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신상기록' 최초 공개...청년도 5개월만에 숨져

시민단체 입소 관련 자료 확보, 총 126명 중 41명 사망 "진상규명 필요"

30년 전 박정희 정권때 거리의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던 부산 형제복지원의 당시 입소자 신상기록카드 일부가 공개되면서 진상규명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부산사회복지연대가 공개한 형제복지원 입소 관련 기록에 따르면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취약계층들이 부랑자로 분류된 채 강제로 입소됐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부산사회복지연대는 공개한 총 126명의 신상기록카드는 지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 입소자들로 이들 중 사망 41, 도망 5명, 전원 21명, 귀가 59명 등으로 나타났다.

▲ 형제복지원 직원들이 작성한 신상기록카드. ⓒ부산사회복지연대

형제복지원 직원들이 작성한 이 신상기록카드에는 성명, 생년월일, 추정연령, 본적, 주소, 학력, 종교, 직업, 노동가능여부 등 입소자의 인적사항을 상세하게 기입하고 있었다.

또한 입소자가 진술을 거부하거나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등 인적사항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미상'으로 분류했다. 이름마저 알 수 없는 이들은 발견된 동네 이름을 따서 기재하기도 했다.

한 신상기록카드를 보면 A모(33) 씨가 처남을 찾아 부산에 왔다가 집을 찾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중 경찰관의 눈에 띄어 지난 1984년 3월 17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하게 됐다.

A 씨는 입소 5개월 만에 전신마비와 고혈압으로 부산의료원에 입원했고 열흘 만에 숨지게 된다. A 씨는 입소 당시 '건강(노동가능)'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건강한 청년도 끊없는 형제복지원의 폭행과 가혹행위는 이길 수 없었다.

형제복지원의 피해생존자들에 따르면 수용된 인원들은 벽돌 제조부터 산 깎기, 땅고르기, 건물 세우기 등 모든 것이 수용인들의 강제노역으로 이뤄졌고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기계 장비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내는 강제노역을 당했다.

이 수용소는 완벽한 감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성폭력과 구타, 학대 등이 이어지는 인권유린 사건이 끊이지 않았지만 국가는 보호와 사회안전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자유를 빼앗아갔다.


▲ 부랑자들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연고 장애인과 고아 등을 강제로 격리한 부산 형제복지원이 운영했던 차량들. ⓒ형제복지원

앞서 지난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법안으로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20대 국회에 들어서 지난 2016년 7월 다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발의됐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1970~80년대 부랑인을 선도한다며 무연고 장애인과 고아 등을 강제로 격리해 폭행, 강제노역, 성폭력 등 인권유린을 저지른 부산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의 상훈을 취소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또한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우선 조사대상으로 분류하는 등 이번 피해자들의 신상기록카드 공개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인 이향직 생존자모임 경기지역대표는 "이번 피해자들의 신상기록카드 공개는 무척 기쁜 일이다.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료들이 더 많이 있다"며 "국가기록원에도 저희들의 자료가 상당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지만 법안이 발의되서 계류 중인 상태라는 이유로 자료를 확인시켜 주지도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생존자들 중 250명 정도가 연락이 되고 있지만 연락이 안 되거나 숨진 사람들이 수천 명이다"며 "아직까지 피해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거나 자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더 많은 자료들이 공개되고 피해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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