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명 피해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비슷하거나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잦다는 점이다. 올 들어 타워크레인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지난 11월 16일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타워크레인 중대 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또 다시 인명피해 사고가 터졌다. 정부의 대책 발표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이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이젠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타워크레인 작업장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의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5월 1일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서로 출동해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타워크레인 운전자에게 신호를 잘못 보내는 바람에 두 크레인이 충돌해 크레인 지지대가 무너져 지상에 있던 하청 노동자들이 참변을 당했다.
같은 달 22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진건지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인상 작업 중 기둥이 부러져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당 크레인에 맞는 순정 부품이 아닌 철공소 주문제작 부품으로 교체해 사용하다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도 철거작업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다쳤다.
올 들어 타워크레인 사고 사망자 크게 늘어
지난 5년간 타워크레인 사고로 생명을 잃은 노동자는 40여 명. 올 들어서만 17명이 숨졌으니 최근 인명 피해사고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타워크레인 사고의 원인은 그동안 발생한 많은 타워크레인 사고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인으로 같은 사고가 재발하고 있는 것이다.
타워크레인 사고는 크레인을 높이는 과정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 최근 사고의 대부분도 여기에 해당한다. 노후 장비 또는 불량부품 사용, 작업자들의 부주의 등이 사고의 주요 원인들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위험 작업을 영세업체에게 하청 주는 관행과 노동자의 생명이 우선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에 눈먼 기업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자세로 공사하지 않고 서둘러 공사를 강행하는 행태들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뿌리 뽑히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타워크레인 사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일어난 용인 동원물류 물류센터 공사장 사고도 지난 5월 남양주, 10월 의정부 사고와 판박이다. 또 거제 삼성중공업, 남양주, 의정부 등 최근 잦은 타워크레인 사고의 원인의 뿌리에는 하도급 문제가 있다. 최근 타워크레인 사망사고 희생자 대다수는 하도급 업체의 노동자이다.
노동 현장에서 사망 사고 나도 원청 대기업 처벌은 솜방망이
안전사고가 나더라도 처벌이나 제제는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 중 사망사고는 23건이다. 이 가운데 수사 중인 2건을 제외하고 재판을 받은 것을 보면 건설사 원청을 기소한 15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벌금 12건, 무혐의 2건, 기소유예 1건이다.
사람이 죽는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원청의 최대형량은 '벌금'인 것이다. 기업들이 산재를 가벼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러니 위험 작업의 외주화, 즉 하청이 우리 노동현장에서 만연하고 있다. 또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더라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쥐꼬리만한 돈 몇 푼을 쥐어주면 끝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타워크레인은 2017년 현재 총 5980대가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3500대가 건설 현장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층 건축물을 짓는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은 자재를 나르는 필수장비이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앞서 거론했던 불량 부품 사용들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공공기관이 하던 검사를 민간으로 떠넘기면서 노후 장비 등에 대한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해왔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와 노동안전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고 뒷면에는 '위험의 외주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 멀리하면 기업 망하게끔 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해야
타워크레인 사고가 잇따르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도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지난달 초 건설현장 등에서 타워크레인 등을 설치·해체·조립하거나 작업이 이루어지는 사업장을 총괄·관리하는 원청 사업주에게 유해·위험 방지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하 1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벌칙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에 용인 동원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또 다시 일어난 사고로 이 법안 통과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잇단 타워크레인 사고는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같은 유형의 재난과 사고가 반복해 일어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1988년 열다섯 살의 문송면 군이 영등포에 있던 한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숨졌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나 우리 사회의 제도와 의식이 바뀌었는데도 18살 고등학생 이민호 군이 제주의 한 생수업체에서 프레스에 깔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1988년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1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중추신경계가 마비돼 숨지거나 불구가 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직업병 사건이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에스케이하이닉스 등 반도체 공장에서 청년들이 백혈병 등으로 수백 명이 스러져갔다. 부끄럽게도 오래 된 과거의 비극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이제야말로 정치권과 관료, 전문가, 노동조합, 언론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다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와 의식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노동안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잇단 타워크레인 사고로 인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함께 기업이 안전을 멀리하면 돈을 벌지 못하고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확실히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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