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페미', 나 여기 있어요!

[페미니스트 정치포럼] ② 교회에서 페미니즘 하기

"우리, 평화의 씨를 뿌리자."
"씨를 뿌린다고? 그거 성교육이에요, 형?"
"와하하하!!"


일동 웃음.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나만 분위기에 섞이지 못한 채 넋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다. 이게 뭐지.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 없이 다음 주제로 이야기 꽃이 핀다. 괜찮은 걸까? 아니, 내가 괜찮지 않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빨리 뛴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두리번거리다 맞은 편에 앉은 여자 동료와 눈이 마주친다. 못마땅한 눈빛, 우리는 같은 걸 느꼈다.


"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까 나온 씨 뿌리기가 성교육이냐는 발언, 불쾌합니다. 우리 모임에서 이런 성적인 농담은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진행자도, 나도, 문제의 발언자도 모두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된다. 열 명 남짓의 신학교 출신 동료들은 그렇게 문제의 발언자가 아니라 까탈스런 여자인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길을 잃는다. 우리는 갈등을 잘 겪어내본 경험이 없다. 갈등이 드러난다는 건 우리가 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건 곧 은혜롭지 못하다는 뜻이니까. 은혜로워야 하는 우리 기독인들에게 페미니즘이란 갈등을 일으키는 시끄러운 여자들이 장착한 사특한 생각일 뿐일까?


식상하게도 그 날의 문제제기는 '뭐 그런 뜻이 아니었다'로 얼버무려지며 끝났다. 모임이 파한 후 문제의 발언자와 둘만 남은 자리에서 나는 '내가 한 성적인 농담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로즈마리 류터 교수님과 같이 큰 분이었다면 당신처럼 문제제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훨씬 기품 있고 우아하게 말했을 것이고 나는 수긍했을 것이다. 당신은 공부를 더 하고 와라.'는 말을 들었다.

이 경험을 듣고 분노와 함께 익숙한 씁쓸함을 나눌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에게 이런 반응은 오히려 익숙하거나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로즈마리 레드포드 류터(Rosemary Radford Ruether)는 로마가톨릭계 저명한 생태 여성 신학자다. 그러니까 문제의 발언자는 내게 저명한 학자 정도의 권위가 있어야 네 말을 들을 것이며(그는 너와 달랐을 것이라는 말이 은폐하는 진의가 바로 '권위'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은 나에게 들리지 않는다, 너는 내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명해야 했다고 말한 것이다(기품있고 우아하게). "공부를 더 하고 오라"는 말은 '힘도 권위도 없는 (여자인) 네가 심지어 사납게까지 나온다면 어떤 말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는 뜻이니까.


권위와 친절. 교회에서 권위는 애초에 남성의 것이고 여자에게는 순종과 친절한 헌신이 요구되었다. '돕는 배필'이라는 담론이 있다. 여자는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만든 존재로서, 어디까지나 남자를 기쁘게 하고 힘써 도울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따라 여성은 남편을 내조하고(섹슈얼한 의미도 포함된다) 아이를 잘 길러내는 역할을 맡는다. 얼마나 편리한가? 논리적인 논증을 거칠 필요도 없이 이 모든 질서를 신이 보증하고 있다. 최상의 권위, 말 그대로 신적 권위를 띠고. 기독교사회윤리학자 백소영 교수는 이 돕는 배필 담론을 "남편과 아내가 공과 사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성역할 분담이 삶의 전반적 조건이던 근현대 초기와 중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는 남성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여성의 말은 듣지 않은 채 여성에 '대해' 말한 것들이며 가부장제 5000년간 여성에게는 말할 기회도, 그들의 의미가 텍스트에 담길 힘도 가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는 여성의 노래가 아니다. "나는 당신의 갈비뼈이니- 평생 그대를 섬기며 그대와 우리 아이만을 위해 살겠네."하는 노래는 여성들이 지은 게 아니라 남성들이 신적 권위로 주입한 비가인 것이다. 하기사, 아내는 남편이 성관계를 청할 때 응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성매매를 하는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라는 발언이 기독교 대학 수업에서 울려퍼지는 시대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참 자매'라는 담론도 있다. 어디에도 실체가 없는 이 '참 자매 '담론은 교회 안의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가두게 하는 코르셋이다. 참 자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위 '여성스러운' 품성과 몸가짐을 갖추며 공동체 안에서 지혜롭고 부드러운 교회 여성 역할을 한다. 남자 성도('형제'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옷차림은 단정하게, 그러나 예쁠수록 좋다.신앙심 좋고 이해심 많은 교회 언니, 조신한 교회 누나, 예쁜 교회 여동생의 코르셋이 여성들을 자기 검열하게 하는 것이다. 참 자매가 아닌 여성은 신앙심이 부족하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죄책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추측하자면 그 문제의 발언자 입장에서는, 그간 아무 문제 될 것 없던 방식으로 '고추 권위'를 휘두르며 시시한 농담을 했을 뿐인데. 한낱 갈비뼈인 내가, 혹은 저명한 학자 쯤은 되어줘야 감히 말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내가, 참 자매스럽지 않게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본인을 망신 주며 말을 또박또박 했던 것이다. 얼마나 불쾌하고 모욕적이었을까. 자꾸만 꿈틀꿈틀 말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만나는 교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언제까지 우리에게 밥 맡겨놓을거야, 언제까지 여자는 일만 하고 남자들이 목사, 장로 다 해먹을거야, 언제까지 여자들 옷 단속 할거야, 음욕을 품는 네 눈을 빼버려!' 하고 또박또박 말하는 여성들을 대하는 기분이. 이제와서 말이지만 우리는 애초부터 주님 안에 '하나'가 아니었다, 그동안 불편해도 참고 있었을 뿐이지.


하지만 실은 우리는 아직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 고립되어 있다. SNS상에 '믿는페미'를 소개하며 "크리스찬 페미니즘 운동입니다"고 알리자 교회 안팎에서 고통 받던 페미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런 운동이 가능하다니!"에서 시작해 "그동안 혼자 말도 못하고 교회 떠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말 눈물난다 엉엉ㅠㅠ" 등 자기의 이야기를 성토하는 글이 한동안 멈추지 않고 올라왔다.

글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어!"였다. 교회에 다니며 숨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교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자, 분열을 조장하는 자는 마녀 사냥을 당하기 쉽다. 내 고통에 대해 얘기해도,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수양 문제로 환원한다. 교회에 잠입한 사이비로 몰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조언까지 들었지만, 나는 이 말을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흩어져 있다. 우리가 이루는 점들이 연결되어야 한다. 이어지기. 믿는페미가 하고자 하는 운동의 1차 목표다.


먼저 배지를 만들었다. 투박하지만 우리 로고를 담고 일부는 배포하고 일부는 판매했다. 가방에 달고 다니며, 또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내가 여기에 있으니 힘내자!'는 메세지를 알리기로 했다. 책모임도 열었다. 열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읽고 공부하고 토론하며 여성으로서 교회 생활하기 힘들었던 경험과 생각을 나눈다.

여성주의 예배로 드린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살아남아 다시 붙인다>는 첫 대중참여 사업이었다. 약 150명 가량의 믿는페미들이 참석했다. 6월 18일 일요일 저녁에는 영화 상영회를 한다. 여성에게 사제 서품이 금지된 데 저항하는 수녀님들의 분투기 <주님은 페미니스트- Radical Grace>를 본다. 트위터에서 공동체 상영을 다수 요청받은 영화다. 30명 한정인데, 소식을 올리고 얼마 안 되어 신청이 마감되었다. 믿는페미가 지금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은 팟캐스트다. 방송을 통해서,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믿는페미들과 만나고 싶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 이야기가 우리와 또다른 우리를 이어주는 재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 교회에 적어도 세 명의 믿는페미가 서로 만나고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믿는페미의 꿈은 그 때부터 또 시작일테니까 말이다.

덧. 그 때 서로 눈빛으로 교감했던 맞은 편에 앉은 여자 동료는, 지금 믿는페미 기획단 동지다.

(이 기고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주최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포럼'에서 논의될 주제와 관련된 글입니다. 자세한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페미니스트 정치포럼


일시 : 2017.6.16 (금) 오후 3-9시
장소 : 스페이스 노아 커넥트홀


<1부> 강의 : '촛불혁명, 대선, 그리고 페미니스트 민주주의'
강사 :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2부> '일상-정치-페미니즘 : 우리들의 이야기' 의제별 PT + 모둠 토론

-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모두의 울림이 되다 : 곽이경(여성 성소수자/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 여성주의정당 프로젝트 : 우지안(페미당당 활동가)
- 교회에서 페미니즘하기 : 오스칼네 고양이(믿는페미 활동가)
- '그 날'에서 월경까지 : 김민지(초록상상 활동가)
- 혐오의 연결고리, 여성 그리고 동물 : 최민연(비디오그래퍼, 전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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