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로터리 부근 서강대 전철역 맞은편에 조그만 공원이 있고 그곳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두 그루가 자태를 뽐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녹색의 풍요로움과 편안함을 제공했고, 무덥던 여름날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물로 주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다른 시설이 설치된다는 안내문과 함께 높다란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그 플라타너스들은 3,40년 이상 자라나 둘레만 해도 두 사람 정도가 팔을 뻗어야 잡을 만큼 아름드리 나무였는데, 그렇게 한 순간에 우리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1,2년 전에 가좌역 부근 다리에서도 '환경미화'를 한다며 주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모조리 베어버렸었다. 하지만 그렇게 푸르른 녹색을 제거하고 '미화'했다는 결과는 그저 콘크리트로 빚어낸 백색 지대일 뿐이었다.
아침 신문을 보니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장이 들어선 가리왕산에 스키장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이미 뿌리가 뽑혀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곳의 '주인'으로 있다가 다른 곳에 '강제로' 옮겨져 심어진 전나무며 주목 그리고 분비나무들은 벌써 시름시름 잎이 떨어지고 죽어가고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그저 시늉만 낼 뿐인 이러한 사고방식과 공법에 의하여 그간 덕유산 무주리조트나 용평리조트 스키장에서도 이식한 나무들은 거의 죽고 말았다.
나무를 죽이면 우리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환경을 파괴하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를 서서히 죽이는 행위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나 미세먼지는 바로 우리 스스로들이 매일 같이 만들어낸 것이고, 지금도 열심히 조장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반려견이나 길고양이에 대해서는 대단한 관심을 갖는다. 일종의 '공존의 감성'이다. 하지만 나무와 삼림 등의 환경에는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인식이 부족하고 그에 대한 '공존의 감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을, 마음을 살리는 길
과연 무엇을 위한 '환경미화'인가?
녹색의 푸르른 나무들을 없애고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등 각종 인위적 물질로 대체하는 것을 더 이상 '환경미화'라고 '미화'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사고방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개발주의' 논리가 완전히 관철된 '환경 파괴'일 뿐이다.
이제 진정으로 '녹색의 미화'를 추구해야 할 때다. 우리 주변의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들부터 보호하고 함께 공존해 나가야 한다. 그 길이 우리의 생명을 그리고 갈수록 삭막해지는 우리의 마음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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