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서 배제된 당사자는 울고 있다

밀양 '할배·할매'들, '신고리 이슈' 진짜 당사자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한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이 숙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계도 있고,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공론화위를 구성하고 느슨한 형태의 합의를 도출해 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중대한 실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은 분명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탈핵의 시계를 그만큼 늦추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극우 정당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두고 '탈핵에 제동이 걸렸다'고 호도하는 데에는 더욱 동의할 수 없다. 공론화위 결정의 핵심은 '탈핵' 추진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확인한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론화에서 배제된 사람들,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따른 당사자,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다. 이들은 숙의의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23일 밀양 주민들은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이름으로 공식 입장문을 내 이번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밀양 주민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음을 규탄하고, 밀양 주민 대책을 정부가 마련할 것을 호소했다.

'밀양 할배·할매'들의 투쟁을 아는 이가 있고,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 문제를 아는 이도 있지만, 둘이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라는 점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애초 밀양 송전탑은 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나르기 위해 세워졌다. 밀양 주민의 반대 투쟁이 신고리 1호기 때인 2008년경부터 시작된 이유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할매'의 필사적 반항. ⓒ프레시안(최형락)

현재 밀양 송전선로로 신고리 원전 1, 2, 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가 흐르고 있다. 지금 추진되는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은 애초 신고리 5, 6호기 가동을 전제로 시작됐다.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 여부에 가장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밀양 주민인 이유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그러나, 이번 공론화위원회 숙의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철저히 배제돼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결정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는 지난 12년간 신고리 원전을 반대하며 싸워온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의 당사자 논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공론장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보상과 이주 약속 등으로 사실상 한수원의 볼모가 된 서생면 지역 주민과 현장에 고용된 노동자 일자리 문제의 당사자성은 그토록 인정하면서, 초고압송전선로로 인해 12년간 싸웠고 생존권을 빼앗긴 밀양 주민을 위시한 송전선로 주민의 당사자성은 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두 분의 주민이 목숨을 끊었고, 383명의 주민이 입건되면서 12년째 끝나지 않은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이 신고리 원전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따라 밀양 투쟁 향방이 달라진다는 점은 공론장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사실이었느냐"고 지적했다.

밀양 주민들은 당사자 배제 문제가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신고리 원전 인지도에서 뚜렷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시민참여단 합숙토론 1개월 전인 지난 9월 16일 실시된 2차 조사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위치를 아는 이는 30%에 불과했다. 이후 인지도는 최대 70%까지 올랐으나, 시민참여단이 최종 결정을 한 4차 조사까지도 30%의 시민참여단은 신고리 원전의 위치를 몰랐다.

이에 관해 밀양 주민들은 "시민참여단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가 아니"라며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지역과 당사자 고려가 사실상 없었음을 반증하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에 관해 상동면 여수마을의 김영자 씨(61)는 "공론화위 발표를 보고 여기서 살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보고 (전기가 흐르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부북면 평밭마을의 한옥순 씨(70)는 "대책위와 주민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돈과 권력을 못 이겼다"며 "이제 주저앉으려 해도 앉을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밀양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지난 12년간 싸워온 결과 마지막 765kV(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로와 마지막 핵발전소 전기를 마지막까지 받아들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정사실'을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어쩔거냐'는 배째라식 한수원의 막무가내가 승리한 것"이라고 이번 결과를 평했다.

밀양 주민들은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우리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모든 신규·노후 핵발전소의 백지화와 폐쇄를 위해 전국의 탈핵 시민과 연대해 다시 싸워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밀양을 지나가는 새 765kV 송전탑은 전력 손실을 기존 345kV의 20%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효율성 논리로 건설됐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전자파를 발산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송전선로 인근 지역 시민이 이 전자파에 상시 노출될 경우 백혈병 등 질환 발병률이 정상보다 크게 올라간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현재 한전과 합의를 거부한 150여 지역 가구가 신고리 원전 5·6호기 백지화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공론화위원회 발표까지 3개월 간 전국 22곳을 돌며 시민을 상대로 신고리 원전 백지화를 호소했고,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원정대를 꾸려 4박 5일간 서울에서 108배를 하며 밀양 지역민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16일 상경한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이 다른 시민 단체와 연대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반대하는 입장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밝혔다. ⓒ밀양송전탑반대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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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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