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 '정부 vs. 의협' 프레임은 위험하다

[서리풀 논평] '문재인 케어'의 성공과 정치

여기서 성공은 정부가 발표한 일정에 따라 미리 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행 과정에서 아무 말썽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정책이 성공한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본래 단순하고 명료하다.

문재인 케어가 성공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부담과 고통을 덜도록 건강보장과 건강보호의 양과 질이 크게 좋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 누구도 아닌 사람과 시민의 시각에서, 이들의 좋은 삶을 위해 문재인 케어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굳이 시기를 나누자면 지금까지는 준비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무엇을 하겠다고 가늠하고 알리며 정책을 추진하는 태세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 이 정책에 영향을 받을 쪽은 정책 내용과 예상되는 변화를 이해하느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현실을 따지고 미래를 예상하는 시기였다.

이제 국면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붙이자면 본격적인 ‘정치'의 시기. 여기서 정치란 그의 전통적인 정의가 꼭 들어맞는다. 서로 다른 행위 주체들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한정된 가치를 어떻게 배분할지의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시기다. 가치는 반드시 경제적인 것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

일차로 경제적 이해관계가 본격적으로 충돌할 참이다. 의사협회가 극우 인사를 새로운 회장으로 뽑은 것부터 그렇다. 많이 남아 있는 비급여를 건강보험 급여로 바꾸면(문재인 케어의 핵심 구상이다) 의사들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될 것이라는 불만, 이를 공공연하게 표출한 것이 바로 회장 선거였다.

이제 이들은 정부를 압박하면서 집단행동도 피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중이다. 의사들이 말하는 집단행동과 그 가능성은 그냥 말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하는바, 환자를 움직이게 하고 그를 통해 또한 정부가 행동하게 할 힘을 내포한다.

힘은 무엇인가를 바꾸는 능력이다. 집단행동이 목표로 하는 변화는 뻔하다. 시민과 환자를 불편하게 하고 그 불만을 정부로 향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떻게든 말썽을 줄이고 통치를 위협받지 않으려면 정부는 변화해야 한다.

모든 정치에는 상대가 있는 법, 의사들만 이해관계가 있을 리 없다. 먼저, 의료 내부에서 여러 직종이 게임에 참여하고 이해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한의사와 치과의사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그들은 힘의 관계와 결과의 유·불리에 훨씬 더 민감하다(☞관련 기사 : '문재인 케어' 의료계 갈등 심화…"국민 안중에 없나"). 장담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해당사자가 새로 참가하여 때로는 눈에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경쟁하고 싸울 것이다.

이 정책의 실행 주체인 행정부의 정치는 여러 상대에게 실력과 성의를 보이면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집중될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나쁜 상황은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 그리고 일을 소홀하게 하거나 무능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평가를 듣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으로 또 집단으로, 실무에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

이 과정에서 관료 정치가 작동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양적 성과의 정치다. 정치적 정책이 실속보다 외형에 치중하면, 공무원은 실제 성취한 것보다 양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관심이 크다. 예를 들어, 2022년까지 몇 가지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했고 그에 해당하는 총 진료비가 얼마라는 성과는 행정부와 공무원의 전형적 성과 지표다. 시민과 환자의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가 중요하지만, 이는 흔히 일이 끝난 다음의 분석, 더 멀리는 누가 할지도 모르는 연구 주제로 밀린다.

행정부와 관료 정치는 책임을 최대한 분산하려 한다. 본능적으로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행정부를 넘어 전체 정부와 정권으로, 때로 사회적으로 책임을 분산하려 시도한다. 위험이 예상되면 더하다. 처음부터 무리한 공약을 제시했다, 이익집단의 반발이 극심하다,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 상황이 생겼다, 이런 흔한 말과 표현을 내놓는 것이 바로 책임을 나누거나 미루는 정치적 행동이다.

문재인 케어가 정치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것, 그리고 주로 이해당사자와 행정부가 정치적 행위자로 드러나는 것을 말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전체 균형과 갈등(또는 충돌)을 설명하는 데 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해당사자, 시민사회, 사회권력 그 무엇으로 부르든, 시민과 대중, 또는 (잠재적) 환자가 빠졌다. 이 또한 정치적 주체지만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것은 언론이나 여론을 통한 것뿐이다. 그마저 분산되고, 조직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동질적 실체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들의 권력과 정치는 아직 모호하고 잠재된 가능성으로 남는다.

특정할 수 없다고 해서 부재(不在) 상태는 아니다. 정당, 시민단체, 다른 이익단체, 사회운동, 언론을 통한 권력 표출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개인도 끊임없이 요구, 항의, 비판, 계몽, 여론 형성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존재한다고 한들 힘의 크기를 비교하면 불균형이 뚜렷하다. 시민권력은 으레 분산되고 모호하여, 의사와 정부가 하나로 이해로 뭉치는 것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말로 이길 수 없고 행동으로도 미치지 못한다. 언론 보도, 집회와 시위, 토론회, 정부의 위원회와 자문, 국회의원들의 관심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치우침이 바로 권력과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누가 더 많이 말하고 전하는가가 권력 불균형과 불평등의 명확한 지표다.

문재인 케어의 정치에는 한 가지 권력을 더 고려해야 한다. 이른바 지식 권력 또는 전문가 권력이다. 어떤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어야 하는지, 어떤 급여에 얼마나 크게 보상해야 하는지, 지식과 전문가 권력이 독점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권력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점, 그리하여 다시 권력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권력 관계와 균형을 말했지만, 정치를 결정하는 권력은 머물러있지 않고 정치를 통해 늘 영향을 주고받는다(상호작용). 예를 들어, 의사단체는 시민의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정부도 마찬가지다. 시민이 어떤 사안을 강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면 이익집단과 정부는 자신을 조정해야 한다. 심지어 지식과 전문가 권력도 통제할 수 있다.

상호작용 또한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잊을 수 없다. 정부가 의사단체를 많이 만나고 속사정을 잘 이해할수록 의사의 요구가 수용되기 쉽다. 조직화한 이익집단은 다른 상대에게 쉽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지만, 권력이 약한 시민은 기껏해야 정부 위원회에서 형식적으로 잠깐 발언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정치 지형에서는 의사(또는 의료계, 병원 포함)와 중앙 정부가 독주할 태세다. 물론 우리의 관심은 이해관계의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다. 시민 또는 이와 연관된 정치적 주체들―시민사회, 국회, 환자, 지방 정부, 노동자, 장애인, 노인, 어린이, 여성, 취약집단―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의사결정에서 이들은 어떻게 대표되는가?

정치를 결정하는 권력관계는 당연히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독점과 전횡의 권력관계를 그냥 둘 수는 없는 법, 치우치고 왜곡될수록 시민 친화적인 문재인 케어로 갈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해관계만으로 봐도 세금과 보험료를 내는 시민에게 확실히 좋아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가장 급한 것은 이익집단과 정부의 양자 정치동맹이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 관건은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시민정치를 어떻게 조직하고 강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양자 모두에 시민이 '침투'하고 영향을 미치되, 도덕과 규범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힘)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시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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