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후변화협정 파기, 왜 지금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미친 짓" 맹비난…미국 각 주와 기업들, 협정 준수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의 각 주 정부와 기업들의 반발과 탈퇴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이번 조치가 당장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공정한 협정을 원한다. 파리 협정은 미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면서 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 나은 협정을 만든다면 재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협정은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표에 따라 미국은 협정 탈퇴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협정은 규약상 2019년 11월까지 탈퇴를 통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종 탈퇴를 하려면 약 2년 5개월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물론 당장 탈퇴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을 파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해당 협약을 체결했을 당시 상원 의회의 승인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를 파기하려면 동일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트럼프가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 탈퇴를 공언했지만 당장 확실한 탈퇴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불리한 협정을 지키지 않는 방향으로 실질적인 탈퇴 효과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부터 비구속조항의 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히며 이같은 방안으로 협정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 1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미국 내 커지는 반발…피츠버그 시 "파리 기후변화협정 지지"

트럼프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미국 내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각 주별로 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한편, 기업들에서도 협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미친 행동"을 했다면서 뉴욕 주, 워싱턴 주와 함께 협정 준수를 위한 공동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히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 미국 경제는 파리 협정을 준수하는 것을 통해 살아날 수 있다"면서 "캘리포니아는 이런 식의 미친 행동에 저항하고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던 피츠버그 시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피츠버그 시는 펜실베이니아 주에 속해 있는 도시로, 쇠락한 공업지대라고 불리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Lust Belt)에 포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공업지대가 쇠락한 원인을 자유무역협정과 기후변화협정 등으로 돌리고 있는데,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 선출된 것"이라면서 자신의 결정은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피츠버그 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빌 페두토 피츠버그 시장은 이날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국민과 경제, 그리고 미래를 위해 협정 지침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 대표적인 기업들도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지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에 자문을 해주고 있는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모터스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본인의 트위터에 "대통령 위원회를 떠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이미 현실이라면서 "협정 탈퇴는 미국과 세계, 어느 쪽에도 좋지 않은 결정"이라고 일갈했다.

또 프리 이멜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구글의 CEO인 순다르 피차이 등 주요 인사들도 하나같이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는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가 반(反) 환경적인 조치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의 리더십이 패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GE와 엑손모빌 등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정부에서 탈퇴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자발적으로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준수할 것이라면서, 이는 친환경 정책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의사에 따라 기업들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발표한 1일(현지 시각) 백악관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AP=연합뉴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재협상은 없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협정은 재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협정에서 제시된 목표를 (탄소 배출 감축) 이행할 수 있도록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악수로 지지 않는 모습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뜻을 분명히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프랑스 정부 당국자를 인용, 마크롱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재협상할 수 없다"며 "우리는 미국과 협력하겠지만 기후 분야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고 지구의 안전을 강화하려는 글로벌 노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결정은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도시와 주 정부들, 그리고 기업들에 협정을 준수해줄 것을 촉구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쿠테흐스 총장이 "미국의 각 도시와 주 정부, 기업체들이 비전과 리더십을 증명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다음 세대들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하는데 미국의 모든 부문이 동참하기를 고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트럼프, 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공약대로 협정 탈퇴를 감행했지만, 이번 조치가 미국 내에서 실제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당장 협정을 탈퇴할 수 없는 상황인 것과 동시에, 각 주들과 기업들이 트럼프의 탈퇴 선언과는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협정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체 왜 지금 기후변화협정 탈퇴 카드를 꺼냈을까?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평가받는 일들을 모두 뒤집으면서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이를 통해 '탄핵'까지 언급되고 있는 현재의 위기 국면을 무마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방식의 '오바마 지우기'를 통해 현재 위기 국면을 넘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다음주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서 공개 증언을 하기로 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더 극심한 곤경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미래를 거부한 극소수 국가에 합류했다"며 "파리 협정에 남아 있는 국가들은 협정을 통해 창출되는 고용과 산업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미국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리더십의 부재에도, 미국의 여러 도시와 주, 기업들이 우리와 미래 세대에게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길을 주도하고 있다"며 "이들이 (트럼프의) 공백을 채울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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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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