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슈웅 쾅, 어떤 말보다 가슴 아팠다"

[인터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4번째 난민캠프 방문…"난민은 우리의 문제"

"하산과 주리에 같은 사람들의 의지는 놀랍다. 이들을 만난 후 난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신이라면, 또 우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다큐멘터리 <경계에서> 정우성 내레이션 중)

정우성의 물음은 묵직했다. 정우성 자신도, 또 우리도 하산과 주리에 같은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자성이자 각성이다.

배우 정우성은 지난 24일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자격으로 관객과 취재진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경계에서>(폴 우 감독, 2017)는 지난해 정우성이 레바논 베카밸리의 비공식 거주지에서 만난 시리아 출신 난민 하산 가족의 이야기다. 그는 이 다큐에서 직접 내레이션을 담당했다.(☞관련 기사 : 정우성 "난민, 그들과 우리는 같은 사람입니다")

정우성은 매년 난민캠프를 방문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2014년 네팔, 2015년 남수단, 2016년 레바논, 그리고 올해 6월 초 이라크 북부 아르빌 외곽의 쿠슈타파 난민캠프를 다녀왔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인 아르빌은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주요 지역이자 이라크 국내 실향민과 시리아 출신의 난민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아르빌에서 차로 45분쯤 달려가면 하산샴이라는 난민캠프가 있는데, (IS의 거점인) 모술과 가깝고 해서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을 옆이 하산샴 난민캠프였는데, 마을 사람들도 실향민으로 난민캠프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었다. (난민캠프와 마을이) 굉장히 가까운데, (이들이) 못 가는 이유가 전투 당시 심어놓은 지뢰가 아직 제거되지 않아서다."

정우성이 하산샴에서 본 마을 사람들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 즉 난민이다. 이들은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 없이 발생한 예상치 못한 일"로 난민이 됐다.

▲ 배우 정우성은 4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난민과 공감하고 교감하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4년째. 하지만 그는 난민들과 교감하는 일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1년 중 난민캠프를 방문하는 기간은 짧지만, 동화(同化)된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산샴에서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가진 10살 여자아이 후다를 만났는데, IS 폭격으로 얼굴 한쪽에 화상을 입었다. 그런 후다를 보고 있었는데, 누가 툭툭 쳐서 쳐다보니 또래인 다른 여자아이였다. 말도 안 통하는데, 이 아이가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손짓을 하며) '슈웅~ 쾅!'. 딱 이러는 거다, 저한테. 어우. 그 단순한 설명이 어떤 말보다 가슴이 아팠다. 그 자리에서 개인적인 감정이 폭발하면 안 되니까, 어쩔 줄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후다를 안아줬다."


정우성은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한 듯 숨을 고르다 "후다와 사진을 찍기도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후다의 사진 한 장이면 난민의 실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지만, '이 아이의 얼굴을 세상에 이용해야 할까?' 하는 괴로움이 있었다고. 그는 후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양 공감하고 교감했다.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 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 그리고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게 또 사람이니까 그런 공감과 교감에 대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기에는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또 정치인이 못한 것을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으로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 '난민'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산 가족, 한국전쟁 피난민이자 일제시대 조선인


정우성이 난민캠프에서 만난 하산 가족이나 후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지 고향을 떠나 난민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내전으로 난민 생활을 경험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전쟁이 터졌고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평범한 삶을 잃고 피난을 갔다".

6.25 한국전쟁으로 6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유엔난민기구는 국경을 넘지는 않았지만 거주지를 탈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국내 실향민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또한 난민으로 분류한다.

"한국전쟁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종전(終戰)된 것이 아닌 휴전(休戰) 상태로, 남북이 분단됐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긴장감이 없다. 과거 역사와 단절된 것인데, 이런 상황이 난민 문제를 교감하는 데 문제로 작용한다.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국가 내전과 난민 문제가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전쟁의 상흔은 돌고 돌아 결국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유엔난민기구

그는 이어 67년 전 피난민이 된 사람들이나 난민캠프 난민들이나 바람은 똑같다고 전했다. 고향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 그는 "우리나라에 사는 난민들도 마찬가지"라며 "이들은 평생을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난민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막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구분이 없다. 이주민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사회적·제적 환경을 선택해 다른 나라로 온 사람으로, 자신이 선택한 나라의 영구적인 거주를 원한다. 하지만 난민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난민 대다수는 비호국에 머물거나 비호국에서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인 보호를 원하는 것이다."

난민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한 정우성의 설득은 계속됐다.

"'난민들은 여기서 먹고사는 게 좀 편하겠지? 그러니까 안 떠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입장을 바꿔보자. 누구나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게 가장 마음 편하지 않나. 우리가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 어려우니까 다른 나라(비호국)에서 먹고살래'라고 할까? 일제시대 외국을 떠돌았던 조선인의 꿈은 하나였다.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가 내 나라를 잘살게 만들어야지.'"

난민은 우리의 문제다

과거 역사를 되새겨도 난민 문제를 나의 문제로,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정우성에게 묻고 또 묻는다. 왜 난민을 도와줘야 하나.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우리 문제다. 난민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 다큐멘터리 <경계에서>(폴 우 감독, 2017) 포스터.
"사람들이 '난민을 왜 도와야 해요?'라고 물을 때 이렇게 답하면 '아, 그래요?'라고 한다. '남수단은 토지가 비옥한 산유국이다. 전쟁이 끝나고 재건되면, 우리나라 대기업이 건설업에 진출할 것이다. 또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엄청나게 팔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너무 얄팍한 것 아닌가."

정우성은 얄팍한 이유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우리에게 다시 경종을 울렸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어떤 일에 대해)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 이분화해 평가하고 그에 부합되지 않으면 외면한다. 이런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다 보니, 난민 문제도 '우리가 난민을 도우면 뭐가 이득인데?'라는 질문이 무의식적으로 자꾸 떠오른다. 그러나 난민을 돕는데 이유는 필요 없다.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르면 난민을 돕는 것은 동정이 아닌 책무다. '당연히' 도와야 하는 '당연한' 일이다."

그는 난민 문제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감정적이지 않고 진솔하게 전달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생각의 파장을 일으킬까?'를 생각하느라 굉장히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난민 문제는 "좀 더 나은 정치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그리고 정치(권)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슈라고 말했다. "보통 난민은 정치적인 문제에 의해서 발생하니까 평화가 오기 위해서는 '바른 정치'(가 행해져야 하고), 전 세계 어디에나 '바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배우에게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라는 공적인 책무 어떤 의미일까. 정우성은 "바르게 살아야 해서 힘들다"라고 해 좌중을 웃게 했다. 이어 난민구호활동을 하면서 사회와 주변에 관심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스스로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일을 제안받았을 때 '국제기구에 좋은 일하는 모습을 한 번 보여줄까?'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라는 직업과 마찬가지로 '이 일을 오랫동안 했을 때 비로소 '내가 했다'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세로 응했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일회성'이라면 그 일을 진짜로 한 게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에도 후다를 만났을 때처럼 그는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수단 이다 지역의 한 난민캠프에서는 비행기 격납고를 식량 배급소로 쓰고 있었다. 배급시간이 되자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순간 '엄청난 일이구나. 엄청난 일이구나, 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실향민과 난민은 계속 늘어 가는데, 지원 물량이 그만큼 더 늘어나야 하는데, 세상의 관심은 자꾸 편협하게 돌아가고. 그럴 때 이제."

ⓒ유엔난민기구

정우성과 유엔난민기구 직원들의 바람을 무엇일까. 그는 사람들이 더는 '왜 난민을 도와야 해요?'라고 묻지 않는 것, 그리고 세상에 난민캠프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모두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난민들은 공통적으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언젠가 이 시련은 끝날 것이고,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서도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난민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이들도 변호사, 의사, 선생님, 기자 등을 꿈꾼다. 이런 직업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난민의 50% 이상은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세상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난다면, 성인이 됐을 때 분명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방식이 바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방치하면 세상의 또 다른 문제가 돼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난민은 우리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
하산과 주리에처럼 내전으로 인해 집을 떠난 시리아 난민의 수는 500만 명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로 6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경계에 선 채 평화를 기다릴 뿐이다. 이들의 아이들도 여전히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는 피어나는 꿈이 있다. 전쟁이 없는 미래에 대한 꿈."(다큐멘터리 <경계에서> 정우성 내레이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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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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