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불가역적 해결', 박근혜 청와대가 밀어붙였다

"시종일관 비밀 협상, 한국에 부담되는 내용은 비공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의 이전을 시사했다는 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명시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이하 위안부 TF)는 검토 결과 보고서를 통해 국민적인 반발을 일으켰던 이러한 사안들이 어떻게 합의에 이르게 됐는지 상세히 전했다.

27일 위안부 TF는 소녀상 이전과 관련, "일본 쪽은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고 밝혔다. TF에 따르면 일본은 협상 초기부터 소녀상 이전 문제를 제기하였고, 합의 내용의 공개 부분에 포함시키기를 희망했다. 한국은 소녀상 문제가 합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다가 협상 과정에서 비공개 부분에 넣자고 제안했는데, 어떤 이유로 이러한 제안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위안부 TF는 "(박근혜 정부는) 국회, 언론 등이 공개된 내용 외의 합의가 있는지를 물은 데 대해 소녀상과 관련해서 그런 합의는 없다는 취지로 답변해 왔다"며 "그러나 비공개 부분에서 한국 쪽은 소녀상 문제를 언급했고 이는 공개된 부분과는 달리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에 대한 일본 쪽의 발언에 대응하는 형태로 돼있다"고 전했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항목과 관련, 위안부 TF는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 측이 먼저 요구했다고 밝혔다. 당초 한국은 피해자 및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받아 일본의 사죄에 대한 불가역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합의가 사실상 완결된 2015년 4차 고위급 협의에서 불가역성의 의미가 달라졌다. 위안부 TF는 "한국 쪽은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했는데 당초 취지와는 달리,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에 외교부는 당시의 잠정 합의 직후 위와 같은 표현은 국내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삭제가 필요하다는 검토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불가역적'의 효과는 책임 통감 및 사죄 표명을 한 일본 쪽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TF는 "이 구절은 일본 정부가 예산을 출연하는 것만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한국 쪽은 협의 과정에서 한국 쪽의 의도를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표현을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TF는 "결국 양쪽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법적 책임' 인정은 해석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선에서 합의했다"며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일본 쪽의 희망에 따라 최종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표명과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한다고도 언급했다"고 꼬집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합의 1주년인 2016년 12월 28일 서울 도렴동에 위치한 외교부 청사 앞에서 위안부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프레시안(이재호)

이외에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자는 항목에 대해 위안부 TF는 "합의 이후 청와대는 외교부에 기본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며 "마치 이 합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오해를 불러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죄와 관련, 위안부 TF는 과거 일본이 사과를 표명했던 것보다 좀 더 공식적인 형태로 이러한 뜻을 밝혔다면서 "이번 사죄와 반성 표명은 종래보다는 나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TF는 "불가역적이고 공식성이 높은 내각 결정 (각의 결정) 형태의 사죄에 이르지 못했고 형식 역시 피해자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며 아베 총리의 사죄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용도 아시아여성기금의 총리 편지 중 '도의적' 용어만 빼고 동일한 표현과 어순을 그대로 되풀이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10억 엔 성격 규정과 관련해 위안부 TF는 "일본 쪽은 합의 직후부터, 재단에 출연하는 돈의 성격이 법적 책임에 따른 배상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도 배상 차원의 돈이 아니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다"며 "피해자들 입장에서 책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피해자들이 돈을 받았다하더라도 위안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위안부 TF는 "그간 피해자 쪽의 3대 핵심 요구 사항, 즉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사죄, 배상 등 3대 핵심 사항은 일본 쪽이 다른 조건을 걸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 노력,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자제 등 일본 쪽의 요구를 한국 쪽이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타결됐다"며 "3대 핵심 사항과 한국 쪽의 조치가 교환되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3대 핵심 사항에서 어느정도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조차도 그 의미가 퇴색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10억 엔은 주지만 한국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화해치유재단'이 만들어졌고 일본 정부의 10억 엔도 거출됐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10억 엔의 사용처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일본의 10억 엔이 거출된 뒤 외교부와 화해치유재단은 생존자에게 1억 원, 사망자에게는 2000만 원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이 금액을 한 번에 지급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이 10억 엔을 거출한 다음날인 2016년 8월 25일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일차적으로 피해자 분들의 수요를 조사한 뒤 효과적으로 금액이 쓰일 수 있도록 1억 원에 준한 금액을 일정 기간에 따라 나눠서 드리는 것을 재단 내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피해자가 어떤 곳에 돈을 쓸지 재단에 밝혀야 금액을 수령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와 관련 위안부 TF는 이병기-야치의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된 '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을 소개하며 이러한 결정의 배경을 소개했다.

TF는 "한국 쪽 대표로부터 사용처를 묻지 않는 현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정말로 필요한 경우에 그 사용처에 따라서 현금 지급을 하는 경우를 배제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발언이 있었음을 감안하여, 일본 쪽 대표는 그 전제로 "현금의 지급은 포함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의 삭제에 동의한다"라는 기록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 측이 "피해자들에게 현금 지급은 포함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합의문에 넣으려고 했지만, 한국 측이 피해자들에게 현금 사용처를 확인하고 지급할테니 이 표현을 넣지 말자고 합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일본 정부는 애초부터 피해자가 특정한 금액을 일괄적으로 지급받는 방식을 거부했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피해자별 맞춤형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일괄 지급 불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 측은 한국 측에 지급한 10억 엔의 사용처에 대해 정기적인 보고를 받으려고 했고, 한국 측은 이에 동의했다고 위안부 TF는 밝혔다.

TF는 이병기-야치 고위급 협의에서 '(화해치유) 재단은 양국 정부에 대해 사업의 실시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통보하며, 필요시 양국 정부 간 협의한다'는 문안과 관련, "일본 측 대표로부터 위 문안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의도에 반해 재단 사업이 실시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기 바란다는 언급이 있었고, 한국 쪽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는 취지의 응답을 했다"고 밝혔다.

액수가 10억 엔으로 정해진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27일 오태규 TF 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그 기준을 몰랐다"며 "우리가 보통 돈을 얼마씩 받는다 하면 어떤 사용 기준으로 얼마가 들어가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 기준에 대해 논의한 어떤 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피해자 의견 수렴하지 않은 합의

위안부 TF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큰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TF는 "외교부는 협상에 임하면서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합의하더라도 피해자 단체가 수용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자 단체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돈의 액수에 관해서도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발표된 다음날인 2015년 12월 29일, 이용수(왼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정대협 쉼터를 찾은 당시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위안부 TF는 박근혜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정부 입장을 위주로 합의를 매듭지었다"며 "이번의 경우처럼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는 한,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였더라도, 문제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TF는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를 한일 관계 정상화의 바로미터로 간주했다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TF는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 불가'를 강조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 전반과 연계해 풀려다가 오히려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며 "위안부 등 역사문제가 한일관계 뿐 아니라 대외관계 전반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균형 있는 외교 전략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위안부 문제처럼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일수록 국민과 같이 호흡하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며 "그러나 고위급 협의는 시종일관 비밀협상으로 진행되었고, 알려진 합의 내용 이외에 한국 쪽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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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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