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정책의 관철? 한국 복지는 최악의 조합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성장을 포괄하는 복지패러다임 필요

한국 복지국가의 현단계 : 복지국가 '초기단계'의 경제사회 환경

2013년 한국의 복지비 지출은 GDP의 10%를 넘어섰다. 복지국가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년대 중반 경 OECD 회원국의 복지비 지출 수준이 GDP의 10%이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오늘날 한국은 복지국가의 ‘초기’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복지국가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이 성숙한 복지국가로 나아가기까지 그 여정이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 선진국들은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성장, 젊은 인구구조, 완전고용 그리고 케인즈 주의라는 복지확충에 유리한 경제 패러다임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복지국가를 발전시켰다. 반면 오늘날 한국은 장기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완전 고용의 붕괴와 노동시장 이중화의 문제에 둘러 쌓여있다. 또한 복지정책 확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이에 부정적인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우세한 실정이다.

서구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있는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다. 1960년대에서부터 90년대까지 수출주도 성장 전략으로 상당한 성과를 보여 온 한국 경제는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락 국면을 맞이한다. 10%를 넘나들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15년에는 3%까지 떨어졌다(KOSIS, 2016). 미래의 성장률 전망 또한 비관적이다. 기획재정부(2015)의 ‘2060 장기재정전망(이하 2060 재정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는 2% 중반, 2010년대에는 1% 후반, 2040년대에는 1% 중반, 2050년대에는1% 초반까지 떨어진다.



이렇듯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되는 상황에서 고도성장기간에 분배의 역할을 해왔던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확실해 지고 있다. 1975년부터 2011년까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비중의 추이를 보면, 97년 이후 기업소득의 비중은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반면 가계소득의 비중은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난다(한국은행, 2015). 기업의 소득이 경제 전체에 환류 되지 않음으로 기업은 부유해지나 가계는 소득이 증대되지 않는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는 극심한 노동시장 양극화 – 수출/내수부분,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 가 진행되고 있어, 한국이 복지국가 초기단계에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시대의 복지정책에 대한 '주류'의 시각: 기재부의 '2060 장기재정전망'

이와 같은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복지정책에 대한 대응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중 가장 주의 깊게 볼 것은 2015년 12월에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2060 재정전망'이다. 2060 재정전망은 '주류'에 해당하는 공급중시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근거해있다. 2060 재정전망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최후의 보루로서 재정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에 상당한 함의를 갖고 있다. 2060 재정전망은 2015년 현재 국가부채의 수준이 GDP의 40.1%이나, 복지 정책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저출산·고령화로 복지비 지출이 자연적으로 증가해 2060년에는 국가부채가 62.4%에 달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2020년부터 신규복지제도(기초연금을 물가에 연동하지 않고,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소득의 증가와 연동하여 인상)를 도입할 시, 2060년 국가채무는 GDP의 88.8%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계하였다. 한편 재량지출의 10%를 감축할 경우에는 국가채무비율은 38.1%로 떨어져 재정 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진단하였다. 사회보험의 경우에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의 기금고갈을 막기 위하여 기여 부담을 올린다면 국민부담률이 현재 28.4%에서 2060년 39.8%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러한 수준에서의 보험료 부담은 어려울 것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2060 재정전망으로 대변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한국 사회 ‘주류’의 시각은 여전히 복지정책 및 복지지출을 경제적 성장의 걸림돌 내지는 이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기재부는 일반재정 부문에서의 복지지출 삭감을 위한 대응 전략으로 지자체 사회복지의 유사·중복사업 정비, 예산낭비 제거 등 지속적인 세출구조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준칙도입(pay-go) 등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회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하고, 급여수준 인상보다는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안정화를 유도하며, 민간보험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종합하면 공공복지의 급격한 확대를 억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의 정책이 관철되면? 한국 복지국가는 최악의 조합이 될 가능성!

'주류'의 시각에 따라 공공복지 확대를 억제하는 전략이 장기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적절한 대책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 공공복지의 확충을 억제하면 시장을 통한 복지공급이 강화된다. 이미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에서 공급되는 복지의 비중을 제외하고 논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의 복지공급이 강력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막대한 민간 보험 시장과 강력한 민간 서비스 공급자의 비중은 한국 복지국가의 ‘역사적 유산’으로 이미 작동하고 있고 공공복지의 확충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류'의 정책방향은 사보험 시장을 강화하고, 민간 서비스 공급자에게 공적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사회보험보다는 민간 보험사, 공공 공급자보다는 영리추구형 민간 서비스 공급자에 의존해 복지 수요를 충족(2010년 민간생명보험 보험료 수입액이 GDP 대비 7.4%, 5대 사회보험 보험료 수입액이 GDP 6.3%, 공공병원 병상수 11.0%, 국공립 보육시설 아동 수용율10.6%, 공공장기임태주택 비중 5.2%) 시켜온 한국 복지국가 발달의 '역사적 유산'과 궤를 함께한다. 반면에 '진보'의 복지방향은 사회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복지 서비스의 공공성 확대를 모색한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과 관련된 문제, 공공복지시설 확충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 부담과 재원 조달의 문제, 공공부문 비대화에 대한 저항감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공복지의 급격한 확대를 억제하려는 '주류'의 정책방향이 관철된다면 한국 복지국가는 기존의 '역사적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경우 한국의 복지국가는 사보험과 영리복지공급자의 영향력이 막강한 영미형 복지국가의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와 같은 극심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구조가 유지되면 한국의 복지체제는 노동시장의 지위에 따른 복지 수혜 양극화(정규직/비정규직의 복지 양극화)와 대규모 복지 사각지대의 잔존, 그리고 가족의 복지책임이 강하고 출산율이 낮은 남부유럽형 복지국가의 특성을 공유하게 된다. 즉, 주류의 정책방향이 관철되면 결국 시장의 과잉과 불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와 복지 양극화, 저출산, 낮은 (여성) 고용률을 특징으로 하는 남부유럽형 복지국가가 결합된 매우 비효율적 복지체제로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떤 방향과 대책이 필요한가?

한국 복지국가가 '자유주의 + 남부 유럽형 복지체제' 경로를 고착화될 가능성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가? 세 가지 방향이 중요하다.

1) 보편주의의 내실화

보편주의 원칙은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과 관련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개방경제로, 2014년 무역의존도가 77.83%에 달해 독일(69.84%), 스웨덴(56.38%) 보다도 높다(한국무역협회, 2016). 내수 보다는 수출과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산업 구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하며,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치러지는 경쟁에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대응기제가 없이는, 개별적인 경제 주체가 세계 경제를 상대로 경제 활동을 영위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국은 개방경제에서 얻게 되는 사회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방경제 하에서는 한 국가의 거시 경제가 세계 경제의 컨디션에 크게 좌우되는데, 보편주의적 복지제도는 거시경제의 ‘자동 안정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이와 같은 위험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 복지제도는 크게 두 지점에서 보편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는 넓은 사각지대 문제이며, 두 번째는 낮은 급여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안정적인 소득’ 유지 보다는 ‘빈곤 방지’의 기능에 머물러 있어 중산층에게 민간 보험에 의존하게 인센티브를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복지제도가 보편주의 원칙을 온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지점 모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포괄 범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충분한 급여수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도외시 한다면, 중산층은 자신들의 복지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민간 복지 공급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복지정책은 기초적인 소득보장을 통해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소득비례형 제도의 강화를 통해 급여수준의 불충분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개선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2) 공공복지 공급자의 강화

의료, 보육, 노인요양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의 사회복지공급자는 영리 추구형 복지공급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이집의 경우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이 전체 공급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노인요양과 보건의료는 더 심각한 수준에 놓여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학부모가 부담해야하는 추가 비용이 월 평균 8만원 정도이나 민간어린이집은 12.5만원으로 상당히 높다.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을 통해 소비자(학부모)에게 상당한 수준의 보육과 교육비를 지원해도 민간공급자가 다수를 차지할 경우 민간시설의 영리추구 행위로 인해 재정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가계부담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공공복지시설을 늘리면 의료, 교육, 요양, 보육에서 공공부문의 비용은 늘어나지만 가계의 사적부담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공공부문이 충실해지지 않으면 늘어나는 사적복지비용을 고스란히 가계가 부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총복지비용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으로 민간복지의 비중이 큰 현재의 구조를 바꾸어 공공복지공급자가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조개편이 필요하다.

3)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의료와 복지부문 일자리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성장해온 대표적인 일자리이다. 2015년 현재 이들 일자리의 개수는 174만개로 전체 고용량의 6.7%를 차지한다(보건복지부, 2015). 반면 EU 15개국의 의료·복지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2.3%를, 미국은 13.1%를, 일본은 12.1%를 차지한다(EUROSTAT, 2016). 한국의 의료·복지부문 일자리는 EU 15개국 평균과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일본에 비해서 약 절반 수준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의료복지부분 일자리는 앞으로도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로, 일자리의 질만 확보되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일자리 창출분야가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드는 방안 중의 하나로 '사회서비스공단'의 신설을 들 수 있다. 이는 광역지자체에 사회서비스공단을 신설하여 복지시설을 직영하는 방안으로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국공립복지시설의 확충은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자는 제안이다(김연명, 2016). 즉, 국민연금기금이 채권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고, 정부는 이 기금을 공공보건복지시설에 확충에 투자하는 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신규 자금을 공공복지시설 확충(매입 포함)에 투자하고 늘어난 공공시설을 민간위탁하지 않고 광역자치단체별로 가칭 '사회서비스공단'을 신설하여 직영하는 방안은 제안한다. 공단 직영시설에 채용된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을 공단직원으로 직렬 배치하고 이들은 공단직원으로 지역별 순환근무, 내부 승진을 통해 근속기간을 늘리고 고용 및 임금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성장을 포괄하는 복지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복지정책에 대한 ‘주류’적 시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방향 외에도 '주류' 프레임에 대한 '대항' 담론을 갖출 필요가 있다. 복지를 경제에 걸림돌로 보는 '주류'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에 대한 정교하고 강력한 담론이 구축되어야 한다. 최근 논의되는 '소득주도성장'이 이 시각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의 프레임은 공공의 복지가 확대되면 양질의 고용이 창출되고, 내수가 증진되며 출산율이 제고되어 분배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성장의 촉진되고 성장의 과실을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을 보다 설득력이 있는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떻게 복지비 지출과 복지정책이 경제성장을 포괄하는 정책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주류적인 시각은 인구고령화가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의 비용을 높이고, 사회보험의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한다. 이와 달리 대항적인 프레임은 공공 복지비 지출에 대한 선제적인 투입을 통한 민간 지출의 절감 효과 그리고 복지급여를 통해 유지되는 구매력과 내수 활성화의 측면을 강조할 수 있다. 동시에 대항담론은 공적 의료비 지출뿐만 아니라 민간 의료비 지출을 함께 조망하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민간 의료비 지출의 억제를 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적연금에 투여되는 비용에 대해서도 단순한 재정비용 지출이 아닌 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될 노인인구의 소비유지 기능에 주목하여 적극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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