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대재난의 위험, 전력시스템 믿을 수 있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EMS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 필요하다

2011년 9월 15일, 전국 각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정전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핵심적 사회기반 시설(critical infrastructure)인 전력계통이 한 순간에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명백히 인식하게 되었다. 전기로 작동되는 산업설비와 군사장비 등 핵심시설 뿐 아니라 일상적인 작업들조차 매순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기공급의 신뢰도를 높이는 과정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9·15 정전사고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파악과 그에 상응하는 대책이 사고 후 수립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왜 벌써 6년이나 지난 사건을 다시 불러들여서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대정전의 잠재적인 위험은 상존하는데 9·15 정전사고에 대해 전력거래소가 발간한 백서 이외에는 원인규명에 대한 정확한 기술보고서가 없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여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전력 계통 전체를 관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전력계통운용시스템(Energy Management System, EMS)을 운용하고 있다. EMS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로그파일을 기록했을 것이다. 로그파일의 분석은 원인 파악을 위한 가장 상식적인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 데이터에 근거한 기술보고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는 과연 로그파일의 기록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로그파일을 생산하는 EMS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EMS의 올바른 작동과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에 대한 요청, 전력산업의 문제를 논의하는 또 하나의 시급하고도 중요한 이유다. (필자)
필자는 미국의 대정전의 사례들과 2011년 우리나라 대정전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전력계통 운용의 문제를 짚어 보고 전기공급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정전의 주요 발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1965년과 2003년 미북동부지역에서 발생했던 대정전의 사례를 분석한다. 미국의 1965년 대정전은 전력계통의 EMS(Energy Management System)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2003년 대정전은 EMS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준다. 그 다음 우리나라의 전력계통을 관리하는 조직의 핵심 의사결정도구인 EMS 운영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 후, 앞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제시하고자 한다.

미국 북동부지역의 1965년 대정전과 EMS의 발전

1965년 11월 9일 늦은 오후, 뉴욕시 상공을 날고 있었던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밝았던 뉴욕시 전체가 갑자기 암전되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이 사건은 50여 년이 지난 오래된 사고로 인간이 처음으로 경험한 대규모 정전(Blackout)이었다. 1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대정전으로 교통신호체계, 통신망, 수도, 항만, 공항 등 도시의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80만 명이 지하철에 갇혔으며, 많은 시민들이 발이 묶여 철도역 주변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이 사고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캐나다와 미국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계전기(relay)의 잘못된 한계치 설정과 탈락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흐르던 전기는 나머지 네 개의 계전기에 과부하를 주었고, 곧 연쇄탈락이 전개되면서 역방향으로 전기가 흐르게 되었다. 곧 미국의 북동부 쪽의 전체 송전망에 예기치 못한 과부하가 걸렸고, 인간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전력계통이 순차적으로 탈락하는 단계(cascading stage)로 접어들어 순식간에 대정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미국과 캐나다는 전기의 안정적 공급과 신뢰도 향상을 위해 1968년에 북미주 전기신뢰도 위원회(The 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uncil, NERC)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민간전력회사의 주도로 구성되었는데, 전기신뢰도 개념을 정립하고, 수요예측을 하며, 전기신뢰도 유지에 필요한 제도와 규제를 정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거대한 전력망의 상태를 파악하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 요구되었다. 전기는 저장할 수 없고,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지며, 빛의 속도로 전달되기 때문에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전기의 흐름을 감시하고 수천 기의 발전기를 동시에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에 따라 발전기와 전력망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1920년대부터 전력망 분석기를 통해서 전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기술을 축적시킨 전력산업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중앙에서 전력망 전체를 제어하는 기술, 외부충격에도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기술 등을 확보했고, 수동으로 전기공급(급전)을 제어하는 단계에서 자동급전의 단계로 발전했다. 이런 기술축적과 함께 1960년대 전력계통에 사용되기 시작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전력망을 통제하기 위해 시스템의 오작동으로부터 보호, 수요대응 조정능력, 경제적 최적화, 그리고 상태변화적응 등 네 가지 제어 개념에 토대를 두고 운용됐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전력산업계는 원격감시제어 및 데이터수집 시스템(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 SCADA)과 전력계통운용시스템(EMS)을 개념화함으로써 매 순간 전력망의 상태를 모니터하고 다양한 상황변화를 제어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전력계통 운용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도구로써 SCADA는 전력망에 설치된 수만 개의 계측기는 실시간 데이터를 중앙제어센터에 보내게 된다. 중앙의 전력계통운용자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EMS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발전기, 변전소, 그리고 송전망에 얼마만큼 전력이 흐르는지를 정확히 계측하고(State Estimation, SE), 수백 가지의 고장을 가정하여 이것이 전력시스템의 붕괴에 영향을 주는지 실시간 계산(시뮬레이션)한다(Real Time Contingency Analysis, RTCA). 그리고 전체 전력계통 중 한 군데에서 탈락이 다른 곳에 과부하를 일으켜 전체계통이 붕괴하는 사고가 없도록 하고, 동시에 경제적 발전출력과 송전이 이루어지도록 안전도제약경제급전(Security Contrained Economic Dispatch)을 실시하여 전력계통을 안전하게 제어한다. 100년에 가까운 기술 개발과정을 통해 구현된 이러한 SCADA와 EMS는 전력계통운용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 됐고, 만약에 이 시스템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전력계통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대정전의 발생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 북동부지역의 2003년 대정전

2003년 8월 14일에 발생한 미북동부지역의 대정전은 바로 EMS 기능의 마비에서 시작했다. 오후 4시 6분경 송전망의 연쇄탈락으로 지역의 정전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불과 5분 만에 265기의 발전기가 멈췄고, 6180만 킬로와트의 전력이 사라지면서 50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전력계통운용자들이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인데 그 이유가 바로 EMS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하이오 주 북부에 위치한 퍼스트에너지(FirstEnergy, FE) 전력회사는 자체적인 EMS를 통하여 전력공급을 감시·제어하고 있었다. 그 위의 감독기관인 마이소(Midwest Independent System Operator, MISO)는 퍼스트에너지를 포함하여 중서부 지역의 전기수급의 균형을 맞추고 전기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EMS를 가동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소의 EMS는 오후 12시 15분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퍼스트에너지를 포함하여 그 지역의 전력망의 상태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다. 마이소에서는 오후 1시 30분경부터 화력발전소가 정지했고, 오후 3시경부터는 345킬로볼트의 송전선이 나무 접촉과 과부하로 전체 송전망에서 차례로 탈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퍼스트에너지에게도 이러한 문제를 전달할 수도 없었다. 이들은 E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사고 2분 전인 오후 4시 4분에 조치를 취했지만 연쇄탈락을 막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퍼스트에너지가 별도로 운용하던 EMS의 경보시스템도 오후 2시 14분부터 작동하지 않았고, 2시 40분경에는 EMS 서버도 멈췄지만 계통운용자들은 이 사실을 잘 몰랐으며, 따라서 관할구역의 송전선 탈락을 알 수 없었다. 특히 IT팀은 EMS 서버가 멈춘 사실을 계통운용팀에 알리지도 않았다. 이들은 오후 3시 45분경 주변의 전력회사와 전력신뢰도 감독기관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서야 자신이 운용하는 전력계통이 심각한 상황에 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EMS로 송전망을 제어하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결국 EMS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공항·지하철·항만 등 국가기반시설이 마비됐고, 그에 따라 적게는 40억 달러 많게는 1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1년 정전사고, 전력거래소는 EMS를 통해 전력계통을 감시하고 있었나?

미국의 대정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전력계통을 제어하는 EMS는 시스템운용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도구로서 EMS의 미작동이 대규모 재난이라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9월 15일 정전사고를 통해 일부 학자들이 EMS의 작동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EMS의 정상 작동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었다.

세간에 알려진 그 당시 정전사고의 원인은 주로 수요증가와 공급부족으로 설명되었다. 추석연휴 이틀 후인 9월 15일 예기치 않은 온도 상승으로 냉방기의 사용 등 전력소비가 급증했지만 기동이 가능한 발전기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후부터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양수발전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상부저수지에 저장된 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전력거래소는 3시 이후부터 지역별로 순환단전을 실시했다. 일반 시민들은 오후 4시를 전후로 약 15분에서 20분정도 정전을 경험했으며, 이러한 정전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사고 후 한국 전력거래소가 발간한 백서에서는 사고원인을 오직 예비력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정전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에 따라 제시된 대책은 전력소비예측 능력의 개선, 예비전력 확보를 위한 발전소 증설, 시민들을 상대로 여름철 전력소비절약 캠페인, 예비전력 부족 시 단계별 경보시스템 발령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전력거래소 및 관련기관들은 매년 여름 예비력부족으로 인해 대정전(Blackout)이 일어날 수 있다고 홍보하며 일반시민들에게 겁을 주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탈원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더 강화시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여기에서 심각한 사실은 예비력부족이라는 단순한 문제 이외에는 9·15 정전사고의 구체적 원인이 분석되지 않았고, 원인규명에 필요한 EMS 데이터를 공개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사고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는데, 그 당시 전력거래소, 한국전력, 산업통상자원부에 있었던 예비전력 표시가 각기 달랐다는 것이다. 전력거래소는 운용예비력이 오후 1시 이후 100만 kW에서 200만 kW사이로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400만 kW로 충분한 것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더욱이 주파수는 운용기준(59.8Hz) 이하로 이미 떨어져서 예비전력이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각 상황실에는 운용예비력이 표시되고 있었다는 점은 계기판이 허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각 기관별 수치도 달랐고, EMS의 로그파일이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기 위해 EMS를 정말로 가동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논란의 중심이 되는 한국형 EMS의 작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력거래소는 한국형 EMS(2009년)와 차세대 EMS(2014년)를 개발하여 국산화에 성공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 9·15 정전사고 이후 전력거래소가 보여 주었던 대응과 제시했던 자료들을 보면 사고 당시 한국형 EMS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차세대 EMS조차도 올바르게 기능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전력계통 실시간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력계통이 언젠가는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고 한반도 전체에 발생하는 대정전으로 인해 사회, 경제, 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손실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MS가 정상 작동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EMS는 5분마다 발전기의 출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EMS에서 제어하기 위해서 보내는 신호의 숫자와 제어를 받고 있는 발전기의 숫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EMS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수치의 흐름이 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력거래소의 데이터는 일관성 있는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다.

발전기는 1초에 60회 회전을 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집에서 전등을 켜서 전력소비가 증가하면 발전기는 무거워진 부하로 인하여 천천히 돌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MS는 각 발전기에 5분마다 신호를 보내어 연료를 더 공급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60회 회전을 회복하도록 한다. 이때 EMS에서 신호를 받는 발전기의 자동발전제어(Automated Generation Control, AGC)는 출력을 조정한다.

현재 EMS가 제어하는 발전기는 약 360여기다. 그런데 발전기 중에서 가스터빈과 스팀터빈으로 이루어진 복합화력발전기의 경우 복수의 터빈 전체가 하나의 제어단위로 설정되기 때문에 실제의 제어단위 발전기 수는 241개가 된다. 즉, EMS가 모든 제어단위에 신호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AGC 신호는 241개를 넘을 수 없게 된다. <표 1>은 전력거래소의 홈페이지에 있는 2017년 7월 21일 발전기 제어단위의 시간대별 숫자이다.

<1> 2017721일 시간대별 제어가능 발전기()

시간

1

2

3

4

5

6

7

8

9

10

11

12

제어단위 수

67

61

54

54

54

54

60

62

67

70

75

77

시간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제어단위 수

76

75

77

79

82

82

83

84

84

81

75

68

자료: 전력거래소 홈페이지 전력계통 운영정보에서 정리함


<표 2> 2017년 7월 21일 매 정시의 AGC 출력 신호 생산 발전기(소) 수

시간

0:00

1:00

2:00

3:00

4:00

5:00

6:00

7:00

8:00

9:00

10:00

11:00

제어단위 수

191

164

162

161

161

163

173

208

250

285

298

304

시간

12:00

13:00

14:00

15:00

16:00

17:00

18:00

19:00

20:00

21:00

22:00

23:00

제어단위 수

306

312

332

335

334

337

326

314

310

287

250

226

자료: 전력거래소 홈페이지 전력계통 운영정보에서 정리함



<표 2>는 전력거래소가 공개하는 ‘발전기별 5분 단위 경제급전’ 자료이다. 5분 경제급전은 AGC의 한 기능으로 발전기별로 EMS에서 받은 출력 신호의 값이 기록된다. <표 1>과 동일한 날에 EMS로부터 신호를 받는 발전기 대수가 <표 2>에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표 1>과 <표 2>의 차이의 크기가 커, 두 자료 사이에 일관성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표 1>의 17시 대(16:00~17:00)에 82개의 AGC 제어단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AGC를 만들어 보냈다고 하는 <표 2>에서 동일 시간대의 자료를 보면 334개(16:00)에서 337개(17:00)의 발전기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둘째, 전력거래소는 EMS를 통해서 산출되는 운용예비력은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공급예비력만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연료소비와 그에 따른 비용발생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현재 전력거래소 홈페이지에 발표하는 공급예비력은 우리나라 발전기 전체의 공급능력에서 현재 전기수요를 제외한 예비력을 말한다. 공급예비력에는 앞으로 수 십분 이내에 발전할 수 없어 멈춰선 발전기도 포함하고 있다. 2011년 9·15 예비력부족으로 인하여 정전사고를 경험했던 일반시민들은 충분한 공급예비력을 보면서 안도하겠지만 정지된 발전력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허수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EMS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의 EMS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정립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전의 전력거래소 시장운영규칙 중 ‘제5장 전력계통운영’은 EMS를 사용하고 있다면 정할 수 없는 규정을 담고 있었다. 2014년 10월에 개정된 규칙에 따르면 제5.2.1조는 안전도제약경제급전 기능이 ‘경제급전 기능에서 고려할 수 있는 제약과 상정고장 제약을 제외하고 송전선로 제약 등을 고려한 발전기 유효출력을 결정하는 기능’이라고 정의했다. EMS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 상정고장 제약을 제외하고 있어서 EMS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겠다는 점을 명문화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2014년 감사원 감사결과에 의하면 전력거래소는 상정고장 제약을 EMS의 한 기능으로 분명히 포함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 후 2016년 12월 개정된 규정에는 상정고장 제약이 포함되었다. 이 과정은 운용 주체가 EMS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차세대 EMS의 기능개선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규정만 바꾼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전력거래소가 상태추정-실시간 상정고장분석-안전도제약경제급전의 정확한 알고리즘 속에서 만들어진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를 별도의 독립적 기관이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의미 없는 숫자만 생성해서 보낸다면 송전망과 발전기 제어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넷째, 차세대 EMS를 검증한 검증기관 KEMA는 전력거래소의 EMS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KEMA의 또 다른 보고는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을 남겼다. 전력거래소는 2014년 감사원의 및 국회국정감사의 지적에 따라 2015년 네덜란드의 EMS 전문검사기관인 KEMA에 의뢰하여 차세대 EMS에 대하여 이틀 동안 검증을 받았다. 그런데, 동 검증에 대하여 2015년에 한 국회의원이 KEMA에 문제를 제기했고, 위 검증 보고서와는 별도로 KEMA는 국회에 검증보고서를 제출했다.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KEMA는 실시간계통운용에 대한 점검은 자신들의 검증범위에서 벗어난다고 말했고, 짧은 기간 동안 검사를 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조사 의뢰인인 전력거래소가 보여준 데이터만 보았고 실시간 전력계통에서 EMS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의뢰인에게 부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할 수 없음을 언급했다. 또한 전력거래소가 3000가지의 상정고장을 분석한다고 KEMA 직원에게 말했다고 했는데, 이 직원은 한국의 전력계통의 크기로 볼 때 전력거래소 제시한 3000가지란 숫자는 지나치게 많다고 해석했다. 참고로 미국 중서부 마이소(MISO)의 경우 한국보다 넓은 지역에 훨씬 복잡한 전력계통을 가지고 있지만 800여개의 상정고장만 분석하고 있다. 과연 EMS가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000개의 ‘경우의 수’를 분석할 수 있는지 기술적 능력을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EMS가 정상작동하지 않게 되면, 과도한 연료소비로 인해 연료비용이 낭비된다. 앞서 언급한 공급예비력 중에서 핵심적인 예비력은 수요변화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주파수조정(AGC) 예비력과 운전 상태에 있는 순동예비력(대기·대체예비력 또는 운용예비력, 전력거래소는 ‘운전예비력’으로 정의함)이다. 특히 순동예비력은 대기상태로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면서 연료를 계속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제어가 필요하다. EMS가 작동하고 있다면 이 순동예비력을 최소화하여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다. EMS를 실시간 활용한다면 약 150-250만kW 수준으로 확보하면 되지만 현재 전력거래소는 400만kW이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EMS의 부실한 운용 결과 과도하게 많은 발전기를 대기상태에 둠으로써 전력산업이 연간 4천억 원 이상의 연료비를 낭비하는 것으로 국회는 추정했다.

또한 감사원은 2014년 감사에서 EMS의 제어를 받는 모든 중앙급전발전기를 대상으로 급전계획을 잘못 수립하여 발전기별 ‘최적 발전량’을 배분하지 않은 상태로 전력계통을 운영했던 점을 지적하였다. 그 결과 발전비용 증가를 가져와 연간 약 8,422억 원이 낭비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도입한 차세대 EMS의 경우 최적화된 계산을 수행하여 얼마나 비용절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검증된 바는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문제들만 보더라도 EMS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의문이 타당하다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전력거래소는 2011년 순환정전 이후로 국회에 답변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EMS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2012년 9월까지 EMS의 상태추정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다가 10월 국정감사 때부터 상태추정을 한다고 밝혔다. 예비력도 EMS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2012년 8월까지 주장하다가 9월 전기학회에 발표할 때는 실시간 공급능력 산정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2011년 정전사고 이전까지 EMS의 기능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전력거래소가 국회에서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자 보다 개선된 개념을 제시하면서 EMS의 기능에 대해서 알아가는 희극적인 상황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전력거래소의 태도와 EMS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을 보면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전력계통의 붕괴는 예비력 부족 보다는 전력거래소의 오류로 인한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까지 지적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전력계통의 붕괴를 막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전력거래소와 그 관계자들이 보다 투명하게 자신들의 기술수준을 밝히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핵심 기반시설인 전력의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전력거래소는 지금까지 큰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 벗어나서 실시간 전력계통을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EMS 시스템의 투명한 검증절차를 실시하여 EMS가 정상적으로 작동, 운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전력계통 운용자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EMS의 구축은 그동안 발전한 수십 가지 전기공학지식을 통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각 기술 분야 별 전문가는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전문가는 부족한 형편이다. 통합적 지식에 기초한 전문가의 확보와 함께 전력계통운용자를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교육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전기신뢰도 감독기구의 설립과 이 기구의 독립성(예산과 인사권) 확보가 필요하다. 전력거래소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으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조직이다. 그 결과 EMS의 작동을 전문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독립적인 조직이 전기신뢰도를 전문적으로 투명하게 감시하고 개선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미국은 1960년대 말부터 꽤 오랜 기간 동안 EMS를 개발해왔다. 그만큼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반증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형 EMS 개발 이후 불과 3~4년 만에 차세대 EMS를 개발하였다는 홍보는 얼핏 보기에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상당히 의심스러운 행태들이다. 미국의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송전망의 붕괴가 대정전의 직접적 원인이고, 송전선을 감시·제어하는 EMS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처럼 전력계통 운용을 투명하고 확실하게 하지 못한다면, 대정전은 미국과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사회재난이 된다. 블랙아웃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한국의 전력계통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는 정교한 블랙스타트 매뉴얼이 없는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안보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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