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은 남북문제 '현실' 고민하는 최초의 한국인

[특집 좌담] 2030세대는 왜 남북 단일팀에 분노했나 上

평창 동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다. '축제'라는 수식어가 멋쩍을 만큼,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온갖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의 꾸준한 '구애'로 결국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예술점검단을 파견하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평양올림픽"이라며 비아냥댔다. 때마침 다가온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1월 24일)에는 야권 지지자들과 여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평양올림픽', '평화올림픽' 검색어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창 논란이 정치권 밖으로까지 번진 것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때문이었다. 출전 선수 가운데 북한 선수 세 명을 포함하는 조건으로 단일팀이 꾸려지자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됐고,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비난 여론이 조성되면서 2030세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다. (☞관련기사 : 고개숙인 靑 "2030의 '공정' 문제제기, 반성한다")

여권은 당황했다. 단일팀 극적 성사에 대한 칭찬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날아온 것은 뭇매였다. 단일팀에 열광하지 않고 되레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2030세대를 그들은 신인류 보듯 낯설어했다. 각종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일팀 반대(58.7%)를 넘어서 '통일을 하지 않거나 미루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게 더 좋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도 88.2%에 달했다. (☞관련기사 : 2030 세대가 통일을 싫어한다고 누가 그러나?, 86세대 오만을 향한 2030의 경고)

단일팀 논란에서 드러난 '공정성', '통일'에 대한 견해 차이를 과연 세대의 차이로 봐야할까. 평창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이었던 지난 10일, 동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와 4050세대 다섯 사람을 불러 긴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이틀에 걸쳐 싣는다.

직장인 : 50대 중반 남성. 87항쟁 당시 대학생이었던 386세대. 현재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종이컵 : 40대 중반 남성.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양꼬치 : 30대 초중반 여성.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오향족발 : 올해 딱 30 남성. 취업준비 중.

떡볶이 : 20대 초반 여성. 3월이면 대학교 2학년생이 된다.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B조 조별리그 1차전 남북단일팀과 스위스의 경기가 끝난 뒤 영부인 김정숙 여사(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선수들을 격려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일팀 논란, 열심히 일했는데 상사가 '엎으라'는 꼴"

프레시안 : 우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서부터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단일팀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양꼬치 : 사실 그런 이슈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최근에서야 이런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처음 든 생각은 '북한 어쩌고', '공정성 어쩌고'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내가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라면 그냥 단일팀을 한다고 한 데서부터 일단 화가 날 것 같았다.

분명히 선수들은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한 뭔가가 있을 텐데, 본인들과 아무 상관 없는 세력, 그것도 스포츠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너네 단일팀 해라'라고 하면 화가 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다녀보면 제일 화나는 순간이 열심히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상사나 누군가 와서 "그거 아니야, 엎어" 할 때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도 똑같은 상황 아닌가.

다들 공정성을 문제 삼는데, 이번 논란의 핵심이 과연 공정성인가 싶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애초에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자력으로는 올림픽 출전권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는데, 연맹에서 여러 협상 과정을 통해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받아 출전하게 된 것 아닌가. 앞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선수들에게 이번에는 조금 양해해 달라는 식으로 잘 설명한 뒤 엔트리를 꾸렸다면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정치권에서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게 화가 났다.

프레시안 : 소통의 문제, 이를테면 직장 상사의 '갑질'과 비슷하다는 의견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떡볶이 : 이번에 논란이 됐던 것은 남북 단일팀 자체가 아니다. 단일팀이 꾸려지는 과정이 문제였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완전히 자력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미 팀이 꾸려져있었다. 그런데 정부 주도로 단일팀이 너무 빠르게 추진됐다. 정부는 선수단에 해당 사실을 일방 통보했다. 그런 뒤 선수나 국민들로부터 반발이 나오자 대응도 제대로 못했다.

오향족발 : 이낙연 총리가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는 식으로 말한 게 가장 논란이 됐다.

떡볶이 : 그렇다. 소통도 잘 안 되고, 무엇보다 이 문제에 대해 반발하는 의견에 대해 공감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분노가 느껴졌다. 정부에 비하면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약자인데,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었다. '사람이 먼저'가 이번 정부가 내걸었던 슬로건인데, 선수들을 너무 배려하지 않고 밀어붙였던 것 같다.

오향족발 : 사실 세상의 많은 문제가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다. 어떤 결정을 하든 어떤 사람은 손해보고 어떤 사람은 이득을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희생한다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희생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국 선수들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단일팀을 해서 얻으려는 가치가 무엇이었나. 정부가 원하는 것은 남북의 화해 협력이나 통일의 그림이었다. 저는 그 지점이 약간 불편했다.

제가 초등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으로 소떼를 끌고 갔다. 이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렸다. 어렸지만 그 뉴스를 보면서 가슴이 벅찼고 한국이 이제 통일이 되려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2008년이 되니 갑자기 북한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피살당하고 연평도 사건, 천안함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한국과 북한이 계속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에서 그런 일회성 이벤트로 대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나. 스포츠 단일팀, 합동 공연과 같은 이벤트 뒤에 돌아온 결과가 갈등과 대립이었다. 올림픽에서는 평화적인 그림을 그리는 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을 위해서 노력했던 선수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일회성 이벤트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함께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서로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88올림픽 '사회 정화 운동' 생각났다"

프레시안 : 어제(9일) 개막식 다들 보셨나. 남북이 공동 입장하는 것을 보면서 뭉클해진다든지 그런 감정은 못 느꼈나.

오향족발 : 어쨌든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다. 단일팀이 잘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 한편으론 극적 화해와 같은 한 편의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들긴 했다.

떡볶이 : 확실히 의미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우리나라가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올림픽에서 단일팀이나 공동입장 등을 통해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줬다고 생각했다. 단일팀을 꾸리기까지 과정이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했을지라도 어차피 이미 된 거, 응원하고 다 같이 좋은 결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좀 더 앞선 시대를 경험했던 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종이컵 : 저는 기본적으로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 대해서 거대 권력에 의해 기획된 행사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국가들끼리는 눈치 싸움을 하고 국가 안에서도 이런 스포츠 행사를 정략적으로 활용해온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지켜본 세대로서 당시엔 들뜨고 감격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탁구나 축구 단일팀 같은 숱한 이벤트들을 봐왔다.

지난 정부까지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했고 대립이 심했기 때문에 이번엔 단일팀 같은 이벤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이야기가 1월에 갑자기 나왔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정부가 수완이 좋네'였다. 옳고 틀리고를 떠나서 어떤 정부든 치적을 만들기 위해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앞두고 머리를 굴리게 마련인데, 갑갑한 상황에서 후다닥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개인 선수들을 보면서 청년들의 커리어 문제라든지 자기실현 문제를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올림픽이라는 기획된 행사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인데도 이렇게 선수 개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그러고 나니 떠오른 생각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실시했던 사회 정화 운동이었다. 당시 거리 정화라는 명분하에 빈민촌을 강제 철거했다. 거리가 깨끗한 게 당연히 보기에는 좋지만 오늘내일 살아가는 노점상인이나 빈민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냈지 않나. 이번 단일팀 논란을 지켜보다 보니 그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인 : 저는 서울올림픽 때 대학교 4학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제 딸이 대학교 3학년이다. 딱 30년 차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가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인 것 같다. 이전 정권 때도 그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젊은 세대 다수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이렇게 공정성이 사회적 화두가 돼 있는 상태에서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선수 개개인이 피해를 보게 되니까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번 논란이 이해가 됐다.

누군가 국가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면 그것은 자발적이어야지, 강제적으로 하라고 하는 것은 모양이 안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렇게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것 자체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 같다.

프레시안 : 단일팀 문제와 공정성을 연관시켜 생각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원래 올림픽 엔트리는 23명인데 북한 선수들 12명이 추가되면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35명으로 엔트리가 사실상 확대됐다. 물론 경기에 출전하는 인원은 22명으로 똑같지만, 역으로 다른 나라가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일부 나왔다.

종이컵 : 올림픽은 원래 정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시적이라도 사람은 누구나 '쇼'를 좋아하지 않나. 신파극 영화를 안 좋아해도 막상 영화관에서 슬픈 장면을 보고, 스피커에서 슬픈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잠깐이라도 뭉클하기 마련이다. 역차별 논란이 어떤 철학 논쟁처럼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 같다.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대표팀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만큼 먼 나라"

프레시안 : 이번이 11번째 공동 입장이고 단일팀이 성사된 것은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과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 이후 세 번째다. 20대 초반인 떡볶이 님은 남북 단일팀을 처음 봤을 텐데, 아마 북한을 우리 일상에서 이렇게 가깝게 보는 것 자체도 처음일 것 같다. 평소 북한을 떠올리면 이미지가 어떤가.

떡볶이 : 한마디로 안하무인.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통일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있나?

떡볶이 : (한참 고민 후) 학교 다닐 때 워낙 통일을 주제로 표어나 그림 그리기 대회를 많이 하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고는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통일은 해야 한다고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통일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적어도 저희 세대에서는 통일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양꼬치 : 저는 통일이 그렇게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만 유지할 수 있으면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통일로 인해 불어닥칠 사회적인 혼란을 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런 혼란 속에서 사회가 나를 제대로 돌봐줄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미 각개전투인데, 그런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피곤하다.

프레시안 : 남쪽 사람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되지 않을까. 북쪽의 자원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직종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나. 같은 조건이라면 북한 청년보단 남한 청년이 상대적으로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양꼬치 : 주변 사람들이랑 '나중에 통일 되면 무슨 주식 사지' 그런 이야기는 한다. 아니면 '전쟁 나면 나중에 통신망 다시 깔아야 하니까 통신사 주식을 사는 게 좋겠다' 그런 이야기도 농담 식으로 하고. 통일이 되면 건설업이 호황일 거란 생각은 들지만, 그런 막연한 기대 때문에 혼란 상황을 감당하느니 지금 상태에서 북한이 얌전히만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물론 북한 청년에 비해 지금 내가 가진 게 더 많으니 땅을 더 살 기회는 비교적 쉽게 얻겠지만, 그만큼 계층 격차 구조가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거고, 그럼 사회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만일 통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정치적 상황이나 북한 내부의 붕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정도지, '우리가 한민족이니까 통일이 꼭 돼야 해'하는 생각은 없다. 결국 나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지금 이 체제가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오향족발 : 저도 비슷한 생각이다. 제 윗세대와 저희 세대의 가장 큰 차이는 '북한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고 분단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라는 가정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다. 어르신들을 보면 북한을 미워는 하지만 그 미움의 감정이, 미운 가족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런 느낌이 없다.

저한테 북한은 너무 다른 나라다. 그냥 다른 나라도 아니고 매우 먼 나라. 지리적으로만 가깝지, 심리적으로는 거의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있는 국가나 같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를 하다 보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북한 사람과는 그런 기회가 없다. 북한의 대중문화를 접할 기회도 없고.

북한 사람들과 우리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 하도 띄워주길래 궁금해서 북한 예술단 공연 영상을 봤는데, 제가 평소 듣는 음악이랑 너무 다르고 너무 촌스러웠다.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 단일팀 같은 이벤트가 더 일시적으로 느껴지는 거다. 우리가 그들이랑 연락처를 교환하고 페이스북 친구로 지낼 것도 아니고. 정주영 씨가 끌고 갔던 소가 북한에 남아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고....(일동 웃음)

이렇게 다른데 차라리 유럽처럼 왕래는 가능한 별개의 나라로서 각자 체제를 유지하고 사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김여정 북한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통일 후 北 주민, 우리 일자리 뺏으면..."

종이컵 : 오향족발 님이 갖는 의구심, 과연 통일과 화해에 이벤트가 필요하나. 이것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자면, 그런 이벤트들이 통일에 큰 도움은 안 될 수 있지만 적어도 남북이 파국으로 향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정도의 효과는 있다고 본다. 대화가 정말로 단절돼서 어떤 정보도 교류되지 않고 싸우는 것밖에 안 남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감성적인 이벤트가 도움은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올바른 이행전략을 통해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 받았던 반공 교육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헌법에 명시돼있는 영토 조항을 보면 북한 지역은 수복되지 않은 우리 국토다. 아주 형식주의적으로 말하면 북한도 우리 땅인 셈이다.

그런 건 의미가 없다는 게 저보다 젊은 세대들의 말씀인데, 나 같은 경우는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중간쯤에서 멈춰있는 모순적인 상태다. 체제를 더 중시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선지 모르겠지만 한반도 바깥으로부터 남북한 주민이 지킬 이득이 더 커졌으면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그런데 남한이 북한의 낙후 지역을 개발해서 거기서 이득을 보기 전까지 수십 년이 걸릴 테고 그 과정에서 세금도 많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여러 우려들이 나오는 것 같다. 앞서 지적해주셨다시피 계층 문제도 있을 것이다. 주변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통일이 됐을 때 북한 주민들의 위치가 지금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큰 것 같다.

프레시안 : 2500만 명의 3등 국민이 생기는 셈이다.

종이컵 : '통일 되면 공장 사장님들이야 좋겠지만 우리 일자리 뺏는 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퇴행적이고 충격적인 감각이긴 하지만 진짜 그러면 통일이 어렵겠다는 생각은 든다.

프레시안 : '올바른 이행전략'을 언급하셨는데, 어떤 게 통일로 가는 올바른 이행전략이 될 수 있을까. 통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관용적으로 많이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상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종이컵 : 1990년대에 민간인 대학생, 종교 지도자가 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민간 영역에서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는 것을 봐왔다. 적어도 학술, 대중문화와 같은 민간 영역에서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게 먼저 아닌가 생각한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을 손보거나 폐지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그런 구체적인 통일 계획과 프로세스를 준비하는 연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이 대박'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통일 대박' 모델을 보여준 게 독일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도 동독 출신 사람들은 여전히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한다.

양꼬치 : 우리만 바뀐 게 아니라 북한도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김정일 때만 해도 남한이랑 교류를 하고 있었다면 김정은 체제 와서는 북한도 그쪽(남한)이랑 우리는 아무 상관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 같다. 우리만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러니 과연 우리가 교류하자고 해서 될까. 이미 통일은 현실적으로 멀어진 게 아닐까 싶다.

떡볶이 : 다들 북한이 멀게 느껴진다고 하시는데, 제가 이 중에서 가장 어린데도 저는 북한이랑 연결돼있다고 느낀다.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사시다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내려오신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할아버지가 남한에 안 내려오셨다면 지금 배고픔에 죽어가고 억압받는 북한 주민이 내가 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가끔 든다. 어제 개회식을 보니 거북선도 나오고, 금동대향로 같은 문화재가 등장하던데, 그건 북한과 우리가 다 공유할 수 있는 역사다. 그걸 생각하니 북한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남과 북이 떨어진 70년이란 세월이 한 사람 인생으로 보면 길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긴 시간이 아니다. 분명히 어떤 세대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도 막상 통일이 됐을 때 혼란을 떠안을 상황을 생각하면 마냥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에서부터 흘러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통일 과정도 시대의 흐름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프레시안 :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통일세 논란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다. 지금 여론조사를 봐도 통일을 원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2030세대만 회의적으로 답하지만, 통일을 위해 세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전 세대를 막론하고 다 부정적으로 답한다.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통일 국가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직장인 : 저는 이 중에서 나이는 가장 많지만, 통일에 대한 감성적인 느낌이 없다. 가족 중에 이산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라 통일에 대한 당위보단 실생활이 우선이기 때문에 내 삶에 무슨 영향이 있는지 그런 점에서 보게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양꼬치 : 그러니까 각자 체제를 유지하면서 평화만 지키고 살면 되지 않나. 북한 안에서 민주주의를 하든 혁명이 일어나든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 북한이 신경이 쓰인다면 그건 미사일을 쏠 때다. 자꾸 미사일 쏘니까 '전쟁 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이 들 뿐이다.

종이컵 : 북한을 적어도 관리할 필요는 있다. 남북한이 싸우지 않더라도 북한이 다른 국가에 도발을 해서 한반도가 다른 국가들의 전쟁 사이에서 병참기지 노릇을 하는 상황이 와선 안 될 테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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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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