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시절 건설된 영광원전, 31년이 지난 지금은…

[함께 사는 길] "핵발전소에 핵폐기물까지 떠넘길라고?"

전남 영광군 홍농읍 양지마을. 한빛발전소 콘크리트 돔 6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군데군데 빈집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겨울 추위를 피해 주민들이 경로당에 모여 있었다. 핵발전소 이야기를 꺼내자 누워있던 주민들이 저마다 한 소리씩 한다.

"첨에는 생활비도 주고 먹여 살려줄 것처럼 그드만 개뿔 암것도 읍다."
"노인연금 받아먹고 산다."
"일을 시켜도 잔디 뽑고 뭐 그런 허드렛일만 우리 주민덜 시키고 돈 많이 주는 일은 도시에서 사람 불러온다."
"방안에 누우면 발전소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린다. 사고 났다는 소식 들리면 무섭제. 떠나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 떠나제. 그냥 나 잡아먹어라 하고 살제."

표정은 어둡지만 "여기 6기가 있는데 이제 더는 못 들어온다"라고 말할 때는 힘이 느껴졌다. 분노의 힘이다.

▲ 양지마을 옆 한빛핵발전소 6기의 돔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함께사는길(이성수)

핵을 떠안고 산 31년

"이 공사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지역개발에 기여할 중요한 국가적 사업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1981년 2월 19일 영광 1, 2호기 기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이다. 이 사업을 위해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논과 밭을 한 평에 1200원, 2000원씩 받고 넘겼다. 당시 원전 개발로 주변 땅값이 5만 원이 뛰었다는 등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지만 주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헐값에 땅을 빼앗기듯 넘긴 주민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는 1978년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전원개발에관한특례법'까지 제정된 터였다.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란 미명 하에 주민들의 땅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도록 한 그 법 탓에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헐값에 터전을 뺏긴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또 누구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핵발전소가 마을을 먹여 살려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1986년 영광 1호기와 1987년 영광 2호기가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하자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원전에서 근무한 이의 아내가 무뇌아를 출산했다, 사산되거나 유산되는 송아지들이 늘었다, 기형 강아지들이 태어났다 등의 이야기들이 퍼져나갔다. 바다에서도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발전소 인근 바다에서 몸 전체가 휘어진 기형 물고기를 잡았다,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배수 때문에 김이 흉작이고 조개류도 폐사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퍼져나갔다. 실제로 이러한 피해들이 헛소문이 아닌 사실로 밝혀지고 비슷한 피해들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주민들은 방사능 오염 공포에 떨었다. 경제적 피해도 이어졌다. 논밭 땅값이 곤두박질치고 도시 사람들은 영광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수산물을 기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1990년 1년여에 걸쳐 역학조사를 진행, 원전과는 관련성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민들의 공포와 경제적 피해는 계속됐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광 3, 4호기, 영광 5, 6호기를 연달아 추진했다. 이미 영광 1~4호기 가동으로 배출된 온배수로 인해 인근 바다가 황폐해졌고, 환경영향평가에서도 영광원전은 수심이 얕고 조석간만의 차가 큰 곳이라 추가적인 발전소 건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지만 환경부는 온배수 저감대책을 마련하라는 사후보완을 조건으로 원전건설을 허가했다.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영광군수는 1996년 2월 민의에 따라 앞서 승인한 원전 5, 6호기 건축허가에 대한 취소처분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언론들은 앞다투어 원전을 취소한 영광 주민들을 지역 이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주민들 때문에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언론의 비난을 타고 원전 발주자(당시 한국전력공사)는 영광군의 건축허가 취소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영광군이 원전 5·6호기 건축허가를 취소했으나 건축법상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없다'며 한전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기어이 영광 5, 6호기까지 밀어 넣고야 만 것이다.

영광 1호기의 시작으로부터 31년이 흘렀다. 영광발전소는 한빛발전소로 이름만 바꾼 채 주민들의 삶을 옥조이는 현실은 늘 같다. 지난해에는 한빛4호기 격납건물의 철판 부식과 콘크리트 구멍, 증기발생기 아래 망치 발견 등 주민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단기저장시설? 폭풍 전야의 영광

▲ 장영진 씨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에 전 국민이 관김 갖고 함께 대응해 달라고 호소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영광이 반핵의 성지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여전히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장영진 씨의 말이다. 영광군에서 농사를 짓는 그는 '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다. 영광 주민들은 영광핵발전소가 들어설 때마다 반대운동을 거듭하면서 주민들 간 갈등과 분열도 반복됐고 반대운동이 님비현상으로 치부되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뿐 아니다. "핵발전소 주요 사건사고가 터지면 우리 지역이 입는 피해는 더 막대하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학교 급식에 쌀을 납품하려고 했는데 부모들이 반대했다. 왜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쌀을 받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해도 국민들은 아니다"라며 착잡해 했다.

끈질긴 활동으로 주민들은 한빛원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안전하게 유지 관리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감시센터 설치와 한빛 6호기 이후 더 이상의 핵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민들은 이제 원치 않는 새로운 싸움에 내몰리고 있다. 사용후핵폐기물 단기저장시설 계획 때문이다. 장영진 씨가 지역신문 한 부를 보여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낸 광고가 전면에 실려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건식저장시설' '전원 공급 없이 자연바람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열을 식히는 건식저장시설' '세계에서 인정받은 시설, 지진에도 견디는 견고한 시설' 등을 내세우며 건식저장시설을 홍보한다. 또 다른 지역신문에는 '한수원 지역상생발전기금 450억 원+α 제시'란 기사가 1면 탑으로 실렸다. 전면광고를 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문이다.

"2017년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선언하고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재공론화를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수원은 이미 소리소문없이 움직이고 있다."

장 위원장의 한숨이 깊었다.

영광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2003년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돼 이미 핵폐기물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지역이 산산이 쪼개지는 아픔을 무릅쓰고 쫓아냈던 핵폐기물 처분장이 형태를 바꾸어 다시 등장한 건 박근혜 정부 때다. 박근혜 정부는 각 핵발전소 내 건식저장시설(임시저장고)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고준위핵폐기물 기본관리계획을 세웠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이 완성될 때까지 임시 저장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당장 포화 직전에 이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해 핵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가깝다. 또한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과 건설까지 얼마나 걸릴지, 실제 가능한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임시저장고 형태가 항구적으로 갈 수도 있고 핵발전소 지역 모두가 고준위핵폐기장이 될 수 있는 문제다.

핵발전소에 이어 고준위핵폐기장까지 떠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인근 주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탈핵을 바라는 시민사회 역시 박근혜 정부의 고준위핵폐기물 기본계획을 적폐 중 하나로 지적하며 대선 후보들에게 고준위핵폐기물 관리계획 재검토 및 공론화 재실시를 요구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를 약속했고 현재 해당 핵발전소 소재 지역 공론화를 통해 임시저장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입장에서는 당장 단기저장시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핵 발전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다. 특히 한수원은 2024년 포화 예정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광지역에 건식저장시설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수원은 지역 부녀회장, 이 장단들을 경주 쪽으로 여행을 보내주고 있다. 말이 여행이지 발전소 견학이다. 경주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보여주고 괜찮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갔다 온 사람들 중에는 한수원의 설득에 넘어간 사람도 적지 않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을 겪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장 위원장은 한수원이 공세적인 여론전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영광군민들은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해 잘 모른다. 위험 관련 정보는 감추고 공개 정보는 설치에 유리하게 잘 포장된 것들이다. 그런 뻔한 수작을 믿게 만드는 게 돈이다. 여론이 안 좋아지면 지원금이라는 카드를 뽑아 주민들을 이간질시킨다. 공정한 게임이라 할 수 없다."

고준위핵폐기물 전 국민의 문제

영광 탈핵시민사회는 단기저장시설 설치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탈핵에너지전환전북연대, 핵없는광주전남행동, 핵없는세상을위한고창군민행동은 고준위핵페기장 호남권 공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지난 1월 31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주민에 대한 선심 공세 및 임시저장고 설치에 관한 어떤 행위도 일체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고준위핵폐기물 기본계획 및 관련 법안 백지화 및 원점에서 다시 논의, △중간·최종 처분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임시저장고 협의·건설 추진 반대,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핵발전소 소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전국이 함께 논의하고 대응해야 할 것 등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장 위원장은 전국 탈핵시민사회가 임시저장고 문제와 문재인 정부의 재공론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발전소가 있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발전소로부터 생산된 전기를 공유한 온 국민의 문제다. 그동안 핵발전소 때문에 피해를 받아온 주민들에게 핵폐기물까지 관리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부의 공론화가 아닌 탈핵을 원하는 시민사회 내의 공론화가 먼저 필요하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그동안 입은 피해와 고통을 제대로 알아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바람직한 방법인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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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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