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살 먹은 ILO, 100살이 된 러시아 혁명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20세기 이어 21세기에도 노조 할 권리 외치다 ①

지난달(9월) 초, ILO 사무총장 가이 라이더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을 계기로 ILO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ILO 협약 비준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되었다. <인사이드 경제>는 여기에 몇 가지 얘기를 보태볼 생각이다.

이미 많은 글과 인터뷰가 언론을 오르내렸기에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 즉 △ILO의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시작으로 △한국과 ILO의 관계, △ILO 협약의 핵심인 노조 할 권리의 내용,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싼 제세력의 태도를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ILO 탄생의 배경 : 전쟁과 혁명의 시대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 국제노동기구)는 1919년에 국제연맹(UN의 전신)의 노동전문기구로 설립되었다. 올해로 98살이 된 ILO는 내후년(2019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낳았다. 전쟁을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설립이 절실했다. 그런데 ILO 설립은 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나 WHO(세계보건기구) 등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기구보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앞선다.

이들 기구보다 훨씬 앞서 노동 의제를 다루는 국제기구가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국제노동운동의 성장, 그리고 1917년에 벌어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 1917년 러시아 혁명. ⓒ연합뉴스

18세기 산업혁명에 힘입어 자본주의 체제는 발전하고 있었지만, 노동자의 권리는 내팽개쳐졌다.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 조직이 결성되었고,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단결금지법’ 등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지만, 각 나라에서 시작된 노동운동은 이내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864년에 맑스와 엥겔스가 중심이 되어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가 결성되었으나, 1871년 파리 꼬뮌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과 패배 이후 1876년에 소멸되고 만다. 1889년, 이번에는 각국 사회주의 정당을 중심으로 제2인터내셔널이 결성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대립하며 다시 붕괴되고 말았다.

국제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일각에서 국제적인 노동기준과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자본가들과 각국 정부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자본가들의 탐욕은 끝내 인류를 절멸의 위기로 내몬 제국주의 전쟁을 잉태했다. 노동자들은 전쟁에 동원되고 빈곤에 시달리며 인간성마저 부정당하게 된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 1917년 10월,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고 세계 최초로 노동자 권력이 수립된다. 이에 고무받아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혁명운동이 성장한다. 1918~1919년에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혁명 시도가 이어졌고, 볼셰비키 중심으로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결성되어 국제적 운동을 지원했다.

탐욕스런 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던 자본가들과 각국 정부는 러시아 혁명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러시아 혁명은 유럽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민족주의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조선에서 벌어진 3·1 운동도 러시아 혁명과 무관하지 않으며, 식민지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너도나도 러시아의 경험을 배우려 했다.

혁명의 압력에 직면한 정부와 자본가들은 다급해졌다. 러시아 혁명과 인터내셔널에 맞설 대응체계가 필요했다. 그들은 국제노동기준과 입법을 주장한 전문가 및 노동조합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1차 세계대전 종결 후 베르사이유 평화회의에서 체결된 파리평화조약에 따라 탄생된 기구가 바로 국제노동기구, 즉 ILO였다.

ILO의 성격 : 국제 노사정 기구(협의체)

ILO의 한글 번역은 '국제노동기구'이지만, 이걸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단체의 기구로 혼동해선 안 된다. 2017년 현재 187개의 회원국이 가입되어 있는데, 각 나라는 매년 한 번씩 열리는 ILO 총회에서 4개의 표를 갖는다. 정부가 2표, 사용자단체가 1표, 노동자단체가 1표. 한국의 경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번갈아 대표권을 행사하며, 사용자단체 대표로 경총이 참여한다.

아니, 국제'노동'기구에 정부 참여는 그렇다 쳐도 왜 사용자단체가 참여하는 것일까? 우선 앞서 설명한 것처럼 ILO가 러시아 혁명과 인터내셔널에 대응하는 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인 자본가들의 지분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ILO는 노-사-정 3자 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노동기준에 대한 자본가들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하나 있다. 노동운동이 발전해 기본권 보장 수준이 높은 국가의 경우, 자본가들이 지불하는 노동 관련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 무역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문에 자본가들은 국제무역과 경쟁에서 노동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룰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한국 정부는 ILO에 가입할 때와 OECD에 가입할 때, 그리고 한·미 FTA와 한·EU FTA를 체결할 때마다 ILO 협약 비준을 비롯한 국제노동기준 이행을 약속해야 했다. 이들 기구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 기구에 속한 나라의 자본가들이, 자신들이 지키는 기준을 한국에도 부과해야만 이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ILO 총회에는 회원국의 정부 대표와 노·사 단체 대표가 나란히 참석한다. 즉, ILO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국제 노사정 기구(협의체)라고 할 수 있다. 바꿔서 말하자면 ILO라는 기구는 여기에 참여하는 세력(노동자단체, 사용자단체, 정부)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ILO를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와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한국의 노사정위는 노동조합을 들러리 세운 채 정부·자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거수기일 뿐이다. (한국의 노사정위 문제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진출이라는 정세에서 탄생한 ILO는 부족하나마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야 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러시아 혁명이 당시 전세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 1917년 러시아 혁명. ⓒ연합뉴스

러시아 혁명과 ILO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을 성공한지 나흘 만에 소비에트 정부는 ‘8시간 노동제’를 선포한다.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었고, 이혼·낙태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보장되었다.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모든 피착취인민에게 언론·결사·집회의 자유가 선언되었다. 곳곳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1~2개월 만에 전국적 노조로 성장해갔다.

영국·프랑스 등 당시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조차 8시간 노동제, 여성참정권, 이혼·낙태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하지 않고 있었다. 농업후진국이라 여겨왔던 러시아에서 짧은 시간에 이룩한 혁명의 성과에 전세계 노동자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반대로 각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혁명의 압력 앞에 놓이게 된다.

러시아 혁명 꼭 2년만인 1919년 10월, ILO 제1차 총회에서 각국 노사정 대표들은 역사적인 제1호 협약을 의결했다. "공업부문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 48시간으로 제한하는 협약" - ILO 제1호 협약이 '8시간 노동제'였다는 사실은, 당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1차 총회에서 8시간 노동제 협약을 포함해 6개 협약 의결을 시작으로, ILO는 매년 열리는 총회에서 지난 98년 동안 총 189개의 협약을 의결했고 204개의 권고를 채택했다. 이들 협약과 권고가 바로 ILO가 제시하는 국제노동기준, 즉 글로벌 스탠다드의 뼈대를 이룬다.

194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26차 총회는 'ILO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필라델피아 선언'이다. 나중에 이 선언은 ILO 헌장에 삽입되었으며, 필라델피아 선언에 나온 주요 정신은 다음의 문구들에 잘 표현되어 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에 필수적이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험하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협약 비준의 시점은 ILO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ILO의 탄생이 올해로 이미 100주년이 된 러시아 혁명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잊어선 안 된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과 ILO의 관계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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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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