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서구 민주주의와 그 제도는 국제정치 영역에서 부단하게 논의되는 주제로서, 최근 중국의 적지 않은 매체와 학자는 서구 사회가 이를 '민주, 자유, 인권'의 미명 하에 중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를 강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국제정치 사상과 정치적 실천의 과정에서 서구가 독점한 민주의 개념은 이미 충분하게 남용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진영이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민주라는 수단으로 중국을 분열시키거나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서구는 자신의 제도와 모델에 기초한 '자유 민주, 인권' 등의 약을 처방하고, 중국이 순진하게 이를 따라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중국 티베트, 신장위구르, 타이완, 홍콩의 독립주의자들이 서구의 이러한 책동에 동조하고 있다며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편 근래 서구 민주국가 자신이 포퓰리즘과 대결 정치의 함정에 빠지면서, 민주주의가 그들에게 성공의 요인이자 동시에 실패의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서구 국가는 근래 수십 년간 민주주의 수출에 열을 올렸는데, 무분별한 도입에 변질과 실패가 이어지며 국제정치 생태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나아가 서구 내부에 극단세력과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보수주의와 배외주의가 팽배하며 권력 투쟁은 민주 정체의 마지노선을 넘나들었다. 결국 그들은 서구 정치가 소수에 인질로 붙잡혔고, 그 운영이 정치적 체증에 직면했다 진단한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학자는 현재 서구의 3대 권력은 재벌, 대중매체, 정권으로 정권은 앞의 두 권력의 제약과 보통선거 및 임기라는 두 근본적 한계로 인해서 재벌의 이익을 건드릴만한 그 어떠한 정치경제 정책도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서방 위기의 근원은 이미 세계화 시대에 진입한 상황에 그 체제가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라 설명한다. 역사의 종말을 고했던 후쿠야마 역시 최근 언론의 기고를 통해서 "민주적 국가 역시 실패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서구와 민주주의 체제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한편으로 서구의 혼란과 국제사회 본래의 복잡 다변한 현실에 직면하여, 중국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정치‧경제적 노선을 걷고 있기에, 그 역사적 의미와 국제적 영향과 의미에 대한 관심이 재차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냉전이 끝난 후에도 소련과 동구의 해체나 내부 갈등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고, 중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 경제 성장과 국가 부흥을 실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의 노선은 여전히 개혁, 성장, 안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세계 정치와 경제 발전에 강한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은 서구와 다르게 국가 경제 총량과 그 성장 속도, 기초건설, 공공건설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고, 종합 국력과 국민 소득도 크게 제고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국제 사회와 그 제반 문제에 대한 영향력과 발언권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
중국의 한 학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일련의 상황과 변화를 지켜보며 자연스레 양자 간의 차이를 발견했고 그 원인을 고민하게 되었으며, 상술한 서구식 민주와 그 제도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고민과 반성의 결과라 주장했다.
중국은 어렵게 찾아온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실제 지난 몇 년간 '중국의 가치'나 '중국의 방안(方案)'을 국제 사회에 널리 전하고, 국제 사회에 보편 가치로 확립시키려 노력해왔다.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은 2017년 2월 10일 '인류운명공동체구축' 문구가 포함된 결의가 유엔 사회개발위원회를 통과한 것을 그 성공 사례의 하나로 제시한다. 2014년 이래로 꾸준히 추진한 '일대일로' 구상은 그 구체적 실천의 사례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방식은 서구의 약탈적, 불평등 체제와 다르게 국제 사회에 호혜의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주장한다.
동시에 중국 언론과 학계에 서구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제도의 근본적 오류를 지적하고 그에 대해 맹목적 신뢰를 보냈던 과거를 자성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리고 주류는 아니나 중국식 현인정치나 엘리트주의 제도를 주장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게 등장하였다.
몇몇의 사례를 보자면 우선 캐나다 출신 한 학자는 과거에 자신은 선거 민주주의 제도 시행 국가만이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믿었지만, 중국에서 생활하고 연구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에서 지도자 자질, 정치적 발전 등의 문제를 논할 때 그 기준은 '현인정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이유로 첫째, 중국의 규모를 들었다. 민주적 이상은 중국과 같은 규모 국가에 비현실적이란 의미이다. 둘째, 역사적 배경을 들었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주류 가치관에 따라 정치 제도를 선택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은 지난 2000년 동안 현인정치를 시행한 주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중국은 지난 30여 년 현인정치 제도를 회복했다. 넷째, 대부분의 중국인이 현인정치 기준에 근거하여 그들의 지도자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방식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중국의 선택은 '현인정치'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중국학자는 원칙과 결과를 지향하는 자신의 엘리트주의(優主主義)를 제안하며 이는 절차 지향에 문제가 다분한 민주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높은 수준의 덕과 지혜를 갖춘 지도자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국가에 서로 다른 형식의 조직 구성과 운영이 가능하나 다만 몇 가지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지도자 조직의 문은 모두에 열려 있으나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고, 그 내부에 지속적 자기 계발 기제를 운영하며,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지도적 업무를 부여하고, 대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정리해 보자면 중국은 각국은 자신의 국정에 적합한 자신의 제도를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중국의 관련한 제안과 실천은 기존의 서구와 다른 보다 나은 국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협력적, 호혜적 성격의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가치와 방안이 결국은 국제 사회가 공유하는 보편 가치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대국 세력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역에서 역사의 대부분을 중국과 이웃하며 살아왔던 그리고 중국과 서로 다른 이념과 제도를 따르는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인식과 주장을 간단히 넘길 수만은 없다.
근래에 한국도 보기 드문 체제 위기를 겪었고, 내부 분열과 갈등 역시도 여전한 상황이다. 중국의 일부 학자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나 비효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한국을 그 사례로 들기도 하였다. 물론 그러한 지적은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고, 서술에 다소간의 논리적 오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한국의 가치나 현 체제 혹은 구현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내외 혼란이 극심한 전환기로 새로운 목표와 비전의 제시가 절실한 상황이다. 서구의 혼란과 중국의 대응을 보면서 한국도 자신만의 답안을 찾아내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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