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위장전입' 논란에 5대 원칙 사실상 후퇴

임종석 靑비서실장 "국민 눈높이 못미쳐 죄송"

청와대가 26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의 잇따른 위장전입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저희가 내놓는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사과했다.

임 실장은 "국회 청문위원들께도 송구한 마음과 넓은 이해를 구한다"며 "앞으로 저희는 더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으로 널리 좋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임 실장은 다만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5대 비리자 고위 공직 배제 원칙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빵 한 조각과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 다르듯이 관련 사안을 들여다보면 성격이 다 다르다"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임 실장은 이어 "관련 사실에 대해 심각성, 의도성, 반복성, 그리고 시점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 역시 현실적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투기 목적이나 자녀의 명문 학교 입학 등을 위한 비리(의도성, 심각성), 비리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반복성) 경우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겠지만, 법령 숙지 미비 등에 따른 현실적 사유이거나 인사청문법 제정 이전에 발생한 비리(시점)에 대해선 참작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임 실장은 5대 원칙에 대해선 "특권이 없는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자 인사의 기본 원칙과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마땅히 그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검증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서둘러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의혹 진화에 나선 까닭은 새 정부 조각 과정에서 낙마 사례가 나오면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경우 사전 검증이 아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문제가 드러나 적잖이 당혹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무시하고 갈 경우 자유한국당 등 야당과의 날 선 대립이 예상되는 만큼, 야당의 사과 요구를 곧바로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장기적으로 야당과 우호적인 관계 정립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로도 풀이된다.

현실적인 이유도 감안한 조치다. 위장전입 경력자 원천 배제 등, 공언했던 대로 높은 도덕성 문턱을 유지할 경우 앞으로 고위직 인사가 쉽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와대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 데다 지금까지 드러난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목적이 부동산 투기 등 악성 사례가 아닌, 비교적 경미한 이유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비춰 이 총리 후보자 인준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인사 원칙을 사실상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초 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던 야당이, 임 실장이 문 대통령의 말을 대신 전하는 형식을 취한 청와대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관건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임 실장의 사과 뒤에도 문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며 이낙연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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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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