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돌봄 사회복지사에게 노예 생활이라뇨?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아동그룹홈을 없애든지, 차별을 없애든지

지난 9월 4일에 농성장을 시작했으니 어느새 보름이 넘었다. 아동 보호 체계 간 차별 철폐를 위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름. 무기한 농성이라고 했으니 하루 만에 끝날 수도 있다고 농담을 하였지만, 결코 쉽게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보름이 지나니 은근히 긴장감과 불안감도 슬몃 똬리를 틀고 있나 보다. 아침 시위 때 높은 정부종합청사를 올려 보는데 참으로 맑고 푸른 하늘이 눈을 시리게 꽉 채웠다. 옅고 흰 밝은 구름들이 인사하듯 가볍게 지나고 있었다. 좀 섧다.

나는 왜 여기 들어왔고, 언제 여기서 나가게 될까? 서울시에서 천막 철거 계고장을 보냈으니, 강제로라도 나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쉽게 나갈 일도, 쉽게 나갈 수도 없다. 이왕 시작된 거 뭐라도 끝을 보아야 한다.

오후에 방문한 아내에게 지하 꽃집에서 국화 화분 하나를 사다달라고 했다. 아직은 모두 피지 않고 봉우리만 문 작은 화분이다. 몇 송이가 필 때 내가 여기를 나갈까 보자고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대단한 결기라도 보이는 거 같아 쑥스럽다.

▲ 연대 방문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회원들과 앉은 안정선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회장(맨 좌측).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실 내가 여기 앉은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18년도 예산안 때문이다. 사상최대의 복지 예산이라는 잔치에서 우리 그룹홈(아동 공동 생활 가정)의 예산이 동결되었다. 얼핏 동결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을 터이니 지금부터 그 사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표식 없어야 낙인 없어

그룹홈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그롭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정이 해체되어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없게 된 아동들을 가정형으로 돌보는 아동 복지 시설이다. 예전에 고아원이라고 불리던 대규모 시설을 지금은 아동 양육 시설이라고 하고, 가정형으로 소규모로 보호하는 아동 체계를 그룹홈(아동 공동 생활 가정)이라 부른다.

그룹홈은 가정집에 아동 7명 이내를 사회복지사들이 돌보는 곳이다. 간판을 걸거나 복지시설 티를 내어서는 안 된다. 이는 아동들에게 시설에 산다는 낙인 효과를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마을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양육한다는 개념의 아동 보호 체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룹홈은 1970년대 말부터 아이들을 고아원에서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자기 가정에서 데리고 살거나 혹은 가정집을 구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시작했다. 그런데 유엔에 가입하려던 정부에게 유엔이 가정형 아동양육을 권고하였고, 정부는 여러 단계를 거쳐 2004년부터 아동복지법을 개정하여 그룹홈(아동 공동 생활 가정)을 아동 복지 시설의 한 종류로 추가하였다. 그룹홈이 아동 양육 시설과 함께 아동 복지 시설로 법제화된 것이다. 그룹홈이 법제화하면서 그룹홈 설치는 신고 사항이 되었다. 건물의 크기만 다를 뿐, 종사자의 자격 조건 등 법적 요건은 모두 아동 양육 시설과 동일하게 적용받았다.

그룹홈에 대한 정부 지원 차별

그런데 시설 설치 후 지도·점검·평가·감사와 처벌 등은 모두 양육 시설과 동일하게 시설 기준으로 관리하면서도, 지원은 법적인 근거와 기준이 전혀 없이 자의적으로 시행되었다. 그저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1년마다 임의로 정하고 있다. 그렇게 14년간 계약서 한 장 없는 무기직 노예 계약이 진행돼왔다. 그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아동양육시설과 아동공동생활가정 비교

이러한 정부의 지원 차별은 유엔에 보고하는, 차별 없는 아동 권리 보호와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 위배된다. 겉으로는 아동을 가정형으로 보호한다지만, 그 안에 진행되는 차별적인 지원 내용은 감추어져 보고되고 있다.

또 하나의 주요한 문제는 종사자에 대한 심각한 처우 차별이다. 아동 양육 시설의 경우 종사자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처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사회복지사 인건비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그러나 그룹홈 종사자는 호봉제도, 직급제도 없을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1년마다 임의로 정해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나의 예를 보면 그룹홈은 생활 시설의 특성상 하루 24시간 365일 일하는 체제이다. 사비로 시설을 마련하고 유지·보수하며, 호봉도 직급도 관계없이 지난 달 갓 입사한 복지사와 같이 실질급여 155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종사자가 시설장과 같은 급여를 받는 게 좋은 직장일까? 종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30년을 일해도 결국 지금과 같은 처지일 거라고 생각하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여기에 있으려고 할까?

기획재정부는 이번 2018년도 예산안에서 그룹홈 관련 예산을 동결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가장 열악하고 힘든 우리 그룹홈의 예산만 동결한단 말인가? 사상 최대의 복지 예산 잔치에서 무슨 근거로 코딱지만한 우리 그룹홈만 예산을 동결하였는가. 만만한가? 아마도 그렇겠지. 14년간 노예가 감히 반란을 하려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면,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힘들게 일하는데 더 좋은 처우는 아니더라도, 같은 복지 시설이라면서 우리를 이렇게 함부로 취급하는 법적 근거와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문재인 대통령은 응답하라!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은 좋은 어른이다. 아무리 물질적인 지원과 콘텐츠가 화려해도 거기에 좋은 어른이 없으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 조금 부족한 환경이라도 거기에 좋은 어른이 함께 있다면 결핍이 도리어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을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아이들은 어른들을 희망하면서 살게 된다. 왜 아이들이 우리에게 와서 살고 있는가? 어른들이 곁을 지켜주지 못해서 우리에게 온 아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를 희망으로 여기고 사는 아이들 곁에서, 좋은 어른들을 다 쫒아버리는 이번 조치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여기 농성장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소심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을 두고 거리로 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죽을 힘으로 견뎌 왔다. 세상이 바뀌면서 다시 나타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가졌다. 우리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선거에 앞장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그 기쁨에 환호하였다. 그가 만드는 나라다운 나라에서 자랑스러운 시민으로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감은, 이제 허탈감을 넘어 심한 자괴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는 청와대가 그룹홈의 현실과 이번 예산안의 실태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이 이런 사실을 알고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우리가 그룹홈을 운영하면 저절로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호봉제나 직급제는커녕 가만히만 있어도 감옥에 갈 처지가 되었다, 정부가 정해주는 인건비는 내년도 최저 인건비로 계산하면 산술적으로 7만 원이 남는다. 그러나 초과 근무, 야간 근무, 주말 근무, 공휴일 근무를 적용하면 절대 적정 임금 지급이 불가능하다. 자기 집을 내놓고 죽도록 일해도 노동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 구조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하고 싶어도 감옥에 있어야 된다.

그래서 여기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만일 청와대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묵살한다면, 이는 우리에게 죽으라는 말로 들린다.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아이들을 가정적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라도 해야만 한다. 밟혀 꿈틀거리는 지렁이 같은 신세지만, 아이들과 함께 가정에서 살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엔에 대한민국 정부가 보낸 보고서가 허위임을 알리고, 개선 요청을 할 것이다. 또한 법적인 투쟁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제소와 소송. 필요하면 위헌 제청을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시설이 정부 지원을 거부하고, 신고증 반납과 자진 폐쇄신고를 할 것이다.

그룹홈을 다 없애고 다시 아이들을 고아원에서 키우려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응답하라! 차별을 없애든지 그룹홈을 없애든지.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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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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