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피 세우다 매듭에 빠지다

[귀농통문] '잘 풀리지 않지만 잘 풀 수 있는 매듭'이 좋은 매듭의 표본

손수 집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호락호락한 집은 세상에 하나도 없었다. 흙으로 짓는 학교도 다녀봤지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단히 지을 수 없을까? 갖가지 연장이 없이도 손발로 짓는 소박한 집을 원했다. 복잡한 사회를 나와서 단순한 머리로 들어앉을 아지트면 되었다. 셸터(shelter)면 충분했다. 게르(ger)나 티피(teepee)처럼 천막집이 눈에 박혔다. 단순한 뼈대에 천을 두르면 집이 되는 게 매력이었다. 천막이라지만 비를 피하고 바람에도 잘 견디는 데다 불을 피워 난방을 할 수 있는 티피로 결정했다. 원뿔처럼 생긴 구조에 천장이 뚫려 있어 연기가 잘 빠진다. 서너 명이서 한두 시간이면 칠 수도 있다. 국내에 번역된 티피 매뉴얼이나 책자는 없었다. 검색 끝에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았다.1) 모르는 단어를 여백에 연필로 써가며 참 열심히 문장을 맞추었다. 여기서 내 인생의 첫 매듭을 만났다.

매듭의 세계에 빠지다

티피는 크기에 따라 12개에서 18개 정도의 내부 기둥이 필요하다. 먼저 세 기둥으로 삼각대를 만들어 세워서 다른 기둥들을 받친다. 기준이 되는 세 기둥을 한 덩어리로 묶을 때 쓰는 매듭이 까베스땅(cabestan)2)이다.

매듭의 양쪽 중 어느 한쪽 끝가닥만 잡아당겨도 서로 조여져서 잘 풀리지 않는다. 기둥을 두 번 감았을 뿐인데 정말 신묘하다. 쉽게 매듭을 만들 수 있고 풀기도 쉽다. 부두에 정박한 배를 매어둘 때와 같이 임시 고정하지만 튼튼히 매야 할 상황에 쓴다. 매듭 후에도 양쪽으로 길이 조정이 편하다. 소 꼴 먹이러 가서 말뚝에 매어둘 때도 썼다. 등산에서 카라비너에 걸어 양쪽으로 힘을 나누는 데에도 쓰인다. 반걸기 매듭(half hitch)으로 마무리하면, 거의 풀리지 않는다. 잘 풀리지 않지만 잘 풀 수 있는 매듭, 좋은 매듭의 표본이다. 모순된 진리는 명징하다. 그 유연함은 '매듭의 여왕'으로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숙달하기는 고약하다.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헷갈리기도 해서 한쪽으로 먼저 걸 때는 언제나 까베스땅으로 묶었다. 익숙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수개월이나 걸렸다. 손에 익히는 시간이 더딘 만큼 선물도 있었다. 반복하다 보니 천막을 고리 펙으로 고정할 때 자연스레 반까베스땅(半cabestan)3) 매듭이 나왔다. 천막 고리에 고정된 원가닥을 당기고 나서 끝가닥을 잡아 끌어주면 천을 팽팽하게 당길 수 있다. 반대로 천천히 조금씩 풀 수가 있어 높은 곳에서 무거운 물건을 천천히 내릴 때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 모양이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좌우 반대 방향으로 고리를 틀고 두 고리를 겹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당장 쓰지 않는 매듭이더라도 기본적인 매듭을 반복해서 숙련하면 다른 매듭으로 응용되기도 한다. 머리로 익히기보다 손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자꾸 머리로 이해하려다 보니, 내 매듭법은 참 오래 걸렸다. 몸에 새겨둬야 한다. 배우는 게 아니라 익힌다. 두께 5mm 정도의 밧줄(1~2m)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몇 번 해봤다고 서랍 속에 넣어두면 며칠도 안 돼서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책상머리에서 끝내지 말고 현장에서 활용해봐야 한다. 책상과 실제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대형 티피를 세우다

22피트짜리 큰 티피를 제작했는데 한쪽 면 경사 길이가 6m가 넘는다. 티피를 덮을 천을 넓게 펼치면 타원의 반원 모양이 된다. 긴 쪽 지름은 13m나 되고 짧은 쪽 반지름도 6m나 된다. 한 15명 정도는 너끈히 둘러앉아서 모닥불을 피우고 놀 수 있을 규모다. 기왕 만들 거라면 쓸모가 있어야지 해서 제작했지만 너무나 컸다. 이 거대한 캔버스 천을 말아서 세워야 하는데, 그 무게가 장난 아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이렇게 만든 티피로 난로 하나를 둘러싸고 40명이 뒤엉키어 밤새 노래 부르며 아주 신나게 놀았었다. 이후로도 세 동을 더 만들었지만, 크기는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매번 후회하지만 날이 새도록 즐겁게 놀았던 강렬한 추억에 사로잡혀 판단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경사면에 맞추려면 천막을 받칠 기둥도 7m~8m가 돼야 한다. 수(Sioux)족처럼 긴 나무는 없으나 우리에겐 대나무가 적당했다. 휘지 않고 버티려면 지름이 적어도 어른 손목보다는 굵어야 했다. 서울 한복판에 큰 대나무를 파는 곳이 있을까 했는데, 영등포 신길역 근처 대나무총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목욕탕이나 찜질방 공사에 많이 나간단다. 1톤 트럭에 8m 짜리 쭉 뻗은 대나무를 22개나 실었다. 7~8개짜리 세 뭉치씩 묶었다. 차머리 앞으로 튀어나온 세 묶음의 대나무 뭉치는 차 끄트머리로도 툭 삐져나왔다. 트럭에 업어다 올려놓으니,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세 다발이 축 늘어졌다. 가만히 두면 대나무끼리 미끄러져 흘러내렸다.

가지고 간 고무 바로 묶으려니까 가게 주인이 그 걸로는 안 된다고 잡아챈다. 대나무 더미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으라더니, 나일론 밧줄을 가져와서 끝을 올가미모양(이중8자고리매듭)으로 만들어 던진다. 그걸 반대편 걸이에 걸고 다시 돌아오더니 삽시간에 고리를 만들고 손을 끼워서 비틀더니 잡아채서 걸이에 걸어 당긴다. 그냥 밧줄을 얹어 당겨서는 천하장사라도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비쩍 마른 사람이 잡아당기는데 대나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 위력의 걸이매듭(hitch)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정말 모르는 트럭운전사매듭(trucker’s hitch)이다.

주인에게 매듭을 한 번만 더 보여 달라고 했다, 별거 아닌 것에 쏠리는 관심에 멋쩍어하면서 다시 매듭을 보여줬다. 이런, 진짜 눈 깜짝할 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으로 담을 테니 다시 한번 보여 달라고 했다. 귀찮은 듯 이걸 알아서 뭐에 쓰려고 하는지 되묻는다. 물론 대나무를 싣고 가야 했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해서 배우려던 게 아니었다. 그저 마냥 신기했다. 호기심 끝에 매듭책4)까지 샀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저런 형태의 변용된 트럭운전사매듭이 쓰인다. 조금씩 매는 법이 다르지만, 도르래의 원리가 숨겨져 있는 점은 같다. 비튼고리에 끝가닥을 잡아채서 만든 고리가 움직도르래 기능을 해서 힘을 반으로 덜어준다. 그보다 힘이 도리어 두 배 세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화물을 싣지 않더라도 빨랫줄과 현수막처럼 줄을 팽팽하게 당겨야 할 때도 요긴하다.

단순하지만 반복 숙달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알지' 하는 매듭이 있다. 아무라도 신발 끈은 묶는다. 리본매듭(bow knot)이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매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나 또한 신발 끈은 본래 잘 풀어지는 줄만 알았다. 사실 잘못 매어서 그렇다. 습관처럼 잘못된 매듭을 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리본매듭은 연결매듭에서 아주 중요한 스퀘어매듭(square knot)5)에서 나왔다. 스퀘어매듭에서 풀기 쉽게 양쪽 끝가닥을 접어서 매기만 하면 된다.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만큼 확실히 해두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완성된 매듭을 잘 보면 고리 두 개가 양쪽에서 서로 감아 당기는 모습이다. 두 손으로 양쪽에서 원가닥과 끝가닥을 함께 잡고 좌우로 풀었다 당겼다 해보면 제대로 묶었는지 알 수 있다. 따로 노는 것 같이 부드럽게 조여지고 풀린다. 잘 안 된다면 그래니매듭(granny knot)이 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대충 묶은 매듭'이라고 나온다. 내 신발 끈이 잘 풀린다면 확인해보라, 그러니(?) 매듭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스퀘어매듭에 한쪽 끝가닥을 빼서 원가닥 밑으로 넣으면 시트밴드(sheet band)가 된다. 시트밴드는 굵기가 다른 밧줄을 서로 이을 수 있어 유용하다. 이때 감는 것은 가는 줄로 한다. 이처럼 스퀘어매듭은 원리적 이해에서 기본 중에 기본매듭이다. 많은 매듭이 여기서 출발한다. 굵기가 같은 밧줄을 이어주는 낚시꾼매듭(fisherman’s knot)도 스퀘어에서 변형되었다. 좌우 매듭을 잡아당기면 전체 길이가 줄어든다. 목걸이 줄을 서로 이을 때 쓰면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또 하나 더 스퀘어매듭의 끝가닥을 2회 더 감아주면 외과의매듭(surgeon’s knot)이 된다. 말 그대로 외과의사가 상처를 봉합할 때 쓰는 매듭인데 끝맺음하기 적당한 매듭이다. 상자나 신문이나 책자를 묶을 때 모서리에서 마무리한다. 끝가닥을 세게 당기면 매듭이 강하게 조여지면서 짱짱해진다.

마침내 매듭의 왕, 보우라인(bowline)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고리매듭인데 만든 고리 크기가 변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매우 강하면서 풀 때는 손쉽게 풀 수 있다. 잡아당겨도 고리가 조여들지 않아서 물에 빠졌을 때 몸에 묶을 수 있게 구명밧줄로 쓸 수 있다. 긴급한 상황에서 구조자가 한 손으로 자신의 몸을 묶을 수도 있다. 강도가 높아 산악등반이나 고공 작업현장에서 전문가들이 많이 사용한다.

만일 고리가 조여든다면 잘못된 매듭이며 일명 사형수매듭(evans knot)과 넥타이매듭처럼 목을 죌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원가닥에서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끝가닥에서 고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찌하다 보면 끝가닥이 고리가 되는 현상이 생긴다. 그런 경우 끝가닥을 세게 당기면 뒤집혀서 원가닥에서 고리 모양이 나타난다. 팁이라면 끝가닥이 고리를 통과해서 원가닥을 감아서 나오는데 들어간 데로 고리를 통과해서 나와야 한다. 나는 주로 타프(그늘막)나 천막을 칠 때나 천막 링에 걸거나 해먹을 나무에 매달 때 잘 쓴다. 링에 줄을 걸어야 할 때는 꼭 쓴다. 왕의 지위에 오른 매듭인지라 수많은 인민들에게 다방면으로 널리 사랑받는 매듭이다. 단순하지만 금방 익혀지는 매듭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까베스땅 버금갔다.

발명이 용도를 낳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일까? <총, 균, 쇠>(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펴냄)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필요가 기술을 낳는다는 당연시해온 생각을 뒤집는다.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 그는 축음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면서 현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기술적 혁신이 대부분 그렇다고 했다. 비행기와 자동차, 내연 기관과 전구, 트랜지스터 등도 예외가 아니다.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은 최초의 축음기를 만들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을 보존하는 일,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녹음하는 일, 시간을 알려주는 일 등에 쓰이리라 기대하고 발명했다. 그러나 주된 용도는 음악을 녹음하고 재생하는 일에 쓰였고 사업화되었다. 발명자인 에디슨은 사무용으로 쓰이지 않은 데에 끝까지 못마땅했다.

대부분의 발명품이 제품에 대한 수요 따위는 애초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기심에 사로잡혀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던 사람들이 개발했다. 매듭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갖가지 매듭을 만들어놓고서야 쓰임새를 찾아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개중에 쓸모없는 매듭도 있었을 테고 까베스땅이나 보우라인처럼 위대한 매듭은 쓰면서 쓸모가 하나씩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 누적된 행동이 모여서 필요를 더 늘리고 발전해나갔음에 틀림없다. 지금 바로 써먹을 데가 없더라도 앞서 열 가지 기본적인 매듭은 꼭 익히길 바란다. 뒷날 당신의 일상에서 종종 등장하면서 큰 기쁨을 줄 것이다. 밧줄을 꺼내 주물럭거리며 즐기자, 필요할 때까지!

각주

1) 인디언 수족의 티피 설치법(Instructions for Setting Up a Sioux Tipi)(☞바로 가기)

2) clove hitch라고도 한다.

3) half clove hitch, italian hitch라고도 불린다.

4) 인터넷을 검색하면 동영상도 많이 나오고 애플리케이션도 꽤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리해 놓은 책자 매뉴얼 하나는 필요하다. 이 매뉴얼을 주로 참조했다. <매듭법>(하네다 오사무·젠요지 스스무 지음, 진선출판사 펴냄).

5) 리프매듭(reef knot)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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