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 뒤에 숨은 연봉 600만 원의 그들

[예술인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②] 영화인의 노동은 특수하지 않다

문재인 정권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예술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하여 예술인의 창작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제의 주요 목표는 예술가의 지위 및 권익 보장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것.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는 2019년 시행을 목표로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보험이라면, 고용된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것 아니었던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노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예술인을 위한 고용보험이라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해서 예술인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고용보험을 필요로 하는지, 현장 예술인들로부터 직접 들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어릴 적부터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뭔가 그럴싸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극장의 스크린 혹은 TV화면으로 보여지는 영화는 그렇게 생각되기에 충분했다. 막상 경험해보니 그럴싸할 줄 알았던 현장은 24시간을 넘어 48시간 72시간을 촬영하는 것이 무용담이 되어버린 그럴싸하지 않은 현장이었고 3개월 정도 일정으로 한편의 영화 촬영이 끝나면 다음의 영화 현장은 언제가 될지 모르고 택배알바며 주차알바, 공사장알바를 전전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도제 시스템 속에 길들여진 감독은 영화는 예술이라는 말로 이런 사정을 이해하려 했고 그와 함께 하는 스태프들은 "예술이 다 이런 것인가?" 자조하며 버티는 힘을 기르는 일이 영화 일의 전부가 되었다. "영화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물음에 현장의 대다수가 마음가짐을 이야기 했다(영화 인력의 대표적인 구인/구직 커뮤니티인 www.filmmakers.co.kr에 올라온 내용들. 현재도 그런 내용은 종종 확인 할 수 있다). 그래봤자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영화인 걸로 그래야 예술인 것으로 오인되어 왔다.

영화 시작에 등장하는 톱 크레딧(영화가 시작 될 때 앞부분에 나오는 스태프들의 이름으로 흔히 제작자, 감독, 배우를 포함한 주요 스태프의 이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로 영화에 대한 평가의 8할이 결정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는 관객 및 영화를 다루는 언론은 현재까지도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예술'로 인식 하고 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스태프들은 자연히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예술'로 이야기 되면서 '대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그렇게 영화판의 도제가 단단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부터 영화판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영화도 이익이 되는 '상품'으로 생각되기 시작했고 스태프의 노동환경은 나아지는 것 없이 더 열악하게 여겨졌고 이즈음부터 관행적으로 이어지던 통계약(영화를 만드는 여러 부서별 단위의 계약으로 부서의 각 스태프들은 제작사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팀 단위, 부서 단위로 이루어지는 계약. 이때의 임금 분배는 어디까지나 임금을 분배하는 선임의 선의에 따른 것이었다)을 부정하고 개별계약을 하자는 운동이 스태프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고 스태프들은 정당한 '대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영화 <오피스>의 촬영현장. ⓒ안병호

'대가'를 법으로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 '근로기준법'이었다. 때문에 당시부터 스태프들은 노동자 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나 정부는 현재까지도 정의하지 않고 있다.(근로기준법에서 정의 하는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되어 있다. 이 간명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근로자의 판단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준비단계(Pre-Production), 촬영단계(Production), 후반작업단계(Post-Production)의 세 가지 단계가 있고 준비단계에 돌입하기 전에도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등의 기획단계를 거치게 된다. 각 단계는 많은 스태프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분야에 따라 일을 하고 그에 따라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기에 이른다. 준비단계에 돌입한 영화가 촬영을 마치고 개봉하기 까지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가 걸리고 단계별로 고용되는 기간은 스태프별로 다르다. 준비단계(Pre-Production)부터 참여하는 스태프의 경우 가장 오랜 기간 일을 하게 되고 이때 구인은 해당 부서별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미술팀을 예로 들면 미술팀 내에서 사람을 찾아보고 제작사에 소개 후 제작사와 직접계약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업무는 미술팀원과 부서를 총괄하는 미술감독을 통해 전달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제작사의 인사권이 작동되지 않으며 업무지시 없이 일을 한다고 하여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촬영단계(Production)는 2~3개월 정도로 영화현장의 대다수 스태프가 이 기간에만 일하고 있다. 스태프들은 해당기간 동안 제작사에 고용돼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현장 스태프들의 노동자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고용이 되었다 하더라도 비용 문제를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건마다 살펴야 한다는 애매한 판단을 하고 있다.

불안정노동은 '프리랜서'로 치환되어 프리한 사람들의 영화를 위한 열정으로 간주되었다. 노동자는 영화인으로 퉁쳐져 '근로자'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남의 임금이 되기 십상이고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고용보험은 판타지 소설이나 먼 나라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현재 영화산업은 단체협약을 통해 만들어진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이 늘기 시작하면서 계약서로 인해 노동자임을 확인시키고 있고 이로 인해 4대 보험도 적용되고 있다).

종종 제작사와 정부는 영화산업을 이야기 할 때 특수함을 언급하며 예외적 상황임을 이야기 한다. 다른 산업보다 짧은 기간 일하고 다른 산업에 비해 자금사정이 열악하다 등. 열악한 자금 사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어야 하는 제작사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기간제, 일당제, 시간제등 기간이 짧은 노동은 어디에나 있고 자금사정은 산업에 따라 상대적이다.

한편 특수함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예견할 수 없음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의 촬영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노동시간으로 사고하여 임금을 계산하고 그에 따른 처우를 보상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공적기금이 투여되는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최저임금을 외쳐대도 최저임금이 고려되지 않은 지원금은 모순이다. 여태까지의 영화는 만드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정의했다. 사람보다 영화가 먼저였다. 이제는 영화가 만들어 지기에 앞서 사람을 생각하고 노동을 전제에 두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문체부가 준비하고 고용노동부가 실행을 담당할 예술인고용보험도 이 바탕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고용보험은 고용안정과 직업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보험이다. 고용안정과 직업안정을 도모하는 일은 우리의 노동을 제대로 인정하고 당연하게 보험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 직업을 계속 유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천만 영화 뒤 연봉 600만 원의 가련하고 불쌍한 이를 대하는 시혜적 수준의 복지를 넘어 보통의 삶을 위한 노동자로 봐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노동은 결코 특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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