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료 성실히 냈는데..."소송이라도 걸든가"

[예술인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⑥] 기존 차별조항부터 당장 없애자

"실업급여 신청하러 왔습니다."

고용보험료를 성실히 내왔기에, 당연히 실업급여 대상이 될 줄 알았다. 교육받으라고 해서 교육도 다 받았다. 그런데...

"수급요건을 못 갖췄습니다. 사업주가 강의일만 골라서 유급근로일이라고 보내왔네요. 진흥원에 수정해서 다시 보내라고 하세요. 아니면 대학강사처럼 소송이라도 걸든가."

고용센터 담당자는 안타깝지만, 자기도 어쩔 수 없단다. 세종시 고용노동부를 찾아갔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문체부나 진흥원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2000년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복지관에서 예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5700여 예술강사의 이야기다. 우리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다가 대법원 판결 이후 2010년부터 근로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많은 예술강사들이 사회보장을 받게 됐다며 기뻐했다. 예술인들은 엄두도 못낼 4대보험을 우리 예술강사는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이었다.

2007년 2월 15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연수에서 미추골절상을 당한 예술강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승인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불복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8월 20일 대법원은 예술강사의 산재승인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2009두8700 확정보험료부담금조사징수처분통지취소)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법원 판결 한 달만에 각종 규정을 뜯어 고쳤다. 최대강의시간 제한 476! 476은 1년에 최대로 강의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학교행사 등을 빼고 수업할 수 있는 주는 대략 34주다. 거기에 곱하기 주14시간을 하면, 딱 476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주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노동자(초단시간노동자)로 분류해 근로기준법의 차별대상자로, 예술강사를 절름발이 사회보험 신세로 만들었다. 정부시행사업 직종에 유례없는 3개보험(직장건강보험 제외)이 상당히 많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도 씁쓸해했다.

고용보험료를 똑같이 내지만, 단시간노동자에게 실업급여 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정부는 실업급여 지급을 막기 위해, 강의일만 유급근로일로 인정했다. 예술강사로 활동하려면 필수로 이수해야 할 연수, 각종 워크숍 참석, 수업일지 작성 등을 근로일에서 제외했다. 실업급여 요건이 되더라도 수급금액을 50%로 만들어 이중 차별장치를 두었다.

게다가 2개 이상의 지역에서 강의할 경우, 유급근로일은 절반으로 줄어들어 실업급여 수급은 더욱 어렵다. 고용보험을 2곳 이상 가입할 수 없는 규정 때문이다. 고용보험 의무만 지우고, 권리는 원천봉쇄하려고 갖은 꼼수를 썼다고밖에 볼 수 없다. 예술강사 외에도 정부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초단시간노동자들(정부의 계산방법에 따른 근로일 기준)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 2016년 8월 예술강사제도 개악저지 농성 촛불집회. ⓒ김광중

보육시설 이용, 은행대출금리 등에서도 차별하고 육아휴직, 퇴직금, 주휴수당도 원천봉쇄했다. 연수를 근로시간으로 보고 산재를 인정한 대법원판결도 정부는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산전후휴가급여는 지급대상이 안 된다며 거짓말하고 법을 위반하다가, 노동조합이 문제제기하고 나서야 지급하기 시작했다.

초단시간노동자 예외 조항들은 근로기준법의 대표적인 차별조항이다. 하지만 차별의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주14시간과 주15시간노동자의 차이에 대해 이유를 말해보라고 해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이 차별조항을 가장 활용하고 있는 기관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2016년 통계청 기준으로 초단시간노동자의 53.9%를 공공영역이 사용하고 있다. 사기업의 단시간노동은 노동자 자발적의사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공공영역은 정부의 설계에 의해 강제적인 것이다. 사기업에서 건강보험이나 실업급여 수급을 원천봉쇄하려 했다면 악덕기업 명단에 올랐을 거다.

정부는 예술인을 위한 고용보험안을 내놨다. 하지만 기존의 차별조항을 그대로 예술인에게도 적용한다면, 예술인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은 거의 없다. 물론 근로기준법 상 간주근로시간제 등을 활용해 예술인 특례를 만들 수도 있지만, 차별조항도 양산하는 판에 특례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 간주근로시간제 - 1996년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 산업혁명 공장근로 형태에서 다양한 근무형태와 변화하는 산업구조 흐름에 따라 도입된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적용률은 4%대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예술인과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확대, 저출산시대 극복을 위한 출산/육아휴직 확대를 말하고 있다. 법이나 규정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겠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껍데기만 요란한 빈수레가 될까 우려스럽다.

새 정부 1년이 다되어가도록, 꼼수는 여전하다. 꼼수를 내려놓고 솔선수범할 대상은 정부다. 정부는 국회탓 하지 말고, 대통령 시행령부터 개정해 의지를 보여달라.

국제노동기구(ILO)는 1994년 ‘단시간 근로에 관한 협약(175호 협약) 제7조’를 통해 단시간노동자도 유급휴가와 휴일, 병가를 통상근로자와 동일하게 대우받도록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12월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상황 개선 권고’를 통해 주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게도 주휴, 연휴, 퇴직금, 고용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모성보호(임신,출산,육아) 휴가, 업무상 산업재해 보상, 휴일과 상병휴가 등도 전일제 근로자와 동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또한 근속기간(또는 총 근로시간)이 일정정도 이상인 초단시간 근로자에게 건강보험제도와 국민연금제도가 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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