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폐지는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조직법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인데 이 위원회 소속 의원 대다수는 식약처 폐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식약처 폐지는 소비자단체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반대, 그리고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까닭도 있다.
식약처 폐지 법안 발의는 일반 국민한테는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아니 대다수 국민은 식품안전을 더욱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농축산 식품 진흥을 주 업무로 하는 농림축산식품부에 식품안전 업무를 맡기자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식약처 폐지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황 의원의 법안 발의는 식품안전의 컨트롤타워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심각하게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식품안전 업무 컨트롤타워 일원화, 즉 식품안전 조직 일원화 문제는 농수축산과 식품 분야에서는 수십 년 묵은 논란거리였다. 현재 식품산업 진흥 업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식품안전의 업무는 식약처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식품안전 업무 가운데 절반만 식약처가 맡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나눠 가지고 있다.
식약처 폐지는 시대의 흐름 거스르고 우리 현실과 맞지 않아
식약처 폐지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의 식품안전 조직 행태와도 맞지 않다. 선진국들이 지키는 불문율 같은 원칙이 있다. 농축수산물을 수출 위주로 하는 농축수산업 국가에서는 이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이를 관장하는 부처가 식품안전 업무까지 보는 반면 농축산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별도의 식품안전 관리 조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식약처 폐지는 이런 원칙에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먹거리의 대부분, 즉 80%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식품안전을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을 두어야 한다. 식약처 폐지가 아니라 외려 식약처가 제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식품안전 컨트롤타워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나 식약처장도 아닌 국무총리가 맡고 있다. 식품안전기본법에는 식품안전정책을 종합·조정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으로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식품안전 기본계획과 함께 식품안전 관련 주요 정책, 식품안전법령과 식품 등의 안전에 관한 기준·규격의 제정·개정, 식품 등에 대한 위해성평가, 중대한 식품 등의 안전사고에 대한 종합 대응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총리가 위원장인 유명무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개선해야
총리가 위원장이고 기획재정부 장관·교육부 장관·법무부 장관·농림축산식품부 장관·보건복지부 장관·환경부 장관·해양수산부 장관·식품의약품안전처장 및 국무조정실장이 당연직으로 들어간다. 나머지 민간위원 10명 등 20명 이내로 위원회를 꾸리도록 했다. 얼핏 생각하면 식약처장이 이 위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모두가 장관급 이상인데 식약처장만 차관급이어서 말발이 먹힐 리가 없다.
이렇다 보니 이 위원회는 지금까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 때도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식품안전 업무가 이원화(식약처와 농림축산식품부) 내지는 삼원화(+해양수산부)·사원화(+행정안전부) 된 상태에서 식품안전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야 할 식품안전정책위원회마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구조이다 보니 살충제 달걀 파동과 같은 사태가 터지면 우왕좌왕하고 국민의 불안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우리 식품안전의 현주소, 즉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근본 이유를 톺아보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 답은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 문제 풀이를 해 정답을 제시해야 할 문재인 정부를 위해 나름대로 고심해 마련한 몇 가지 팁을 준다.
첫째, 식품안전 업무는 우리의 현실과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식약처로 실질적인 일원화를 꾀해야 한다. 식약처는 위해성 평가와 식품 안전 전문 인력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조직이지 않은가.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에 위탁하고 있는 식품안전 업무를 살충제 달걀 파동을 계기로 위탁을 해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안전은 진흥이 아니라 안전을 자나 깨나 생각하는 조직에서 맡는 것이 정답이다.
식약처 컨트롤타워 기능 부여와 함께 수입식품 단속 권한 강화 필요
둘째, 수입식품 안전을 식약처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현재 수입 원산지 표시 위반 단속은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맡고 있다. 식약처는 알아도 단속 권한이 없다. 특별사법경찰권을 식약처가 가지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 국내 식품에 한해서다. 나머지 80%는 권한 밖이다. 하루 빨리 수입식품에 대한 안전 업무도 식약처가 도맡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식품안전기본법상 식품안전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도록 돼있는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식약처가 사실상 주관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식약처장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위원장(국무총리)을 직무 대리할 부위원장으로 식약처장을 법으로 규정해 그에게 장관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식품안전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바람직하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우리 사회로 하여금 식품안전 조직의 재정비와 업무의 효율화를 이룰 것을 지상명령으로 내리고 있다. 또 식품안전과 관련해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하도록 경고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 의원을 비롯해 몇몇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은 이 참에 식약처를 없애려는 행동에 들어갔지만 이는 외려 역설적으로 식약처의 기능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안전은 모든 국민의 건강과 바로 직결된 사안이다. 소비자단체나 환경보건단체, 그리고 일부 전문가단체들도 최근 뭇매를 맞고 있는 식약처장과 식약처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신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원칙의 관점에서 식품안전 업무 일원화와 업무 효율성 문제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에 걸맞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때만이 국민 건강과 안전이 향상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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