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소주가 아니다

[기고] '국민주', 소주와 맥주를 생각하다

소주, 일제, 그리고 박정희

명색이 소주(燒酒)라 함은 안동소주나 진도 홍주처럼 곡물 등을 증류하여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방식의 술이다. 본래 우리나라 술도 이러한 증류식 소주였지만,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뒤 이른바 주정(酒精, 에틸알코올)이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었다. 일본의 주정회사가 주정을 공급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주정을 이용한 이러한 대량 생산 방식의 '소주'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인 1965년 곡물을 아낀다는 명분으로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 기존의 증류식 소주는 모두 금지되었고 이를 어기면 엄벌에 처했다. 전형적인 박정희식 정책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도 마을 사람 중 밀주를 담갔다고 관계기관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쨌든 박정희 시대를 거쳐 우리의 '소주'는 오늘날과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주정에 의한 저가의 희석식 소주로 되었다. 세계적으로 봐도 소주의 경우, 우리나라 소주와 러시아의 저가품 보드카만이 이러한 희석식이다(고급 보드카는 주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음주량이 가장 많은 국가에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손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나친 음주로 인한 국민 건강의 악화와 각종 사건사고는 우리 사회의 큰 불안요소이기도 하다.

소주 첨가물은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주세법의 횡포

주정은 고구마나 쌀의 전분에서 얻는다고 주장되지만, 대부분 저렴한 타피오카라는 식물 추출물로부터 얻는다. 타피오카는 카바사라는 열대식물 뿌리에서 추출한 전분이다. 이 주정은 사실상 화학약품으로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물과 감미료의 첨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세법'의 규정에 의해 소주 제조에 사용되는 첨가물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품에 매우 민감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소주의 첨가물에는 그다지 관심이 거의 없고, 첨가물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 규정에도 문제제기가 거의 없다.

특히 소주에는 스테비오사이드라는 감미료가 첨가된다. 설탕의 300배에 이르는 강력한 당도를 자랑하는데, 일본이 개발했다. 그런데 이 스테비오사이드는 유해성 논란을 거쳐 식품첨가물 사용이 인정되었지만,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 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는 과다한 사용이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알코올과 화학 반응하여 유독성물질인 스테비올로 변한다는 보고도 있어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주류에 첨가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최근 발표된 캐나다 연구보고서는 이러한 감미료들이 비만과 심혈관 질환과 분명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추미애 의원에 의해 문제 제기되는 등 유해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1000원 소주에 세금은 530원!

우리나라에서 주정은 대한주정판매회사에 의해 독점적으로 공급된다. 이러한 독점 공급 시스템은 기실 세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주 가격의 50% 이상이 바로 세금이다(소주의 주세는 72%이고, 다시 이 주세의 30%는 교육세 그리고 여기에 다시 주세와 교육세를 합한 금액의 10%를 부가세로 징수한다!).


맥주에 붙는 세금 역시 72%의 고율이다. 지난 10년 간 거둬들인 주세는 무려 30조 원이 넘는다. 가격을 저렴하게 함으로써 소비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결국 가장 많은 세금을 걷는 이러한 방식은 담배에서도 잘 드러났다. 국민들로 하여금 많이 마시고 많이 피우게 함으로써 최대의 세금을 징수하는 이러한 국가의 행태는 어쩐지 고대 국가의 전매제도를 닮아 씁쓸하기만 하다.

진보진영에서 증세론이 많이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논란이 된 이른바 '특수활동비' 사태라든가 연말만 되면 곳곳에서 남는 예산 쓰느라 멀쩡한 보도블록 걷어내는 모습이나 혹은 4대강 사업 그리고 지자체마다 호화 관사 짓는 것 등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국가예산이 줄줄 새거나 불요불급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의회에 회계감사원이 설치됨으로써 엄청난 국가예산이 절약되었다. 증세에 앞서 선진국처럼 회계감사원이 설치되어 국가예산이 사용되는 모든 사업에 대해 철저한 평가와 감사가 시행되어야 할 일이다.

맛없는 술, 고율의 세금, 국민들은 봉인가!

우리나라는 맥아 10%만 넘으면 된다. 독일은 맥아가 100%이고 맥주는 물, 홉, 효모, 맥아 외에는 어떤 첨가물도 사용할 수 없다는 '맥주 순수령'이 지켜지고 있다. 일본도 맥아는 66.7%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의 맥주 제조공법도 맥주 본산지 국가들과 달리 여과과정에서 물로 희석한다. 그러니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은 괜한 말이 전혀 아니다.

맛없는 술을 엄청 마시고 엄청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봉인가! 본래 술이란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즐거움이자 소중한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술을 그저 즐기고 위안으로 삼기에는 찜찜하고 불안한 구석이 적지 않다. '국민주'인 소주와 맥주에 대해, 그 성분과 법규, 세금 그리고 우리의 술 문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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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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