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의 '비선 실세'를 아시나요?

국회개혁을 위해③ 유신과 국보위, 일하지 않는 국회를 만들다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은 지금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국민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요구해 온 개혁 과제였다. 그런데도 왜 여태껏 전혀 실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혹시 국회개혁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와 문제제기가 지나치게 추상으로 흘러 구체와 핵심을 올바르게 잡아내지 못하고 본질과 지엽을 혼동하지나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국회개혁이라는 문제의 논의를 위해 이 시리즈는 몇 차례에 걸쳐 시론적 제안을 싣고자 한다.

"입법의 비선실세"-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몇 달 전 한 중진의원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이 제출한 '한일군사정보협정 무효화 법안'이 국회 전문위원들의 '검토보고'에 의해 좌절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04년 10월 21일 노회찬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도 상대당의 반대에 의해 좌절된 것이 아니다. 바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국회 공무원에게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국회 전문위원은 법률가도 아니고 또 국민이 선출해 자격을 부여한 대표도 아니며, 국회 사무처 조직에서 오랫동안 순환 근무를 하고 연공서열 순위에 의해 승진한 국회 공무원일 뿐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법안' 관련 검토보고서에 있어서도 여러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이 법안은 무엇이 문제다", "저 법안은 무엇이 문제다" 하면서 '검토'가 아니라 '판결'을 하고 있다. 결국 검토보고서는 사실상 '판결문'이다.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진행하는 '심사보고서'는 거의 대부분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와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해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가히 "입법의 비선실세"라 할 수 있다. 실제 상임위 소속 입법관료들 스스로도 검토보고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관료 121명을 대상으로 검토보고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 결과 무려 90.8%의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검토보고야말로 국회 입법관료의 핵심적 권한이다. 그렇게 핵심적인 문제이기에 몇 년 전 이 검토보고가 국민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기고문을 발표한 필자는 징계위원회에 넘겨져야 했다.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유신 '적폐'

국회법 제58조 제1항은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들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검토보고'라고 하면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돼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소속 공무원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즉,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검토보고는 법률안의 심사 과정 중 전체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제안 설명이 끝난 뒤 전문위원이 낭독하도록 돼 있다.

그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안 내용도 전문위원의 검토 내용과 대개 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서 지적되지 않은 문제점은 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대체로 거론되지도 않는 성향을 보인다.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 검토보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두환 '국보위'에서 법률 요건화한 검토보고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규정한 이 조항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해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80년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소위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의 '선거법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가 1981년 1월 22일 개최된 회의에서 국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을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규정해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명문화시켰다.

유신과 국보위가 의도했던 국회상, "일하지 않는 국회, 순치되는 국회"

한편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의원들에 의한 전문위원 선발은 바로 유신에 의해 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했다(국보위나 유신이나 권력을 독재화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먼저 국회법을 바꿨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해 선임하던 것을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여당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는 이후 1981년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과 결합돼 전문위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고, 결국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셈이다.

이러한 입법권의 왜곡 과정을 통해 박정희 유신과 전두환 국보위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겠는가? 그것은 바로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국회", "권력의 의도에 구조적으로 순치되는 국회" 그리고 "일하지 않는 국회"였다. 그리고 유신과 국보위를 거쳐 제도화된 국회 전문위원 및 검토보고 시스템은 이를 구조적으로 완성시킨 것이었다. 왜곡된 이 '국회상'은 이무런 수정 없이 의원들도 자각하지 못하고 국민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오늘 국회 문제 핵심의 근원이 존재한다.

국회 입법권이 정상화될 때 '협치'가 가능해진다

그리해 지금 국민이 입법권을 부여한 국회의원은 아무 문제없이 입법권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하게 행사되고 있고 기껏 반쪽자리 입법권이다.

본질적으로 법률에 대한 검토는 상임위에서 국회의원들이 수행해야 한다. 상임위는 실질적인 의원들의 정책 토론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법안이 제출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법안을 회부 받은 소관 위원회는 관련 부처의 의견이나 정보를 검토하고 해당 법안이 과연 심사 가치가 있는가의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회는 '법안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많은 법안이 위원회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이 의원들에 의해 직접 수행된다. 의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법안의 각 조문에 대한 조문 투표를 실시한 뒤 법안 전체에 대한 전체 투표를 실시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모두 '협치'를 주창하고 있다. 만약 다른 나라처럼 상임위에서 의원들이 활발하고 진지한 정책토론을 수행한다면, 또 독일 의원들처럼 매주 입법과 정책 연구 조사에 힘을 쏟고 땀을 흘리면서 자신이 직접 입법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게 된다면, 여야 공히 상대방 입장도 이해하게 돼 타협할 여지와 공간도 확대되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협치'의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정치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가 바로 서야 한다. 그리고 국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유신과 국보위에 의해 왜곡된 국회 입법권이 정상화돼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 입법권은 어떻게 정상화될 수 있는가? 이 과제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다음 차례의 글에서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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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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