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장소, 그리고 정부를 가리지 않고 대형 사고와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시민들은 재난이 터질 때마다 당리당략에 따라 험한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에 염증을 느낀다. 마치 자신들은 재난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언행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공통 바람은 대한민국 사회가 제로위험 사회는 아니더라도 재난 발생을 줄이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조기에 구난·구조를 해주는 것이다. 또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살갑게 보살펴주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발생 재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유사 재난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빈다. 그리하여 재난도시에 이름이 더는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밀양 화재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재 발생에 병원 쪽 내지는 병원 근무자들의 잘못은 없는지, 화재 조기 진압을 위해 직원들이 제대로 대처했는지, 소방당국은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를 제대로 했는지를 철저하게 묻고 따져야 한다. 그동안 병원 소방점검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중소규모 병원에 대해서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누가 언제 허용했는지, 2014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이후 왜 유사 성격을 지닌 전문병원 내지 노인성질환전문병원은 제외하고 요양병원에 대해서만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게 했는지를 세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이번에 참사가 일어난 밀양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소방당국은 말한다. 바닥면적 1000㎡ 이상인 건물에 대해서는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 병원의 바닥면적은 이에 훨씬 못 미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바람에 화재를 조기진압 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획일적 소방행정 기준 피해 키워
하지만 이런 획일적 소방행정은 재난을 예방하거나 조기 대응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피해를 더 키울 뿐이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 석면의 위험성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다중이용시설과 공공기관의 석면안전진단 의무대상을 정한 바 있다. 이때 어린이집의 경우 다른 시설보다 면적이 좁더라도(430㎡ 이상) 진단대상으로 정해 석면조사를 벌인 바 있다.
어린이의 경우 어른보다 적은 농도의 석면에 노출되더라도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시설에 대해 다른 시설보다 더 강화한 조처에 대해서도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면적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 시설에 대해서 법적 의무대상에 준해 안전진단을 벌이고 있다.
소방안전도 석면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노인이나 환자, 어린이 등 안전약자들은 화재가 나면 거동이 불편하고 피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이 상주하거나 이용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병원, 입소시설 등 용도를 따지지 않고 일반 시설보다 더욱 강화한 소방안전 시설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바닥 면적이 아니라 병상 규모, 병원 특성 등 다른 기준도 함께 적용해 어느 하나라도 해당하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해 불이 났을 경우 조기에 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런 시설 설치와 유지관리에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그리고 화재 비극을 잇달아 맞이했다.
특히 고령화 사회를 맞이해 노인요양시설과 노인병원, 노인요양병원 등이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화재재난에 대한 대비는 소홀히 했다. 지난 2014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장성 한 요양병원에서 많은 인명을 앗아간 화재가 났다. 그 뒤 모든 요양병원에 대해서만 기존 시설에까지 소급적용해가며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했다.
노인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 다른 안전 약자 시설은?
하지만 노인요양시설과 노인병원 등 그 유사 의료기관과 시설에 대해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소방안전과 관련해서도 오랫동안 소방당국을 포함해 이해관계자들 간 유착과 이로 인한 무분별한 규제완화, 관리감독 소홀, 즉 소방적폐가 있지 않은지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 차원, 즉 지역토착세력, 그리고 국회 등 정치권의 유착을 현미경으로 살펴야 한다.
소방방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건물의 화재를 예방하고 진압하는 책임을 진 소방 따로, 화재 시 피난 시설과 건축물 구조 등 건축 안전을 책임지는 건축이 따로 노는 등 '따로 국밥 식' 소방방재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두 영역 모두 소방안전과 관련이 있는데도 소방이 하는 일과 건축 쪽이 하는 일이 서로 다르고 서로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다"며 "예를 들어 소방안전을 위협하는 무단증축이나 불법증축이 있더라도 건축 쪽에서 소방 쪽으로 통보를 잘 해주지 않고 소방에서 이를 확인하더라도 제재를 가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천과 밀양에서 일어난 잇단 화재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임시 땜질이 아니라 시민을 불로부터 구할 근본적 제도·시스템 개선과 소방인력·예산 확대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런 참사가 터질 때마다 이런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여의도 국회 안으로 가면 묻히고 말았다.
소방안전 적폐, 도려내야 할 때
그리고 소방장비 현대화와 함께 소방관들의 화재 대응 역량을 높이고 건물·시설 종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화재에 조기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밀양 화재처럼 순식간에 유독연기가 건물 전체로 번질 경우 아무리 소방인력이 일찍 도착한다고 해도 인명 구조에 별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을 더 확대하고 시설종사자들이 화재 발생 시 조기에 진압할 수 있는 역량과 함께 시설 자체 화재진압 기구를 충분히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 화재 시 시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대피시킬 수 있는 훈련도 지금보다 더욱 자주 할 필요가 있다.
제천과 밀양 그리고 그 이전에 재난 도시 명부에 오른 지역의 화재를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화재는 건물 수리나 공사, 전기시설, 건축 자재, 손님을 먼저 대피토록 하는 건물 내 종사자들의 직업 정신, 건물 소방시설, 건물 구조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구멍이 뚫리면 대형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소방안전을 가로막는 소방안전 적폐라는 암 덩어리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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