사업으로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64개 국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되며 전 세계 인구의 63%에 해당하는 44억의 인구를 포괄하는 거대 권역이 형성된다. 세계 최장의 고속철도 인프라와 차량제작사를 보유한 중국 철도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강대국의 철도투자는 대륙철도 연결을 준비하는 한국철도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철도산업은 시설과 운영 차량제작 산업의 삼위일체 구조이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시설 건설능력과 고속철도 운영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특히 내수 수주량의 한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철도차량제작 산업은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리고 있다. 북한의 철도 차량 대체와 대륙운행 열차의 제작은 철도차량제작 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 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이런 기대효과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한국철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시설과 운영의 분리로 기관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국제수주전에서도 제대로 협력하지 못했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SR분리 등 과거 철도 민영화를 전제로 해서 진행된 근시안적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

새로 열리는 대륙철도시대는 중국, 러시아, 유럽뿐만 아리나 키르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와의 많은 나라와 몽골에 까지 철도 협력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평화로 얻은 철의 실크로드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서울역 국제선 청사에서 전광판에 뜬 대륙의 도시들을 보며 열차를 기다리는 가슴 떨리는 일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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