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의 눈물, 심상정의 꿈

[기고]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힌 촛불처럼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도전을 포기한 이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북대 이정우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가 "심상정의 사퇴는 촛불"이라며 응원의 글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진보신당 내부의 반발을 이해하면서도 "진보가 사소한 생각의 차이를 극복해서, 명분의 차이를 넘어 대동단결해야지 선거에 이길 수 있고, 선거에 이겨야 자신의 대의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대승적 판단을 당부했다. <편집자>


심상정 후보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사퇴했다. 유시민 후보를 찍어줄 것과, 진보신당 지지를 호소하면서. 평생을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바쳐오면서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가진 심상정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가슴 뭉클해짐을 느꼈다.

"이명박 정부가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지르는 큰 죄악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흘릴 눈물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본인이 눈물을 머금고 사퇴한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진보신당의 반발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렵사리 출범한 진보신당에 그 동안 좋은 일은 드물고, 어려움은 많았다. 가시밭길, 덤불을 헤쳐 여기까지 왔는데 선거를 눈앞에 두고 사퇴하자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시민들 중에는 심상정의 용단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지만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반발이 큰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장수가 갑자기 말에서 내렸으니 병사들이 허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반응이리라.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심상정 후보의 결정은 옳다고 생각한다. 우선 당장은 진보신당으로서 힘이 빠지는 일이지만 멀리 보면 오히려 잘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오랜만에 진보 진영에서 분열이 아닌 통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특별히 우리 국민은 분열을 싫어하고, 통일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당은 기를 쓰고 통일을 싫어하고 아메바처럼 분열을 거듭한다. 그러나 가물에 콩나듯 야당이 통합을 성사시켰을 때 우리 국민은 표로써 전폭적 지지를 보여주었다.

정당의 통합이 아니더라도 후보 단일화만 해도 효과가 크다. 2002년 대선에서 한때 지지율이 바닥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이유가 무엇인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꺼져 가던 불씨가 살아났고, 지지율이 급반등해서 결국은 기적적인 승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후보 단일화의 위력은 가히 메가톤 급이라 할 수 있다. 시민의 마음속에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맞는 말인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맞는 말이다. 보수는 누구인가?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이다. 진보는 누구인가? 대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다. 보수는 이익을 목표로 하므로 쉽사리 대의, 명분을 무시한다. 그 대신 이익에 눈이 멀어 부패에 빠질 위험이 크다. 진보는 이익보다 대의를 중시하므로 명분에 죽고 사는 게 당연하다. 그 대신 조그만 생각의 차이에 갈라설 수 있는 것이 진보다.

공자, 맹자의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가? 대의다. 이익보다는 대의를 앞세울 것을 끊임없이 왕들에게 진언했지만 도무지 채택되지 않아서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공자의 말이다. '선비는 비록 궁해도 대의를 버리지 않고, 영달해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士窮不失義 達不離道). 맹자의 말이다. 이렇게 보면 공자, 맹자는 진보다.

보수파가 시장도 정치도 다 장악하고 있는 한국현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르므로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고, 막을 필요도 없다. 대의명분 때문에 갈라지는 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선거는 다르다. 선거에서는 진보가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러하다. 진보가 사소한 생각의 차이를 극복해서, 명분의 차이를 넘어 대동단결해야지 선거에 이길 수 있고, 선거에 이겨야 자신의 대의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선거에 지면 공자, 맹자처럼 바깥 세상을 떠돌아야 한다.

'조명시리'(朝名市利)라는 말이 있다. '조정에서는 명분을 다투고 시장에서는 이익을 다툰다'는 말이다. 정치에는 명분을 다투는 진보파가 적합하고, 이익을 다투는 시장에는 보수파가 적합하다는 말로 해석해도 좋겠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보수파가 시장도 정치도 몽땅 장악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갖고 있을 뿐아니라 지자체의 태반을 석권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는 한나라당 일색이다.

한나라당은 강력한 힘을 어디에 썼나? 지난 2년 반의 성과는 실망 그 자체다. 부자 감세, 4대강, 세종시 개악이 3대 역점 사업인데 하나같이 잘못이고, 국민이 안중에 없는 사업들이다. 정치가 이러니 국민의 눈에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아,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복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당연하다. 많이 늦었지만 드디어 올 게 온 것이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진보파 뿐이다. 국민의 눈물을 멈추게 하려면 진보파를 보다 많이 국회,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보내야 한다.

그러니 6월 2일 선거는 대단히 중요하다. 서민, 대중을 살릴 복지국가를 가져오려면, 진보의 가치를 정책으로 옮기려면 진보파가 의회와 정부에 대거 진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심상정이 눈물의 결단을 내린 것을 높이 평가한다. 심상정의 사퇴는 촛불이다.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힌다. 촛불은 미약해 보이지만 촛불이 모이면 나라를 바꿀 수 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봉하 마을의 박석 동산에 새겨진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일찍이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고 경제학을 대학교수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 국민 모두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행동할 수 있는 자는 국민밖에 없기 때문이다." 19세기말 미국의 위대한 토지사상가 헨리 조지의 말이다. 그는 뉴욕 시장선거에 출마해서 분투했지만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그의 사상, 정신, 치열한 생애는 영원한 귀감이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모두 투표장에 가자! 가서 헨리 조지의 참여정신을 실천하자! 심상정의 꿈, 복지국가를 앞당기자! 그리하여 우리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