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꿔야 하는 이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독자님들, '근로자'를 영어로 뭐라 하나요?

미얀마에서 노동조합 교육을 하는데 어휘가 부족해 힘들다. 현지어로 노동자와 노동을 분리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 다 '알록타마(alouq-thama)'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알록타마는 노동하는 사람, 즉 노동자(worker)니 실은 노동에 상응하는 말이 없는 셈이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실이 있다. 통역에게 현지어로 뭐라 불리나 물으니 '국제 알록타마 기구', 즉 '국제 노동자 기구'란다. ILO는 유엔 산하 기구로 노동 문제를 전문으로 다룬다. 독특한 점은 다른 유엔 기관과 달리, 그 구성이 노사정 3자로 이뤄진다. 국제 노사정 기구인 것이다. 이런 ILO를 노동자 조직으로 명명했으니, 일반 노동자는 물론 정부 관료들까지 ILO를 국제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으로 오해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같은 문제를 겪는다. 영어를 잘 못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자와 종업원(employee)의 차이를 구분하는 게 어렵다. 말레이어로 둘 다 '뻐끄르자(pekerja)'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조직인가 종업원의 조직인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둘 다 '뻐끄르자'니 머릿속으로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뻐끄르자는 노동자란 뜻이니, 말레이어에는 종업원이란 말이 없는 셈이다.

태국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몇 해 했을 즈음, 통역을 도와주던 친구가 그런다. "헤이 윤! 솔직히 고백할 게 있어. 미안한 말이지만 태국어에는 대화(dialogue)에 해당하는 정확한 단어가 없어." 황당한 마음을 다독이며 그동안 사회적 대화를 뭘로 통역했느냐고 물으니, 그냥 영어로 '다이얼로그'라 했다고 한다. 회화(conversation)나 이야기(talks)란 태국어는 있어 때때로 그렇게 썼다고 한다.

태국의 노동 용어에는 '대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동법 개념상 사용자(employer)는 '주인님(master)'이고, 노동자는 '아이들(children)'로 불린다. 아이들을 고용한 주인과 주인에 고용된 아이들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단체교섭 석상에서 노동자는 사용자를 주인이라 부르고 사용자는 노동자대표를 '아이들'로 부르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이런 상태에서는 산업 민주주의의 대등한 파트너로서 제대로 된 노동자 의식이 성장할 수 없다.

베트남에서는 영어로 worker(노동자)라 말하면 통역은 주로 '꽁년(công nhân)'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공장의 노조 간부인 교육 참가자들에게 "여러분은 꽁년이냐" 물으면, 자신들은 꽁년이 아니란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어 살펴보니, 꽁년은 생산직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다.

베트남의 현장 노조 간부들은 사무직이나 관리직이 많은데, 이들은 꽁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 노동자(勞動者)를 쓰고 이걸 베트남어로 뭐라 하느냐 물으니, 중국어도 공부한 통역이 '응어이 라우동(người lao động)'이라 말해준다. 그래서 노조 간부들에게 당신들은 '응어이 라우동'이냐 물으니 그렇다 한다. 여기서 과욕을 부리면 교육이 어려워진다. 종업원은 베트남어로 뭐냐 물으면 복잡해질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았다.

베트남 말로 노동조합을 '꽁두안(cong doan)'이라 한다. 우리말처럼 베트남말도 중국어, 한자가 언어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꽁년과 꽁두안에서 꽁은 우리가 말하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공이다. 아시아에서 노동조합이 등장하던 20세기 초에는 주로 육체 노동자를 노동자라 여겼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사농공상 전체로 노동자 개념이 확대되었다.

이런 상태를 반영해서일까. 베트남노총은 자신을 노동조합 총연맹, 즉 '꽁두안 총연맹'이라 부르지 않고 '노동 총연맹'(Vietnam General Confederation of Labour)이라 부른다. 생산직인 꽁년만이 아니라 응어이 라오동, 즉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정기훈(매일노동뉴스)

노동 용어와 관련하여 한국어엔 문제가 없을까. 나는 '근로자'라는 말이 동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헌법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법률엔 '노동자'란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근로자만 존재하는데, 이를 대한민국 정부는 영어로 worker라 해석한다. 그러면 노동자는 영어로 뭐라 불러야 하나.

대한민국의 법률과 제도는 사회적 계급으로서 노동자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 헌법상의 권리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노동법 등 하위 법령에서 대체로 부정되고 부분적으로 보장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엄격히 말해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리는 노동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다.

대신 대한민국 법제는 특정 기업이나 사용자에게 종속된 존재로서의 노동자, 즉 영어로 employee를 선호한다. 사회적 존재인 계급 성원으로서의 노동자를 기업과 사용자에 종속된 개별적 종업원의 존재로 억제하고 순치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정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일관한다.

역사적 역동성과 사회적 계급성의 거세라는 입법 의도를 고려할 때, 근로자는 worker가 아니라 employee로 번역해주는 게 맞을 듯하다. 이 문제는 특정 기업에 고용된 근로자(employee)를 위한 법제도는 상대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데 비해, 고용상의 지위가 애매해 정규직 종업원이라 할 수 없는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는 형편없는 대한민국의 사정과 연결되어 있다.

헌법을 비롯해 모든 법률은 특정하고 명확한 고용 관계에 있는 근로자(employee)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자(worker) 전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맞다. 이를 위한 준비 단계로 사회적 동력(dynamism)을 거세하려 만든 근로자라는 표현을 노동자로 바꾸어야 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개헌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개헌할 때 근로자란 표현을 노동자로 바꾸어야 한다. 사회니 계급이니 거대 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대한민국 사회와 법률은 '노동조합',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노동대학원' 등 노동이란 말을 아무 문제 없이 잘 쓰고 있다.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말을 고집하고 싶다면, 언어생활과 법률 용어의 일관성을 위해서 노동이란 말을 모두 근로로 바꾸는 게 낫다. 이미 노동복지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노동법이 아닌 근로법, 노동 정책이 아닌 근로 정책, 고용노동부가 아닌 고용근로부, 노동위원회가 아닌 근로위원회, 노동연구원이 아닌 근로연구원, 국제노동기구(ILO)가 아닌 국제근로기구, 노동조합이 아닌 근로조합, 한국노총이 아닌 한국근총, 노사관계가 아닌 근사관계. 으음, 근사관계라. 근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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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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