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난민은 우리가 만든 전쟁과 테러의 희생자"

500톤 쓰레기 더미가 집? 카렌족 난민 이야기

"보라는 앞으로 한국 사람이 될 거라, 한국 이름을 지어준 게 너무 좋다. 한국에서 꿈도 꾸며 자랄 수 있어 더욱 좋다. 보라가 의사가 돼 난민캠프에서 난민들을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

보라의 엄마 쏘무퍼 씨는 딸에게 한국 이름이 생겨서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쏘무퍼 씨는 남편 싸에크리스 씨와 딸 보라와 함께 1년 전 태국-미얀마 접경 지역 난민캠프에서 유엔난민기구 '난민 재정착 시범사업'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난민 재정착 시범사업은 본국으로의 귀환이나 첫 번째 비호신청국에서 현지 통합이 어려운 난민 중 가장 취약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제3국이 받아들이는 제도다. 한국은 지난 3년간 난민 재정착 시범사업을 통해 카렌족 86명을 수용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카렌족은 300여 명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는 지난 2일 쏘무퍼 씨 가족과 같은 난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토크 콘서트 '난민, 우리의 이웃'을 열었다. 토크 콘서트에는 쏘무퍼 씨 가족 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장준희 씨가 참여했다. 그 외 나비드 후세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와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가 각각 환영사와 축사를 했으며, 가수 호란 씨가 공연했다.

▲ 난민 토크 콘서트 '난민, 우리의 이웃(Refugee are among us)'가 11월 2일 서울 을지로 롯데에비뉴엘에서 열렸다. ⓒ유엔난민기구

500톤 쓰레기 더미가 집? 카렌족 난민 이야기

카렌족은 미얀마 남부 카렌주 일대에서 사는 소수민족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대부분인 버마족 외에도 카렌족, 샨족, 카친 족 등 20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정부와 수수민족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렌족은 오랜 세월 미얀마 중앙정부의 핍박을 받아왔다. 군부 독재정권 시절 탄압은 더욱 심해져 카렌족은 터전을 빼앗긴 채 광산 채취와 댐 건설 등 강제 노동에 동원됐다. 성폭행과 굶주림 또한 일상이 됐다. 이들 상당수는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가거나 난민이 돼 망명길에 올랐다.

보라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장준희 작가는 태국-미얀마 경계 지역 카렌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장 작가는 "카렌족 중에서도 정식 난민 등록을 받지 못한 이들은 하루 500톤의 쓰레기가 버려지는 메솟시 인근 쓰레기장에서 종이상자를 바닥에 깐 채 먹고 자고 있다"며 "촬영 6개월 동안 9명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중 5명은 3살도 안 된 아이들이었다"고 말했다.

"비가 오면 쓰레기 더미가 안으로 꺼지면서 발이 빠져 쓰레기가 무릎까지 올라온다. 그런데도 3~4살 아이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차마 말이 안 나온다."

▲ 카렌족 한 아이가 쓰레기 더미 위에 종이상자를 깔고 앉아 있다. ⓒ프레시안(이명선)

▲ 난민캠프에는 미얀마 정부군이 심어놓은 지뢰에 팔다리를 잃은 이들이 많다. ⓒ유엔난민기구

난민캠프에는 12만 명의 카렌족이 있지만, 20년 이상 취업권도 이동권도 없이 살고 있다.

보라의 아빠 싸에크리스 씨는 "캠프에서는 일을 할 수도 딸과 함께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엄마 쏘무퍼 씨 역시 "(캠프에서는) 취직을 할 수 없어 돈을 못 벌었다"며 "수입이 전혀 없어서 가족 부양이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토로했다.

"남편이 매일 일을 할 수 있고 딸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용실을 차리고 언젠가 태국에 남아있는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싸에크리스 씨와 쏘무퍼 씨는 첫 수입으로 태국에 위치한 멜라 난민캠프에 있는 보라의 할머니에게 핸드폰을 선물했다. 이국땅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기 위해, 또 그리운 가족의 얼굴을 보기 위해. 싸에크리스 씨의 부모님과 쏘무퍼 씨의 남동생은 아직 캠프에 머물고 있다.

"보라가 핸드폰으로 할머니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같이 살자'고 말한다."

싸에크리스 씨와 쏘무퍼 씨는 거듭 "한국에 정착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처럼 유엔난민기구와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보다 많은 난민에게 재정착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무엇보다 미얀마 중앙정부의 박해로 난민이 됐지만, 카렌족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다며 "'버마족'이 아닌 '카렌족'으로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 보라네는 2016년 11월 유엔난민기구 '난민 재정착 시범사업'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아빠 싸에크리스와 엄마 쏘무퍼 씨, 그리고 보라가 입은 옷은 카렌족 전통 의상이다. ⓒ유엔난민기구

▲ 사진작가 장준희 씨가 지난 여름 보라네 인사동 나들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프레시안(이명선)

정우성 "난민은 우리가 만든 전쟁과 테러의 희생자"

이날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나비드 후세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는 "난민은 강제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자 "가장 척박한 상황에서도 결코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의 사람들"이라며 난민은 친구이고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카렌족 보라네 이야기를 "친구, 가족, 동료, 그리고 이웃과 나누어 달라"고 덧붙였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는 "난민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전쟁과 고통, 테러와 박해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에 재정착한 카렌족 보라네를 통해 난민에 대해 생각하는, 난민 발생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나비드 후세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와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유엔난민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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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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