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 가동 중단'은 시작일 뿐이다

[초록發光] '시민 참여 탈핵 로드맵'을 만들자

최근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우리 사회도 이제 에너지 전환기로 들어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취임 후 며칠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일환으로 30년 이상 노후 석탄 발전소 8기에 대한 '일시' 가동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6월 1일부터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가 한 달간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이번 지시는 현 정부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에너지 공급을 희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5월 29일에는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원자력 정책 재검토가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라며 원자력 안전위원회를 포함해서 관련 부처 기관이 공약 실천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촉구하였다. 대선 기간 중에 공약했던 2040년 탈원전 정책을 실행에 옮길 의지가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환경정의의 측면에서도 정의롭지 못하고 미래 세대의 생태적 권리를 축소한다는 점에서 세대 간 불평등을 악화한다는 점에서 탈원전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우리 연구소로서는 이 같은 정부의 행보가 중단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신규 석탄발전소 취소와 2040년 탈원전 공약을 내용대로 이행하자면 관련 부처 기관의 실천 의지를 모아내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관련 부처들로부터 실행 계획을 도출하기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1978년 고리 원전이 가동에 들어간 이후 정부 차원에서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공급 정책을 수립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경제 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가를 예측하고 늘어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경제성이 높은 발전 설비, 즉, 원전과 석탄 발전을 우선적으로 해서 설비 증가량을 추산하고 이에 따라 설비 건설 계획을 세우던 에너지 수급 모델로는 탈원전의 실행 계획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2040년 전력 공급에서 원전 비중을 0로 해놓고 가능한 에너지 믹스를 먼저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현재의 발전 설비 구성을 정하는 '백캐스팅'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이런 방식에 따르자면, 현재 시점으로는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낮은 재생가능에너지, 가스 에너지원 비중을 높여야 하고 이는 에너지 비용의 부담 증가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간 에너지 정책에서 에너지 비용 저감을 제1원칙으로 하고 있던 에너지 관련 부처들에서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같은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는 그간 전문가를 자처해 온 부처 관료들이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정책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의 시장성, 간헐성 등을 이유로 탈원전 시기를 미루며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시키고자 한다. 이런 기존 전문 관료들의 저항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관료적 저항뿐만 아니라 그간의 석탄과 원자력 발전 중심의 에너지 체제로 혜택을 받고 있던 원자력 산업계, 원자력 산업 종사자들과 석탄 화력 발전 투자자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각종 협회와 언론들의 저항도 새 정부의 정책이 가시화되면 될수록 강화될 것임에 틀림없다. 원전 기술 개발 투자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기술 투자를 늘리자는 제안에는 '한국형' 원자로 기술 시장 개척과 원자력 산업 일자리 보존을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구성한 복합 발전 개념에 의하면 산업 수요도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이 가능함에도 원자력업계 등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의 증가를 정전 위험과 연계시키며 에너지 전환이 어려움을 부각시킬 수도 있다. 값싼 원전 전기에 익숙해진 시민들에게는 전기 가격의 급등을 이유로 에너지 정책 전환 시도의 부당함을 전파하고자 할 수 있다. 기존 에너지 체제 유지를 정당화하는 이와 같은 담론 정치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 담론의 정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신규 석탄 발전소 철회 공약의 실행은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만 발전소 건설 중단으로 이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정책에서 경제성 대신에 환경성과 사회성을 우선에 둔다는 것이며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 중심으로 정책 기조가 이전함이 공약 실행의 전제이다. 아울러 관련 신기술 개발 정책의 중심, 정책 전문성의 내용과 에너지 산업의 중심이 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형 원자력과 석탄 발전소 체제 하에서 다만 에너지 소비자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시민은 재생가능에너지원의 비중이 늘어가고 수요 관리 정책이 강화되면서 에너지 프로슈머이자 에너지 절감 실천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와 같은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더 많이 동조하면 할수록 정책의 이행력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는 공약 이행을 위한 탈핵 로드맵을 처음부터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탈원전을 위해 새로운 에너지 믹스를 구성하자면 시민이 부담해야 할 에너지 비용 증가의 필연성, 거주 지역 가까이에 풍력 발전소들이 건설될 필요성에 대해 함께 논의해야 한다. 원전 제로의 미래가 우리에게 어떤 위험과 이점을 줄 수 있는지를 시민들 저마다 평가하여 시민들이 수용가능한 탈핵 로드맵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드맵 작성 과정에서 시민들은 정부 정책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정책 실행 과정에의 참여도 적극적이게 될 수 있다.

에너지 세제 개편, 예산 조정 등의 기술 관료적인 정책 내용 수립도 중요하지만 탈원전의 구체적인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계획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시민들의 참여 결정에 기반할 때에야 정책이 기존 에너지 체제에 의존적인 관료나 산업계 혹은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에도 흔들림없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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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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