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법'을 지키겠다는 '불법'이 있습니다

[기자의 눈] 궁중족발 강제집행 집행관 200만 원 과태료 처분, 앞으로는?

경비업법 15조의2(경비원 등의 의무) 1항 : ‘경비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경비업법 15조의2(경비원 등의 의무) 2항 :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법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진행할 때 지켜야 하는 규정이다. 한마디로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문화된 법이나 다름없다. 건물주가 고용한 경비원, 즉 용역이 폭력을 유발하지만 집행관이 이를 관리·감독하는 경우는 드물다.

폭력을 묵인하거나 되레 이를 조장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집행관은 강제집행에 동원하는 보조용역(경비원), 즉 건물주에 의해 고용된 용역을 투입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강제집행 현장에서의 폭력은 대부분 이들에게서 발생한다. 강제집행을 막으려는 세입자와의 번번이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다. 집행관은 그런데도 이들의 투입을 허용하는 식이다.

▲ 건물주가 고용한 용역들에게 자신의 가게에서 끌려나오는 궁중족발 사장. ⓒ궁중족발

이례적인 법 집행관 징계... 과태료 200만 원 부과

하지만 이러한 관행에도 제동이 걸렸다. 강제집행 현장에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법 집행관에게 과태료 200만 원 처분이 내려졌다. 지난 11월 9일 강제집행으로 손가락 4개가 부분절단된 서촌 궁중족발 사장이 낸 진정서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나는 손가락이 잘린채 질질 끌려나왔다")

답변서를 보면 "피진정인(집행관)은 인도집행과정(강제집행 과정)에서 노무자(용역)를 보조자로 사용함에 있어 일부 노무자 등의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았고, 승인되지 않은 등록외 노무자를 사용했으며, 일부 노무자들에게 (강제집행 과정에서) 규정된 조끼를 착용하게 하지 않아 노무자 등에 대한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과태료 200만 원 처분 사유를 설명했다.

등록되지 않은 용역을 강제집행 현장에 투입했을 뿐만 아니라 투입된 용역에 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징계 이유다.

강제집행 관련, 집행관 징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12년 1월부터 2017년 3월, 약 5년간 이뤄진 총 12건의 집행관 징계는 모두 뇌물수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폭력사태가 유발되는 강제집행 과정과 관련해서는 단 한 건도 징계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 관련가시 바로가기 : '일당' 주고 '합법적 폭력'을 삽니다)

그렇다면 강제집행 과정에서 궁중족발과 같은 폭력사태가 없었던 걸까. 201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테이크아웃드로잉'은 3차례에 걸친 강제집행 과정에서 용역들이 이름표를 패용하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던 집행관은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당시 경비원들은 출입문과 창문을 부수고 집기들을 훼손했고 집행 이후 사라진 물건들도 있었지만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결국, 관할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했으나 범인을 찾지 못했다는 통보만 받았다.
'우장창창' 강제집행 당시에도 용역들이 이름표를 패용하지 않았지만 집행관은 이 역시 시정조치하지 않았다. 당시 용역들은 가게 안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커터칼로 천막지붕을 뜯어내고 밀폐된 공간에 소화기를 분사했다. 그 과정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119응급차에 실려 간 사람도 있었지만 당시 집행관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법은 있으나마나한 했던 셈이다. 사실 궁중족발의 경우도 강제집행 과정에서 세입자의 손가락 4개가 부분 절단되지 않았다면,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이 사태를 다루지 않았다면,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직접 이 사안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집행관의 징계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요원했을 것이다.

법을 지키겠다면서 불법을 한다면?

그간 법 집행관에게 제대로 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두고 '제식구감싸기' 비판이 제기돼 왔다. 법원행정처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신규로 임명된 집행관의 94.4%인 371명(법원출신 273명, 검찰 출신 98명)이 4급 이상 법원 공무원 출신이었다. 전관예우식으로 퇴직 뒤 집행관 자리로 이동하는 식이다.

집행관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해당 지방법원장이 자기법원 출신 고위 공무원을 사실상 내정해 둔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지방법원장은 임명권과 동시에 징계권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한 집행관 징계는 미약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법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강제집행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불법이 일어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덧붙여 이러한 불법 관련, 어느 누구도 책임지거나 징계 받는 일이 없다는 건 당황스럽다 못해 허무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국세청의 2016년도 집행관 수수료 수입내역을 보면 집행관 1인당 평균 수입은 1억3000만 원이었다. 건당 수수료로 수입을 챙기는 집행관이기에 이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모르는 크고 작은 강제집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곳에서도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구조가 반복돼야만 하는 것인가. 반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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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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