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오랜미래의 두레패예술이 존재했다. 전국의 모든 마을마다 두레패가 있었다. 모내기나 김매기 때마다 풍물을 치며 상쇠가 선소리를 하면 뒷소리를 받으며 일하는 두레풍장과 새해를 맞이하는 지신밟기 등 통과의례를 지내는 풍물굿과 대보름과 농사장원 때 추는 탈춤으로 노는 두레패예술이 동네마다 마을마다 이어져 내려왔다. 일제 때, 그리고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때 사물을 빼앗기고 또 없애버리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던 우리의 공동체예술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21세기에 들어와서 이미 사라진 두레(마을공동체)와 두레패예술을 도시로 다시 불러내어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
1. 새로운 세대의 시민을 불러내야 합니다
촛불시민항쟁의 새로운 주역은 SNS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 청년들과 시민들이었습니다. 아직 조직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를 갖고 자기표현을 익숙하게 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의 시민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무브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 말입니다. 이들이 창작하는 SNS 미디어가 '두레코' 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과 모바일로 수많은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 커뮤니티들이야말로 지금은 사라진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인 '두레'를 온라인에서 다시 복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마을공동체는 애초에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서 풀뿌리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 두레가 온라인에서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친구와 이웃을 커뮤니티로 묶어주고 서로 소통하게 합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친구 네트워크 속에서 이웃 커뮤니티들이 온라인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새로운 커뮤니티들 가운데서 실생활과 연결되고 실생활에서 활동하는 것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마을공동체인 '두레'들이 나타나고 서로 두레코(두레그물코, 작은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촛불시민항쟁이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두레코 미디어의 가능성이자 두레코 미디어와 함께 하는 새로운 두레코 문화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2. 그 많던 촛불시민은 어디로 갔나요?
그렇지만, 그 많던 촛불시민은 어디로 갔나요? 보이지가 않습니다. 촛불항쟁의 주체는 시민들이지만, 조직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서 모여들었던 시민들 스스로가 소셜 미디어로 네트워크를 이뤄서 항쟁을 이끌어간 것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시민단체들의 연합체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촛불 시민은 어디에 있는가? 존재가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그 존재를 찾아주는 것이 촛불 이후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민들은 잠깐 깨어있었던 것이지요. 늘 깨어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늘 함께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요. 헬조선의 시민행동은 그래서 SNS를 통해서, 사안마다 제각각으로 댓글로 항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잠깐, 시시때때로 깨어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촛불시민들의 요구와 행동을 이어주고 엮어줄 수 있는 지속적인 네트워크 활동과 조직 활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 답은 '지역'에 있습니다. 지역에서 세계로 나가는 시대입니다. 지역을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촛불들이 마을에 모여야 합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지금은 동네에서 시민단체의 풀뿌리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마을에서 풀뿌리가 빈약한 정당을 바꾸어낼 시민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마을 사람들이 소통하고 정감을 나누는 마당을 열고 함께 모여서 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지역문화를 혁신하고 마을 주체를 만들어나갈 두레패를 다시 형성하는 예술이 필요합니다. 동네에서 풀뿌리 문화예술을 꽃피워야 합니다. 그것이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3. 2만 개의 두레패 만들기를 제안합니다
두레패예술은 자기표현의 형식이자 매체로서 공동체의 유혹입니다. 이웃과 만나는 통로입니다. 두레패의 예술은 무대에서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 노는' 마당예술입니다. 전문예술집단의 예술 형식과 논리를 따라가는 '따라쟁이'가 아닙니다. 나는 이웃의 거울이 되고, 이웃은 나의 거울이 되는 두레패의 형성 과정이 곧 함께 모여서 노는 마당의 일상이자 깃발 하나 세우고 광대로 나서기만 하면 곧바로 공연 마당으로 바뀌는 독자적인 마당미학의 산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두레패의 공동창작은 누구나 예술가인 이 시대의 놀이입니다. 그러므로 "예술 합시다~!" 예술은 축제의 일상 형식입니다. 축제는 예술의 대동놀음입니다. 두레패예술은 그 알입니다. 그러므로 마을을 하나로 엮어가는 공동창작, 시민창작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성을 매개로 하여 시민의식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예술을 매체로 하여 시민 네트워크 생태계를 키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레패예술은 동아리의 주체 형성 즉 조직을 중시합니다. 많은 경우에 두레패 예술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두레패를 먼저 조직해야 하는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공동체가 대부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풀뿌리 시민사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풀뿌리 조직들은 관변단체들입니다. 자발적인 시민단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역의 모든 젊은이들과 여성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예술을 창조하고, 공연하고,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지역 활동가 및 정책 관계자들이 나서서 지역문화 혁신을 위한 청사진을 먼저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도시재생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두레패예술의 역할이 더욱 돋보이는 야심찬 목표와 전략을 수립할 수도 있습니다. 촛불정부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의 촛불들을 위하여, 지역사회의 혁신을 위하여, 도시재생 사업과 연동하는 <2만 개의 두레패>를 조직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제안합니다.
4. '뜬두레패' 청년예술가를 키워내는 마당예술학교
각각의 예술 매체는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다른 악기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붓을 쓰기도 하지요. 같은 붓이라도 동‧서양이 서로 다르지요? 설치미술을 할 때는 환경 자체가 전시공간이나 무대 혹은 미술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 매체에 따른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연출가는 배우들이 혹은 배우와 춤꾼이 서로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선을 긋기 위해 무대 공간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서 영화감독은 촬영 장소를 구하기 위해 늘 '헌팅'을 해야 하고요, 영상 편집을 잘 하기 위해서 하나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컷과 이음새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화가는 선과 색, 질감 및 터치의 미묘한 조합을 잘 살려야 합니다. 미디어 아트를 하는 작가는 자기가 다루어야 할 아날로그와 디지털 장치 혹은 매체의 언어에 익숙해야 하죠. 그래서 두레패예술은 전문 분야의 예술가나 강사와 협업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레패마다 자기 특색을 찾고 공동창작에 따르는 고유한 표현 매체의 기술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2만 개의 두레패>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강사 역량과 연출 능력을 갖춘 <2만 명의 뜬두레패 청년예술가>가 필요합니다. 두레패와 함께 협업하며 마당예술을 만드는 공동창작 전문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뜬두레패'라고 해요. 뜬두레패는 1982년에 민중문화운동가들이 모여서 가톨릭농민회의 '전국농민대회 프로젝트'를 할 때 만든 말이에요. 뜬패와 두레패를 엮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것입니다. 뜬패는 남사당패와 같은 전문예술집단을 일컫는 말이고요. 뜬두레패는 뜬패와 같은 역량을 가진 전문 예술가이지만, 뜬패와는 달리 두레패를 조직하고 함께 협업하는 활동가들입니다.
뜬두레패 청년예술가는 앞에서 이야기한 뜬패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두레패 마당예술의 전문성도 갖추어야 합니다. 창조적인 혁신예술을 통해서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본 체험은 나를 바꿉니다.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그림을 그리고 풍물을 두드리고 마당극을 하던 수많은 학생들이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자신을 변화시켰고, 두레패 활동을 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지도자로 성장했던 지난 시기의 경험과 사례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마당예술학교'를 설립하고 뜬두레패 청년예술가들을 키워내야 할 것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학산마당극놀래'로 두레패의 마을 마당극을 6년째 키워가고 있는 학산문화원의 사례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산문화원 환골탈태>의 비전을 '마당예술의 생태계'로 설정한 후, 학산문화원은 2013년부터 학산마당극놀래를 시작했습니다. 2013~14년에는 두레패 조직도 어려웠지만 학산문화원 기획자들이 무엇보다도 힘들어 한 것은 시민들과 함께 공동창작을 이끌어나갈 마당예술 강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두레패예술이 새롭게 접근해야 할 또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에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강사를 하시던 분들이 학산마당예술학교 <마당2.0포럼>를 통해서 상호교류하고 함께 워크숍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내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래서 시도 단위마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마당예술학교'를 설립하고 뜬두레패 마당예술 강사의 자격증을 수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5. 예술감독 및 지원체제로 생태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두레패 만들기를 시작하면, 방금 이야기한 뜬두레패의 형성과 역량 강화 및 자체 네트워크를 육성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참여하는 시민들과 예술강사만 있으면 끝나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두레패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공간과 학습 프로그램과 뜬두레패의 네트워크와 전문적인 컨설팅으로 '마당예술의 생태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우선 두레패를 조직하는 일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초기에는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눈으로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 주민들을 두레패로 묶어내고 함께 기획하고 공동창작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묶여져 있는 직장이나 노동조합도 아니고요. 사방팔방으로 각자 다른 삶의 우주적 궤적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 이웃들끼리 문을 내리닫고 폐쇄적으로 사는 데 익숙한 주민들 속에서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도 정말 어렵고요. 예술 장르에 대한 비슷한 관심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게다가 마을문제 해결에는 또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고요. 초기 조직부터 벽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젊고 당찬 청년 기획자들이 나서야 합니다. 조직 활동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라면, 비전과 방법론이 있고 좋은 사례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면, 적극적인 청년기획자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들을 뜬두레패의 기획자로 키워내야 합니다. 2만 개의 두레패를 만드는 데는 청년예술가 2만 명과 청년기획자 5천 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기초나 광역단위의 자치정부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두레패 마당예술과 공동창작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예술감독 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지역문화원과 지역문화재단의 여러 가지 지원 정책도 필요합니다. 특히 기왕에 진행해 왔던 마을 만들기 사업과 평생학습 관련 사업과 협력해야 하겠지요? 주민자치위원회와 함께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동 주민자치센터의 지원이 없이는 어려워요. 그러므로 행정과의 협치를 제대로 이루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렇게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망 속에서 예술감독 제도와 함께 두레패의 '마당예술 생태계'가 뿌리를 내리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생태계가 이루어져 나간다면 두레패가 마을을 넘어 지역 네트워크로 성장할 것이고요,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의 축이 될 것입니다. 도시재생은 주민들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주민이 소외된 문화마을, 주민이 없는 도시재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예술가인 이 시대에 예술 창작체험을 통해서 성장한 시민들을 문화기획자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문화기획까지도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해요. 시민들을 문화기획자로 키워내는 데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두레패가 만들어져서 마을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기획에 나서는 순간 시민들은 창작자가 되고 동시에 사회혁신가가 되는 것입니다. 두레패들이 마을을 넘어서서 그물코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서면 지역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린 두레코를 통해서 세계의 창을 내다보게 될 것입니다. 두레패는 '마을에서 세계로' 창을 여는 마당예술 혁신예술의 앞자리에 서야 합니다.
2만 개의 두레패 만들기 정책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을 공동체예술로 새롭게 세우는 일이며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름길입니다. 그것은 또한 혁신예술로서 주민자치를 튼튼하게 만들고 마을과 지역의 시민들이 도시재생의 축으로 나서도록 이끄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은 2만 명의 청년예술가와 5천 명의 청년기획자들을 위하여 질 높고 사명감에 충만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마을과 지역의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창작자로서 사회혁신의 앞자리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저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의 나라'를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류이 i미디어축제 예술감독 1976년 최초의 마당극으로 알려진 <허생전>을 기획 제작하였고, 1977년 월간지 <대화>에 '민중문화운동으로서의 연극'을 집필하여 1970~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정체성을 알렸다. 1980년대에는 '장르해체론'을 들고나와서 전통공연예술의 기초 장르인 민요부흥운동을 조직하였고, '대동놀이론'으로 전국 대학가의 축제 문화를 바꾸는데 계기를 마련하고 풍물운동의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두레패 마을 만들기를 위한 '마을 마당극'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영상미디어와 마당예술의 융합에 관심을 갖고 '미디어판굿'을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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