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풀 열쇠, 에너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세계를 움직이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최근 북한의 미사일 (ICBM급 화성 15형)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북핵에 대한 미‧중‧러의 대외정책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북 대화'라는 파격 제안과 하루 만에 이를 뒤집는 백악관의 '북한의 비핵화 의지 없어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는 성명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혼선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혼전 속에서도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북미대화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만으로도 군사 옵션보다 대화로 접근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두 가지 대화 시작 (북‧미 대화, 남북 관계를 위한 대화)"에 대한 발언도 북한과 대화 의지를 강하게 어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과 대화가 시작된다면 북한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위한 '동력(전기), 에너지'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인류는 석탄이 주 에너지원이었던 100년과 석유가 주에너지원이 되었던 100년을 지나 지구의 마지막 화석 연료인 천연 가스를 사용하면서 신재생 에너지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가 국제질서의 변화를 강력하게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며, 한반도가 이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남북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중‧일‧러의 국가 정책도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미국의 경우 2008년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최대의 경제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2009년부터 셰일층에서 천연가스와 원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에서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고, 미국산 원유 때문에 기존의 러시아와 중동산 원유가격은 폭락했다. 또 제조업이 살아나고 경상수지가 대폭 개선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산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중동평화유지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독립을 이룬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라는 보호주의를 표방하며, 이전보다 더 전세계의 정치‧경제에 자유롭게 개입하고 있다. FTA 재협상 요구,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탈퇴,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자국 산업을 위한 각종 세금 부과,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세운 장벽, 이란 핵 협상 무효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등이 에너지 안보에서 자유로워진 미국이 보여준 새로운 얼굴이다.

여기에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서 최대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로 바뀌었고, 중동지역에 주둔했던 미군 병력을 동아시아로 대거 이동시켜 중국의 동북아시아 패권 장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탈원전을 선언한 일본은 대체에너지원으로 향후 20년간 미국산 LNG를 대량 수입하기로 계약했다. 그리고 셰일가스 운송로 보호를 앞세워 미국으로부터 집단자위권에 대한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전쟁 가능 국가로의 헌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추진하는 65개국 육로와 해로를 잇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해상권을 강화하여 아시아에서의 장악력을 높이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거대 경제권의 중심국가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러시아는 저유가와 셰일가스 혁명, 크림반도 강제합병으로 인한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지 강국이다. 푸틴 정부 3기를 맞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신동방정책의 핵심도 동북아시아에 안정적인 에너지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중국 북부에 송유선과 파이프라인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대량 공급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한국의 참여로 남‧북‧러 경제협력이 추진되길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 남‧북‧러 전력망 연계사업의 전 단계로 북‧러 간 전력망 연계를 추진하였다. 전력은 러시아 최대 수력발전소인 부레야 발전소에서 공급하고, 송전방식은 HVDC (초고압직류송전, High Voltage Direct Current) 기술로 전력손실이 거의 없이 송전할 수 있다. 송전선의 러시아 내 구간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까지 250km, 북한 구간은 크라스키노부터 청진까지 130km이다.

문제는 송전선 건설비용 조달과 북한의 러시아 전기 사용료 지불 여력이다. 북‧러 송전선의 경제성은 남‧북‧러 전력망 연계로 확장 연결할 때 더 높은 경제성을 갖게 된다. 남‧북‧러 전력 연계망 사업의 걸림돌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이다. 한국이 남북대화에서 러시아의 수력발전을 통해 북한에 전기가 공급되도록 협력하고, 북한을 관통하는 전력망을 통해 한국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남‧북‧러 전력망 연계사업이 현실화되면 관련 국가들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은 2%에 불과한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화력‧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며 환경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러시아도 저렴한 원가의 수력발전에 의한 전력 수출을 통해 극동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전력 부족이 심각한 북한으로서는 러시아 전력의 통과료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고 추가로 필요한 전기를 구매하기도 쉽다.

한국은 이러한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와 국제질서의 변화를 놓치지 말고 한반도 평화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전력망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경제 협력의 촉진제가 될 것이며, 남북한의 북방경제협력은 물론 미국‧일본도 경제 협력의 틀 안에서 남북한과 공동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핵 개발에 함몰되어 있는 북한을 경제 협력을 통해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서서히 편입시켜 고립을 막고, 상생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며, 남북한의 경제가 발전함으로써 한반도의 경제적 가치가 상승할 것이다.

전기에서 시작된 남‧북‧러의 에너지 협력은 러시아의 PNG 연결로 발전하고,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로 이어질 것이다. 70년 분단의 역사로 섬처럼 고립되었던 한국은 에너지로 대륙에 연결되고 북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로 지난 100년간 열강들의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북한은 핵 개발에 몰두하며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길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지경학적 접근으로 한반도의 경제적 가치를 최고로 높이는 일이며, 이는 에너지의 연결로 실현할 수 있다. 이렇게 한반도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면 평화 정착도 요원한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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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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