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숲, 공원이 필요하다

[함께 사는 길] 2020년 공원일몰제 시행에 앞서…

찰스 몽고메리는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윤태경 옮김, 미디어윌 지음)라는 저서에서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늘 자연과 마주칠 수 있는 도시를 이야기한다. 들리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도시의 녹지, 혼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 자연이 도시의 일상이 되는 도시를 꿈꾼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사는 우리는 행복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갈 도시의 입지를 선정할 때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풍수 조건을 고려한 선조들의 혜안 덕분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된 산들은 도시공원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시가지 안의 구릉지는 근린공원, 외곽의 산들은 도시자연공원이 되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길을 걷다가 스치듯 만난 동네 야산의 숲이 근린공원이고 조금 멀리 보이는 산이 도시자연공원이다. 우리는 무심한 듯 존재하는 공원의 산자락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잡초를 보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기도 하고, 연한 파스텔 톤에서 짙은 녹색, 갈색으로 변해가는 산색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최근 걷기 열풍으로 둘레길이 잘 정비되면서 산은 우리 생활에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왔다. 숲에 들어서면 도시의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숨쉬기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우리는 느낀다. 아직은 이 도시에서 살만하다고.

▲ 남산 숲 길. ⓒ연합뉴스

도시숲은 도시환경을 치유한다

우리나라는 전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고 도시는 16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 도시에 인구의 90퍼센트가 모여살고 있다. 전국 곳곳에 산이 많지만 도시 안에 남아있는 산, 도시숲은 존재가치가 남다르다. 도시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신선한 산소를 배출한다. 북서울 꿈의 숲이 있는 오패산은 연간 약 2만3228톤CO2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는 약 7만3000명이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과 맞먹는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산곡풍)은 뜨거워진 도시를 식히고, 도시숲은 섬 모양으로 냉기가 모이는 '쿨 아일랜드(Cool Island)' 효과가 있어서 주변지역보다 온도가 1~5℃ 정도 낮고 숲 주변 50~80미터까지 시원하다. 도시숲의 나무들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수원을 함양하여 하천을 흐르게 하고, 빗물을 머금어 도시홍수를 더디게 해준다. 이 같은 도시숲의 가치는 일상적으로 체감할 수는 없지만 도시가 한여름의 폭염이나 홍수, 이상건조, 미세먼지 등 재난에 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깨닫게 된다. 도시숲의 존재감을….

구한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경치 좋은 자연을 찾아 거닐면서 즐기는 모습을 외국의 공원과 유사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G.W. 길모어는 <서울풍물지>(신복룡 옮김, 집문당 펴냄)에서 "조선 사람들은 지나치게 언덕을 좋아한다. 그 결과 남산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훌륭한 휴양지가 되었다. (…) 화창한 날에는 작은 무리들이 산을 넘어 거닐거나 나무 아래 누워서 남쪽의 강의 경치를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 서울에 이웃해 있는 모든 언덕에는 잘 닦인 길이 있고 늘 남자와 소년들이 무리지어서 산책하거나 바위에 쉬면서 즐겁고도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다만 공공이 관리하는 남산도시공원이란 이름으로 변했을 뿐이다.

내가 유년시절 소풍 가던 심학산은 교하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심학산공원이 되었고, 중학교 교가에 나오던 필운대 일대는 인왕산도시공원이 되었다. 학교를 찾아 간 적은 거의 없지만, 이 두 개 공원의 둘레길을 자주 걷곤 한다. 그런데 최근 심학산공원에는 '사유재산을 보상 없이 조성한 둘레길을 무담 침범하지 말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철조망이 쳐졌다. 공원으로 지정된 산의 사유지 소유주가 시민들이 이용하는 산책로를 막는 사건은 1997년 대모산공원에서도 발생했고 당시 신문들은 '공원 대란(大亂)'이 일어날 것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사유지를 포함한 이른바 미집행 공원의 공원결정 실효가 3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서나 심정적으로는 대모산이나 심학산 같은 도시 안의 산은 공원이 맞지만, 사유지를 포함하는 한 도시계획시설인 공원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공원에서 해제되기 때문이다.

도시 안에는 공원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주 5일제 근무가 일상화되어 여가시간이 증가하면서 도시 안에서 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 거리가 삶의 질을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다. 정치가들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생활권의 공원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곤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공약이었던 '10분 동네공원 만들기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이다.

미국의 단체(The Trust for Public Land)는 공원도시로 도시의 질을 평가하는데, 그 척도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는가이다. 최고의 공원도시로 선정된 미네아폴리스시는 84퍼센트의 사람들이, 2위인 뉴욕시는 96퍼센트의 주민들이 걸어서 10분 안에 공원에 갈 수 있다. 미네아폴리스의 마크 테이턴 주지사는 '공원은 우리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가치'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공원을, 삶의 질을 핵심가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치가, 행정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 서울 강남구 삼릉공원 전경.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안에서 공원으로 확보해야 하는 면적을 기준으로 공원 확보 수준을 정하고 있다. 도시 안에 거주하는 인구 1인당 6제곱미터이다. 그동안 우리 도시들은 미집행 상태인 산지형 공원을 모두 포함하여 1인당 평균 22제곱미터의 아주 양호한 지표를 발표해 왔다. 그러나 2020년 도시공원의 일몰 후 대규모 공원이 모두 해제되면 공원 수준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도시개발 역사와 상관이 깊다. 70, 80년대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주택 공급에 급급한 정부는 민간이 참여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하여 도시를 개발했다. 사업지 내에는 소규모 어린이공원이나 도로, 학교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근린공원 등 면적이 큰 공원은 개발 사업지에 포함되지 않고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만 하였다. 최근에 확보되는 공원은 대부분 개발사업 후 기부채납 되는 것들이다. 개발사업을 할 때는 사업 규모에 따라서 1인당 2제곱미터, 3제곱미터, 6제곱미터, 9제곱미터까지 확보해야 한다. 1인당 9제곱미터의 녹지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준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이다. 물론 9제곱미터 모두 공원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쾌적한 도시에 살기 위해 공원을 확보해야 하는 준거 틀로 삼아도 무방하다. 공원일몰 후 우리의 공원지표는 6제곱미터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우리의 도시가 얼마나 살기 힘든 도시가 될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도시숲은 도시공원이다

도시숲이 도시공원이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도시숲은 도시 안에 존재하는 숲을 총칭하지만 도시공원은 공공이 자연환경보전 및 여가휴식공간 제공을 위해 결정하고 관리하는 시설이다. 국가는 설악산이나 지리산같이 풍광이 뛰어난 자원을 국립공원으로 관리하고, 지방정부는 도시 안에서 보전하고 이용할 자연자원을 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도시 안의 주요 산과 구릉지가 도시공원으로 관리되어 왔다. 도시공원 안에는 이용자들의 편익과 휴양·유희·운동·교양·관리시설이 공원시설로 설치되고 근린공원의 경우 공원시설은 4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평지형 공원은 공원시설의 비율이 비교적 높지만, 산지형 공원은 산지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원시설을 최소화하고 80~90퍼센트 이상을 원래의 '임야, 숲'의 상태로 보전한다. 지방정부는 도시공원 중에서 공원시설을 설치할 부분은 토지를 매입하여 조성하지만, 숲으로 보전하는 임야는 공원경계 안에 포함시켰지만 사유지인 채로 그대로 두었다.

여기서 도시공원의 일몰 문제가 발생한다. 그동안 지방정부는 공원으로 지정했을 뿐 원래 임야의 형상 그대로 둘 뿐이므로 토지 소유자들에게 피해가 적다는 논리로 도시공원 안의 임야 등의 매입에 소극적이었다. 2000년 도시계획시설 일몰이 도입된 이후로 실효를 시키지 않기 위해서 도시공원 안의 사유지를 모두 집행하려면 수십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므로 지방정부들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복지 등의 재정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방정부가 재정으로 도시공원 일몰을 저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산지형 공원의 대부분은 해제되어 더 이상 도시공원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도시의 숲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도시숲은 공유재이다

조선시대에는 여민공리(與民共利) 정책에 따라 산림 공유제가 원칙이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 하여 개인이 산림을 소유할 수 없었다. 산림은 공공이 관리하는 자원으로 공동의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였다. 그것을 반증하듯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내사산으로 관리되던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에는 국유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산림 소유를 보면 산 기슭은 사유림, 산 중턱은 촌락 공동림, 산정상은 무주림, 즉 공유림이었다고 한다. 현재 관악산의 산림 소유를 보면 산 정상부는 국유림, 산 기슭과 중턱은 개인 또는 종중, 학교법인 등이 소유하고 있다. 종중 소유의 땅은 대부분 조선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재산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시가지가 개발되면서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하던 산은 서리풀공원, 방배공원으로 편입되었으며, 광평대군 후손이 소유하던 땅은 광평공원, 양녕대군 후손의 땅은 상도공원으로 편입되었다. 봉은사 소유지는 봉은사근린공원으로, 봉원사 소유지는 안산공원으로 편입되었다. 고려대학교는 개운산 공원, 연세대학교는 안산공원, 성균관대학교는 와룡공원, 삼육대학교는 배봉산공원 안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듯 도시숲의 소유자는 종중, 종교단체, 학교법인, 개인 등 다양한 주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학교는 학교대로, 종교단체는 단체대로, 재산에 대한 권리를 백분 행사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시 안에 존재하는 임상이 양호한 임야이고 기왕에 개발행위가 어려워 재산상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도시숲으로 같이 바라보고, 같이 이용하자고 권하고 싶다.

사실 숲의 임상이 양호하여 보전할 공익상 필요가 있을 경우, 공공은 숲의 형상을 유지하고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즉 도시공원이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토지의 용도지역을 보전녹지지역으로 결정한다든가 개발행위허가 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도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 23조에 보장된 재산권에 대해 '토지소유자가 이용가능한 모든 용도로 자유로이 최대한 사용할 권리나 가장 경제적 또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토지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을 가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토지재산권은 강한 사회성 내지는 공공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재산권에 비해 더 강한 제한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량 공원해제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는 공공에게는 적정한 정도의 계획적 관리를, 다양한 소유자에게는 도시숲의 사회적, 공유재적 가치를 고려하여 함께 쓰자고 권유하고 싶다.

▲ '2020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가칭)' 회원들은 지난 4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시공원일몰제'로 도시공원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선 후보들에게 대응 공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도시공원일몰제란 지방자치단체 등이 도시공원 계획을 지정 고시한 이후 20년 안에 공원을 조성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획이 취소돼 토지 소유주가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일몰 시한은 2020년 7월1일이다. ⓒ연합뉴스

우리 도시에는 숲, 도시공원이 꼭 필요하다


2011년 국토해양부의 조사에 의하면 도시민들이 도시계획시설 중 공공재정이 우선 투자되었으면 하는 시설은 공원(36.2%)으로 도로(5.3%)보다 훨씬 높다. 또한 도시민들의 지불의사금액을 토대로 도시공원의 경제적 가치를 조사한 결과 도시공원 평균 연간 사용가치로 약 27억 원, 보전가치 약 5억 원으로 약 32억 원으로 나타났다. 보라매공원을 예로 들면 주변 이용자를 약 30만 명으로 가정할 때 이용가치 약 52억 원, 보전가치 약 18억 원으로 연간 약 7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도시공원이 영구적인 시설임을 감안할 때 주변 주민들이 평생 향유할 수 있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원이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를 염원하고 있지만 공원일몰을 앞둔 우리의 현실은 암울하다. 국토교통부의 지침에 의하면, 도시공원에서 해제되는 임상이 양호한 임야는 가급적 보전녹지지역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용도지역은 '원칙적으로 토지소유자의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하지만, 보전녹지지역 내의 임야는 다른 용도로 변경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공원에서 해제되더라도 토지소유자들이 얻는 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고 매년 토지보유세만 100퍼센트 부담하게 될 것이다. 공원이 아니므로 토지소유자의 허락 또는 양해 없이는 지금까지 이용하던 산책로 등도 이용이 불가능하게 된다. 토지소유자나 공원이용자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다. 도시 숲, 공원은 환경적, 자연경관적, 여가휴양적, 상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숲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매일 숲의 효용을 향유수익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원이용자나 토지소유자, 공공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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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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